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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진정한 승자,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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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페스티벌 신은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주관사 선정을 둘러싼 잡음과 <지산 록 페스티벌>의 취소, 그리고 여기에 정점을 찍은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의 운영 논란까지. 그런 상황에서 바라본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많은 록 팬들 그리고 페스티벌 팬들의 대안이었다. 물론 이들 역시 순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데도 20년 동안 축적되어 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단행하는 첫 유료화 행사.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라는 빅네임은 이들의 의욕과 자신감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라인업이었다.

 

필자가 현장을 찾은 것은 일요일 오후. 번화가인 서면에서 택시로 약 10분 정도 이동하니 넓게 탁 트여 있는 삼락생태공원이 드러났다. 마치 서울의 난지공원을 연상케 하는 풍경.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그만큼 이미 지역의 프랜차이즈 행사로 자리 잡은 부산록페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더불어 지나치게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된 문화 인프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게이트를 통과하자 바로 사진 스팟이 꾸며져 있었고, 양쪽으로는 스폰서 프로모션과 MD 부스가 나란히 도열. 티셔츠는 나름 실용적인 디자인이었으나 뒷면에 라인업이 새겨져 있지 않았으며, 종류 또한 많지 않아 돈 쓸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그 일말의 구매욕을 끌어내기는 살짝 역부족이었다. 조금 지나자 지역의 관광기념품을 취급하는 부스가 보였는데, 그곳에서 코트니 바넷이나 케미컬 브라더스의 공식 MD(!)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정품이 맞는지 몇 차례 확인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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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메인인 삼락 스테이지와 서브인 그린 스테이지, 신예들의 등용문 역할을 할 프린지 스테이지와 디제이들을 위해 마련된 히든 포레스트 이렇게 4개로 구분. 그중에서도 무대 뒤로 보이는 풍광이 이제껏 본 적 없는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 그린 스테이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침 부산의 로컬 밴드인 엘에이브릿지(LAbridge)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재지(Jazzy)한 반주와 음색이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오버랩되며 한껏 기분을 들뜨게 해주었다. 이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다수 출연. 단순히 헤드라이너나 인지도 있는 아티스트만이 아닌, 기회가 필요한 이들 역시 포용하는 주최 측의 큰 그림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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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는 바로 부산 출신의 베테랑 밴드인 피아. 올해 해산을 앞두고 액셀만을 밟고 있는 그들의 열정에 팬들은 어마무시한 결집력으로 화답했다. '자오선,'. '소용돌이', 'Yes you are', '백색의 샤' 등 가만히 서서 볼 수 없는 레퍼토리의 향연으로 이미 관중석은 무아지경. 큰 원이 만들어지고 서로가 몸을 부대끼며 월 오브 데스가 수시로 만들어지는 이 난장. 관객으로부터 이만한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팀이 또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하니 더욱더 아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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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코트니 바넷은 그 이상을 보여주며 그 기다림을 헛되지 않게 했다. 단출한 쓰리피스 셋으로 등장했던 그는 첫 곡 'Avant Gardener'부터 디스토션으로 맹공을 퍼붓더니 'City looks pretty', 'Small talk' 등으로 이어지며 장내를 거대한 단독 콘서트장으로 변모시켰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연주와 보컬, 야성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터프한 제스처 등 그야말로 '날것의 록스타' 그 자체였다. 

 

무대가 좁다는 듯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선사했으며, 처음 보는 이들 역시 그 에너지에 감화되어 갔다. 마지막 곡 'Pedestrian at best'를 부를 때쯤에는 처음에 모여 있었던 군중의 3~4배 이상 증가. 스튜디오 앨범과는 별개로 '라이브에서의 코트니 바넷'은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음에 감탄하며 아쉬움을 한가득 안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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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펜타포트에 이어 역량과는 별개로 페스티벌과는 여러 측면에서 미스매치가 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악동뮤지션의 공연을 잠시 관람. 아무래도 팝스타인 만큼 사람들의 호응은 좋았으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만족스럽지는 못한 시간이었다. 이제 올해 국내 페스티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 형제를 영접할 차례. 장비가 세팅되기 시작하고 곧이어 암전. 그 후 9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실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에 홀려 몸을 움직이고 음악에 취하고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

 

소문으로 전해만 들었던 음악과 영상과의 시너지는 이제 어떤 예술의 사조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른 듯했다. 'Eve of destruction', 'No geography', 'MAH' 등의 신곡과 'Chemical Beats', 'Swoon', 'Star guitar',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려 퍼진 'Block rockin' beats' 같은 클래식이 합쳐져 하나의 완벽한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그 광경. 지금의 EDM 세대와는 또 다른 일렉트로니카의 경지를 그들은 보란 듯이 선사했고, 그곳에 모여 있던 추종자들은 다시 한번 이 전자세례를 통해 내면에 묵어있던 스트레스와 화를 날려 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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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날의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정말 지뢰밭을 피하고 피해 잘 골랐네”하고 말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날까지 열린 페스티벌 중 운영이나 공연의 퀄리티, 라인업 등 모든 측면을 고려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였으리라는 사실이다. 솔리달(Soilical)이나 화이트 캣츠(White Catss) 같은 실력이 있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타국의 아티스트를 초청하고, 로컬 및 타지역의 인디 뮤지션을 포용했다. 이와 함께 페스티벌이라는 본연의 의미와 기능에 초점을 둔 운영까지. 케미컬 브라더스나 코트니 바넷만을 쫓아온 내가 살짝 부끄러워지는 주최 측의 노력은, 분명 박수받아 마땅한 성질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내한이 성사되었다면,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올해 여러 상황과 맞물려 단숨에 그 위상을 높이고 제1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렇지만 뭐 한 번에 배부를 수 있으랴. 이렇게 리스크를 동반한 그들의 모험은 절반의 성공으로 남았다. 그 성공으로 하여금 우리가 굳이 서울에서만 이런 록 페스티벌을 즐길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수도권의 페스티벌 신이 이처럼 아비규환에 이른 마당에, 부산을 마다할 이유는 더 없어 보인다.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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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다름 - 있지, 「IT'z 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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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JYP엔터테인먼트

 

 

지난주에는 가요프로그램 앞부분을 꾸벅꾸벅 졸면서 보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이런 생각도 했다. 케이 팝에 유입되는 새로운 팬보다 케이 팝에 새로이 등장하는 신인이 더 많은 게 아닐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의 숫자는 결정되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일정한 성취를 이룬 스타의 팬인 상황이다. 신인은 그 틈을 비집고 탄생해 눈길을 끌어야 한다. 넓지 않은 기회의 문은 점점 더 좁아지는 듯하다.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의 앞 순서는 주로 신인의 몫인데, 매주 바뀐다. 그들 중 차트에 안착하는 신인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방송 무대의 기회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신인이 대중에게 노출될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소리 없이 나타나 흔적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해외에서의 열기로 케이 팝의 가능성이 증폭된 최근 몇 해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례적인 화제성을 보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력, 수요의 다양화, 군소 기획사의 난립 등의 이유로 엇비슷한 콘셉트의 아이돌 그룹이 대거 등장했다. 가요 팬의 입장에서 신인의 등장이 못마땅할 일은 없다. 도리어 다양한 음악과 무대를 즐길 수 있으니 환영하는 게 맞겠지만, 문제는 별로 다양하지도, 새롭지도 못할 때가 많아서 생긴다. 기존 그룹의 콘셉트에서 강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고, 음악과 퍼포먼스 모두 어떤 지향점을 가졌는지 알 수 없을 때 팬들은 지루함을 느낀다. 3분 내외의 무대에서, 지루함에 대한 인내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차라리 다른 신인에게 기대를 거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다음 주에는 다음 주의 신인이 다시 등장할 것이므로.

 

하지만 이렇게만 하면 신인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있지’는 데뷔 싱글 「IT'z Different」 발표를 앞두고 짧게 공개된 티저 영상만으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수년 동안 숱하게 명멸한 아이돌 그룹들을 지켜봐 왔던 케이 팝의 팬들은 이제 티저 영상만으로 대략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될는지, 아니 될는지. ‘있지’에 대한 판단은 두말하면 잔소리, 될 수밖에 없는 신인이었다. 타이틀 「달라달라」는 최신의 것이라 부를 만한 장르를 하나의 곡에 담아냈는데, 혼종의 천재들이 모인 기획사답게 어색함 하나 없이 세련된 사운드를 구축했다.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게 전주가 19초(!)나 되는데도, 타격감이 넘쳐 지루할 틈이 없는 비트로 그룹의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곡의 타래를 앞 선에서 이끄는 안무의 신선함,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멤버들의 테크닉까지…… 준비된 신인은 ‘있지’를 염두에 두고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여름 시즌에 발표된 두 번째 싱글 「IT'z ICY」는 이 그룹의 성공적 안착을 축하하는 해변의 폭죽놀이처럼 보인다. 이전 싱글 수록곡의 리믹스 버전을 포함해 다섯 곡으로 이루어진 이번 앨범의 완성도, 멤버들의 소화력은 앨범의 홍보용 소개 글이 허투루 들리지 않게 한다. “K팝 新 지평 제시 'JYP 4세대 걸그룹' 가요계 접수 예고!” 가요계를 접수한다는 말은 조금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있지’가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처럼 케이 팝 아이돌은 자기 자신이어만 하다는 것이다. ‘있지’의 콘셉트는 청순도 섹시도 힙합도 비주얼도 실력도 그 무엇도 아니다. ‘있지’의 콘셉트는 바로 ‘있지’다.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해시태그를 붙일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 붙일 수 있겠다. #있지.

 

케이블 가요프로그램에서 무대 뒤를 쫓아온 카메라에 ‘있지’의 멤버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여러 번 연습해서 틀리려고 해도 틀릴 수가 없어요.” 신곡 「ICY」의 안무는 4세대라는 말이 어울리게 이전 세대 걸그룹의 군무와는 한 차원이 다른 복잡성을 보이는데, 멤버 다섯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매번 정확하게 무대를 수행한다. 앞선 무대들에서 조는 듯 보는 듯했던 텔레비전을 향했던 나의 눈이 ‘있지’의 무대에서 번쩍 떠졌음은 물론이다. 사실 걸그룹 명가로 평가받는 기획사 ‘JYP’에서 내놓은 ‘있지’의 실패를 점친 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실패가 어색할 만큼 트레이닝이 반복되었을 것이고, 최근의 흐름을 명민하게 엮어 곡을 만들고 안무를 짰을 테니까. 하지만 이만큼이나 다를 줄은 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두 번의 싱글과 연속된 히트로 그들로부터 탄생한 다름의 연속성을 확인시켰다. 이제 그룹 안에서의 멤버들의 다름과, 싱글과 싱글 사이 그리고 정규앨범으로 만들어질 시간의 다름까지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할 일은 많겠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저 ‘있지’가 맨 앞에서 개척할 다음 세대의 케이 팝의 모습이 궁금할 따름이다. 거기에도 붙일 만한 해시태그는 단 하나뿐이겠지. 바로 #있지. 


 

 

있지 (ITZY) - IT’z ICY 있지 노래 | 드림어스컴퍼니 / JYP Entertainment
타이틀곡 'ICY'는 겉은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한 ‘2019 서머송’이다. 힘찬 꿈과 자신감으로 가득한 ITZY 다섯 멤버들이 무더운 여름을 쿨하게 장식하고, 거침없이 위로 향하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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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에스트로’ 하이팅크의 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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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음악만이 주는 열락의 순간

 

오랫동안 팬이었던 영화감독을 만나 인터뷰하던 도중이었다. 남달리 좋은 취향을 가진 그에게 좋아하는 지휘자를 묻자 그가 하이팅크라고 말했다. 쇼스타코비치는 하이팅크의 지휘로만 듣는다는 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들었던 실황 공연에서 이 거장 지휘자가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하이팅크의 지휘는 파리에서도 1년에 몇 번 들을 수 있지만 티켓 구하기가 어려웠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접하기 힘들다는 제약도 있었다. 더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그의 지휘로 듣고 싶은 마음 하나로 런던, 루체른, 암스테르담, 베를린으로 향했다.

 

하이팅크의 지휘로 듣는 베토벤, 말러와 같은 레퍼토리는 그 자체로 사람을 가장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지극히 순도 높은 음악이다. 음표 하나하나가 새로운 차원의 무엇으로 거듭나, 그 형태와 질감, 맛과 향기까지 가진, 마치 육체를 지닌 듯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베토벤이나 말러 교향곡의 익숙한 선율은 다시 한번 청중을 놀래며 새롭고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포디엄에서 큰 움직임을 보이거나 눈에 띄는 제스처도 표정 변화도 없는 그가, 그저 아주 조금씩 움직이면서 음악과 함께 호흡하는 동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기량을 한껏 발휘하며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해 마음껏 자신들을 펼쳐 보인다. 오로지 실황에서만 느껴지는 이 경이로운 음악과의 조우 덕분에 나는 언제나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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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콘세르트허바우

 

 

하이팅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늘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해저 터널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유로 스타가 이유 없이 멈춰 서거나 파리에서 바젤을 거쳐 루체른으로 가던 기차가 파업으로 갑작스럽게 취소되어 꼼짝없이 발이 묶인 적도 있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역의 코인 로커에 짐을 두고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우버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바젤에서 우선 베른으로 가는 기차를 탄 뒤, 베른에서 간신히 공유 차량을 구해 천신만고 끝에 루체른에 도착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고생스러운 와중에도 하이팅크의 음악을 듣고 나면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속한 현실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차원의 음악이었다. 견줄 만한 경험을 꼽아보자면 내포 불순물이 하나도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커팅으로 연마된 보석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에 압도되거나, 석양에 물드는 바닷가 하늘의 빛깔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다 이윽고 어둠으로 사그라드는 걸 지켜볼 때처럼 어딘가 경건해지기까지 한 마음이 들었다. 차마 눈을 똑바로 뜨기가 어려워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청각에만 집중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분명 눈을 감았는데도 총천연색으로 부서지는 그 빛이 닫힌 시야 사이로 스며들어 눈앞을 메우는 것이었다. 한없이 먼 곳까지 뻗어 나가는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내 영혼도 잠시 다른 차원의 먼 곳에 갔다가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오로지 음악으로만 가능한 또 다른 차원으로의 여정이 주는 열락에 빠져 있다가 눈을 뜨면, 언뜻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한 포디엄의 하이팅크와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보였다. 그들이 합일을 이루며 빚어내는 음표가 공기 중에 실려 피부에 와닿았다. 일광욕을 하거나 몰아치는 바람을 마주할 때처럼 간절히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고는 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붙들고 잠시 멈추어 있다가 가야지, 했을 것이다.

 

“우리 마에스트로는 오늘 또 새로울 거야.”


듣기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별다른 노력 없이 편안하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를 따라갈 수도 있고, 극도의 집중으로 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화성과 음 하나하나에 실린 배음을 느끼거나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을 수도 있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단순한 듣기 이상의 지점으로 나아간다. 음이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듣는 이의 가장 깊숙한 내면이다. 그래서 음악에 귀 기울이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로부터 가장 멀리 갔다가도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돌아와 있다. 음악의 종착점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음악에 상념이 더해져 음표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온갖 노폐물처럼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부유하는 상념들은 음표들이 피부에 와닿을 때, 내가 음악과 마주한 상태로 스스로를 가장 활짝 열어 보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저 바깥으로 흘러 나간다. 가장 순수한 음들과 마주한 덕분에 나는 텅 비었으나 가장 충만하고 오롯한 상태가 된다. 몇몇 명장들의 지휘로 만나는 실연의 음악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오로지 음표와 나만이 존재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음악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 이때마다 나는 내 숨소리나 옷깃이 의자에 닿는 소리가 끼어들까, 미동도 하지 않고 호흡도 조심스럽게 내쉬며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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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팅크

 

 

음악은 종교보다도 구체적으로 내 영혼을 구원한다. 자주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고통받는 아귀처럼 속이 텅 빈 듯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불을 끄고 누워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나 멀어진 것들, 과거 삶의 궤적이 맞닿아 잠시 가까이 있었으나 놓치고 흘려보낸 것들, 바라고 바랐으나 결국 닿지 못한 것들, 팽팽히 당겨진 줄처럼 극도로 높은 긴장감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썼던 안간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 하는 패배감…. 산다는 것은 어딘가에 부딪혀 계속 생채기가 나는 일상의 반복이고 종종 그렇고 그런 일들이 닥쳐왔다. 나에게 바투 다가와 몸을 부딪쳐온 음악 덕분에,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선율에 얹어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달콤한 디저트에 탐닉하거나, 향기로운 향을 겹겹이 몸에 입혀보기도 했지만 그건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임시방편에 불과했을 뿐, 오로지 음악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었다.

 

어느 가을날 저녁 6시, 공연 시작까지는 두 시간이 남은 시각 파리 살 플레옐 매표소 앞에는 이미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관광 온 네덜란드 여행객들이었다. 큰 키와 다소 거친 액센트의 플라망어 덕분에 한눈에 파리지엔들과 구별되었다. 티켓은 이미 매진이지만 일찌감치 와서 라스트 미닛 티켓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들은 암스테르담에서 29년간 RCO(로열 콘세르트허바우)를 이끈 하이팅크를 “우리 마에스트로”라고 불렀고 “우리 마에스트로”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파리까지 여행 와서도 저녁 시간을 몽땅 희생하는 건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틀간의 투어 중 첫날을 이미 들었지만 같은 프로그램을 또 한번 듣기 위해 이렇게 줄을 선다고 말하자 그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젊을 때 우리도 매번 콘세르트허바우에서 줄을 섰어. 우리 마에스트로는 이틀을 들어도 좋지. 오늘도 또 새로울 거야”라며 비스킷과 초콜릿을 내게 내밀었다. 우유 함량이 높아 맛이 진한 초콜릿 맛과 그들이 “우리 마에스트로”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얼굴에 번지던 미소와 빛나던 눈동자의 반짝임은 잊혀지지 않는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작년 8월 29일, 독일 아헨 부근에 머무르던 나는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콘세르트허바우에서 하이팅크의 지휘로 말러 <교향곡 9번>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정성껏 몸을 씻고 손발톱을 자르고, 깨끗한 옷과 편안한 신발을 챙겨 신었다. 하이팅크가 선보인 그날의 말러 9번은 한없이 느리고 또 투명했다. 가장 순도 높은 경지의 음악을 마주하면 몸이 더 정직하게 반응한다. 배고픔이나 목마름이 덜 느껴지고, 맥박 수와 심장박동 같은 신체적 반응들이 즉각적으로 달라진다. 작별 인사를 고하듯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말러의 고뇌와 모든 감정들의 편린이 느린 템포 속에서 고스란히 와닿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말러보다도 풍성한 색채와 단면을 지닌 연주였다. 눈앞에서 시공간이 지워진 듯, 존재가 휘발해버린 듯 아득한 기분이었다.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일부러 찬바람을 맞으며 비 내리는 암스테르담 구도심의 골목을 정처 없이 걸었다. 낯선 도시의 공기 속에 묻어 있던 독특한 냄새 덕분에 그제서야 이곳이 암스테르담이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그 무엇도 더 바랄 것이 없는 그런 밤이었다.


 

 

Bernard Haitink 말러: 교향곡 전곡Gustav Mahler 작곡/Janet Baker, James King, Heather Harper, Norma Proctor 노래 외 5명 | Universal / Decca Record
오리지널 커버 슬리브, 슬립케이스 한정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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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빌보드 장기집권, 최장 기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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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기록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은 'One sweet day'로 16주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업적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는 올해 6월 27일, 25년 만에 그 철옹성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했다. 4월 13일부터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1999년생 래퍼 릴 나스 엑스와 컨트리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의 'Old town road'가 7월 27일 16주 타이를 이룬데 이어, 8월 17일까지 기세를 올리며 19주 연속 차트 1위의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번주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에 밀려 20주 기록은 세우지 못했으나 역사의 새 페이지가 쓰였음은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수백 수천의 신곡이 발매되는 음악 시장에서 거의 3~4개월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비록 그 퀄리티에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대중을 사로잡을 강력한 한 방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새 기록을 맞아 이즘은 빌보드 싱글 차트 12주 연속 이상 1위를 차지한 20곡을 기획했다. 

 

 

12주 연속 1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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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시런(Ed Sheeran) - Shape of you (2016)

 

2014년 정규 2집 < X >의 'Sing', 'Don't', 'Thinking out loud'가 이룬 히트 반열에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포크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은 메이저 레이저의 'Lean on'으로부터 시작된 댄스홀, 트로피컬 하우스 유행을 따라 'Shape of you'를 작곡했다. 이 곡의 중독적인 신시사이저가 클럽을 채우던 2017년 1월 28일 그는 빌보드 싱글 순위 첫 1위를 기록했으나 다음주 미고스의 'Bad and boujee'에 자리를 뺏긴 상황이었는데, 이후 11주 연속 장기 집권은 2월 12일 59회 그래미 시상식 공연이 결정적이었다. 홀로 나와 통기타 한 대로 소리를 쌓아가던 에드 시런의 환상적인 무대는 음악계에 루프 머신 붐을 일으켰고, 그는 래 스레머드('Black Beatles')와 미고스의 힙합 그루브에 맞선 백인 포크 뮤지션으로 남았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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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 - Closer (Feat. Halsey)(2016) 

 

'#Selfie'(16위), 'Rose'(6위), 'Don't let me down'(3위)으로 상승 가도를 이어가던 체인스모커스에게 빌보드 HOT 100 넘버원은 예정된 일이었다. 더 프레이의 'Over my head (Cable car)'와 페티 왑의 '679'을 표절한 아쉬운 기록이었지만, 'Closer'는 2016년 가을 정상의 자리에서 장기 집권에 성공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10주 이상 내에서는 유일하게 전자 음악으로 이름을 새겼다. 이를 계기로 일렉트로니카 신의 기수로 떠올라 퓨처 베이스 장르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들은 이듬해 정규 1집 < Memories...Do Not Open >을 내며 월드 투어를 달성했다. 젊은 듀오의 역사를 바꾼 'Closer', 그야말로 '원 그레이트 송'이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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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 칼리파(Wiz Khalifa) - See you again (Feat. Charlie Puth) (2015)

 

영화 < 분노의 질주 > 시리즈의 주인공 브라이언 오코너를 연기한 배우 폴 워커는 2013년 11월 캘리포니아에서 필리핀 이재민 자선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으로 2015년 개봉한 영화 <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의 엔딩 장면에서 폴 워커를 추모하며 흘러나오는 곡이 바로 'See you again'이다. 슬픈 피아노 인트로와 위즈 칼리파의 랩, 찰리 푸스의 감미로운 보컬은 전형적인 랩 발라드 스타일 편곡이라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내용의 가사는 폴 워커를 추모함과 동시에 언제든 이별을 마주해야 하는 대중에게 큰 위로를 건넸다. 영화 장면이 삽입된 뮤직비디오는 2017년 7월 29억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튜브 최다 조회수 영상에 올랐는데, 그 전 오래도록 정상의 자리를 지켰던 곡이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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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시크(Robin Thicke) - Blurred lines (Feat. Pharell Williams, T.I.) (2013)

 

'젠장(Damn), 'Got to give it up' 같은 그루브를 만들고 싶어.'2012년의 한 스튜디오, 새천년 블루 아이드 소울 아티스트 로빈 시크와 히트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는 1977년 마빈 게이의 히트곡을 흠모한 나머지 거의 비슷한 형태의 곡을 만들었다. 거장의 뼈대 위 이목을 집중시킬 핫(Hot)한 뮤직비디오와 농밀한 가사, 'I know you want it'의 훅과 티아이(T.I)의 랩을 더한 'Blurred lines'는 2013년 차츰차츰 순위를 올리더니 12주 연속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 해 최고의 히트 싱글이 되었다. 당연히 마빈 게이의 유족들이 표절 소송을 제기했고 LA 지방법원은 로빈 시크와 퍼렐에게 82억 원의 배상금과 동시에 향후 로열티의 50%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실질적인 작곡가 퍼렐은 '그루브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며 'Got to give it up'과 완전히 다른 곡임을 조목조목 주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표절 소송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로빈 시크는 이듬해 21년을 같이 살아온 배우 폴라 패튼을 두고 바람을 피워 애처가 이미지를 스스로 갖다 버렸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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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셔(Usher) - Yeah! (Feat. Lil' Jon, Ludacris) (2004) 

 

1994년 14살에 < Usher >로 데뷔하여 알앤비를 이끌어 갈 재목으로 우뚝 선 어셔는 준비된 인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어릴 적 굳어진 '순수한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갈증을 느꼈을 터. 그는 섹시 스타로의 변화를 택했고 크렁크(Crunk)의 황제 릴 존이 프로듀싱한 'Yeah!'와 < Confessions >로 세계를 정복한다. 춤추기 적합한 비트 위 찌르듯이 반복되는 신시사이저에 그루브한 기교를 섞은 이 곡은 크렁크의 정점을 상징하며 빌보드 싱글차트 1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클럽에서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낸다는 막장 가사가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겼으나 당시에는 파티장의 모두를 춤추게 만들었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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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나(Santana) - Smooth (Feat. Rob Thomas) (1999)

 

 때는 바야흐로 1999년, 세기말 차트에는 라틴팝 열풍이 불어 닥쳤다. 맨 처음 이 씨앗을 뿌리며 정상을 차지한 건 리키 마틴이었다. 이후 제니퍼 로페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가 연달아 솟아오르며 라틴음악의 매력을 세상에 흘렸다면 산타나의 'Smooth'는 이 감성을 좀 더 고차원적인 '감상'의 지점까지 끌어온다. 이전의 라틴이 댄스 팝 성향의 흥겨움과 어느 정도 눈으로 보는 화려함을 품었다면 이 곡은 다르다. 끈적한 후렴의 기타 솔로가 증명하는 건 다름 아닌 감칠맛. 농염하고도 대중적인 이 기타 연주는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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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Eminem) - Lose Yourself (2002)

 

당신은 에미넴 하면 어떤 노래가 떠오르는가. 그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 'The real slim shady'나, 편지라는 특이한 구성으로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인 'Stan'이 생각날 수도 있다. 혹은 리한나(Rihanna)와의 멋진 호흡을 보여준 'Love the way you lie'와 'The monster'가 떠오를 수도 있고, 최근 곡 중에서는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스타일의 과격한 래핑이 일품인 'Berzerk'와 속사포로 단어를 내뱉는 'Rap god'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다만 그의 대표곡을 뽑는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할 단 하나의 곡, 바로 그의 자전 영화 < 8 마일 >에 삽입된 'Lose yourself'다. 디트로이트의 거리가 연상되는 음산한 비트 위 차근차근 문장을 채워 나가는 날 선 목소리. 라임으로 꽉꽉 채운 그의 투박한 가사를 읽다 보면 간절함과 긴장의 연속 가운데 어느새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곡으로 에미넴은 힙합 최초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함은 물론, 그래미 최우수 랩 퍼포먼스와 최우수 랩 앨범 부문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백인 래퍼의 신기원을 세운다. (장준환)

 

 

13주 연속 1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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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즈 투 멘(Boyz II Men) - End of the road (1992)

 

블랙 뮤직을 제작했으나 백인도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온 모타운은 알앤비 물결이 찰랑거리던 1990년대 초반 이들을 세상에 공개했다. 시작부터 인기를 얻은 그룹은 빌보드 싱글 차트 1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End of the road'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게 된다. 에디 머피 주연의 영화 < 부메랑 > OST로 처음 등장한 이 곡은 아름다운 그룹 하모니와 베이비페이스가 만든 선율이 더해져 잊지 못할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백인이었지만 흑인의 음악을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6년 'Hound dog / Don't be cruel'로 세운 11주 연속 1위는 이들에 의해 깨졌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은 음악들은 특정 인종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노래였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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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 & 모니카(Brandy & Monica) ? The boy is mine (1998) 

 

브랜디와 모니카는 1990년대가 주목한 차세대 틴에이지 디바였다. 14살 어린 나이에 데뷔해 각자 수백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 둘은 자타가 공인하는 라이벌이었다. 이런 그들이 1998년 'The boy is mine'으로 힘을 합쳤으니 흥행은 보증된 결과. 폴 매카트니와 마이클 잭슨의 'The girl is mine'에서 힌트를 얻은 사랑싸움 가사는 가십 너머의 재미를 선사했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 로드니 저킨스의 미묘하고 음산한 멜로디 위 브랜디와 모니카는 10대 가수라 믿기지 않는 탄탄한 보컬을 선보였다. 'The boy is mine'은 브랜디와 모니카에게 첫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영예를 안겨주며 더 큰 미래를 기대케 했다. 이후 각자 히트 싱글 'Have you ever'와 'Angel of mine'을 발표하며 정상의 자리를 한 번 더 차지한 것은 덤이다. (이홍현)

 

 

14주 연속 1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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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 Boom boom pow (2009)

 

'난 3008년에 있어, 너는 2000년에다 구닥다리지'.10년이 지난 지금에야 허황스럽지만 2009년 당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블랙 아이드 피스의 '미래주의 선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힙합 그룹의 틀을 깨고자 했던 윌아이엠은 오토튠으로 변형한 목소리와 체계적으로 쌓아 간결하게 만든 일렉트로비트, 다양한 이펙트를 활용해 디지털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12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기계음에 대한 반감과 단조로운 구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2011년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의 처절한 실패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실험을 더욱 평가절하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현재 역사는 'Boom boom pow'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한다. 원래 평론가들이 혹평하는 노래일수록 중요한 노래인 경우가 많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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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론슨(Mark Ronson) - Uptown funk (Feat. Bruno Mars) (2015)

 

2015년 1월 17일부터 4월 18일까지 14주 동안 장기 집권한 'Uptown funk'는 레트로 펑크(Funk)의 전형이다. 'Treasure'와 '24k magic'에서 고전적 펑크(Funk)에 헌사를 보낸 브루노 마스는 디제이 마크 론슨과 함께 프린스, 갭 밴드, 카메오, 더 타임 같은 소울 펑크(Funk) 밴드의 음악을 다시 재현했다. 하지만 펑크(Funk) 밴드 잽이 1980년에 발표한 'More bounce to the ounce'를 표절한 의혹이 있었던 'Uptown funk'를 그래미가 올해의 레코드로 선정한 것은 패착이다. 그리고 'Uptown funk'는 1970, 80년대 소울/펑크 음악보다 좋지도 않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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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 We belong together (2005)

 

21세기 들어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토미 모톨라와의 별거 후 2000년 소니를 떠나 버진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으나 결과는 < Glitter >의 흥행 참패였고 2002년 유니버셜에서 발표한 < Charmbracelet >도 활발한 활동과 달리 성과는 미진했다. 쇠퇴한 보컬 능력과 더불어 자기 관리에 대한 의심도 커져갔다. 절치부심한 머라이어는 2005년 'We belong together'로 모든 의혹을 잠재우며 빌보드 싱글 차트 14주 비연속 1위를 차지한다. 힙합 백비트와 간결한 피아노 연주 위 머라이어의 목소리는 힘들이지 않고도 감각적이었으며 복고 아닌 최신의 흐름이었다. '한 물 간 가수'의 위기에 놓였던 그는 이 곡을 통해 노래 제목처럼 현재와 '함께' 호흡하게 됐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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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 - I gotta feeling (2009)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프로듀서 윌아이엠(will.i.am)은 2009년 < The E.N.D >로 그의 실험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화려한 이펙트와 제목 그대로 '에너제틱'한 전자음을 대거 활용한 앨범은 'Boom boom pow'에 이어 'I gotta feeling'으로 14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거대 DJ로 이름을 날리던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는 이 노래를 프로듀싱하며 미국 시장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뒀고, 향후 전 세계 팝 시장은 전자음악에 선명한 멜로디와 상승-하강 구조를 가진 장르에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1980년대 하우스의 고향 미국이 전자 음악을 주류로 취득하기까지 무려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블랙 아이드 피스는 그룹의 정체성을 희생하며 EDM 열풍의 주역이 되었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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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델 리오(Los Del Rio) - Macarena (Bayside Boys Mix) (1996)

 

이 노래만으로 시간의 흐름에 제약받지 않는 원 히트 원더 뮤지션이 됐다. 1992년 발매 이후 자국인 스페인을 중심으로 사랑받았는데, 이 곡이 음악으로 아니, 음악과 '댄스'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 건 쉽게 말해 요즘 날의 밈과 컬트 문화와 관련 깊다. 애초에 스페인어로만 녹음된 곡을 우연히 한 DJ가 방송 규정에 맞춰 영어로 리믹스했고 이 버전이 차트에 안착하며 소소한 주목을 받는다. 그 관심이 폭발하게 된 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여자 국가대표 체조팀이 노래에 맞춰 펼친 군무가 지구촌에 생중계되며 역주행의 신화가 장기 집권의 역사가 쓰였다. 익살스럽고 단순한 율동,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가 주는 대중성까지. 2016년 'Despacito'가 21년 만에 비영어권 가사로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 전까지 이 구역 대표는 이 곡이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 두 곡 모두 가사가 꽤 적나라하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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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즈 투 멘(Boyz II Men) ? I'll make love to you (1994) 

 

눈부신 야경을 닮은 선명한 멜로디 라인과 섹슈얼한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I'll make love to you'는 작곡가 베이비페이스가 밝힌 대로 보이즈 투 멘의 또 다른 메가 히트곡 'End of the road'와 문법적으로 닮아있다. 유사한 형태의 곡이 연이어 성공했다는 것은 보이즈 투 멘이 당대 최고의 인기 그룹이었음을 증명하는 징표다. 'I'll make love to you'는 14주 연속 싱글 차트 1위를 점거하며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와 타이를 이뤘음은 물론, 그 후계자를 같은 앨범 < II >의 또 다른 수록곡 'On bended knee'에게 물려주었다. 1995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 상과 최우수 알앤비 그룹 퍼포먼스 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보이즈 투 멘의 차지였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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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 I will always love you (1992)

 

모든 시작점은 1992년 개봉한 영화 < 보디가드 >다.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아 영화는 흥행 가도를 달렸고 특히 엔딩의 이별 장면에서 흘러나온 'I will always love you'가 주목을 받았다. 사운드 트랙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한 이 곡의 놀라운 점은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의 원곡을 리메이크했다는 사실. 사연을 읊조리듯 시작하는 무반주의 1절부터 휘몰아치는 후반까지, 빼어난 보컬이 컨트리 발라드를 소울 트랙으로 바꿨다. 오롯이 목소리로 세계를 휩쓸며 빌보드 14주간 1위를 기록, 팝계 최고 디바라는 명예를 얻어 지금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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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 (Elton John) - Candle in the wind 1997 (1997)

 

1997년 8월 31일, '영국의 장미'가 꽃잎을 떨궜다. 찰스 왕세자와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세계를 순회하며 자선과 봉사 활동에 힘을 쏟았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다 프랑스 파리 지하차도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구촌이 사랑했던 그의 죽음에 생전 다이애나와 절친한 사이였던 엘튼 존은 1974년 발표한 'Candle in the wind'를 개사하여 그 해 9월 6일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른다. 원곡에서 매스컴에 희생된 마릴린 먼로를 추모했던 그는 'Candle in the wind 1997'에서 아름답고도 험난했던 다이애나의 삶을 절절히 추모했다. 세계인의 추모 열풍 속 이 노래는 14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총 3300만 장의 판매고를 통해 지금까지도 역대 최다 판매 싱글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1위는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 (김도헌)

 

 

16주 연속 1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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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 & 보이즈 투 멘(Mariah Carey & Boyz II Men) - One sweet day (1994)

 

1990년대 중반 머라이어 캐리는 거침없었다. 이미 9곡이 빌보드 정상에 올랐지만 10주 이상을 버틴 노래는 없었다. 'Dreamlover'와 'Fantasy'는 모두 8주에 머물러 14주 1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에는 미치지 못했다. 휘트니 휴스턴을 넘어야 했다. 1995년 12월 2일에 빌보드 1위로 데뷔해서 1996년 3월 16일까지 16주 동안 빌보드 넘버원을 호령한 'One sweet day'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이 호흡을 맞추었으니 성공은 예정되어 있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기록을 깨야겠다는 머라이어 캐리의 개인적 야망이 투영된 'One sweet day'가 당시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이었던 소니 음반사의 부사장 토미 모톨라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았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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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폰시 & 대디 양키(Luis Fonsi & Daddy Yankee) - Despacito (Feat. Justin Bieber) (2017)

 

'Despacito'는 먼저 라틴권에서 인기를 얻고 난 뒤 전 세계로 퍼져나가 거대한 유행의 파도를 만들었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무려 60억 회에 달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16주간 1위를 하는 영광을 얻었다.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의 'One sweet day'와 동일한 차트 기록으로, 이는 1995년 이후 범접할 수 없는 공고한 탑과 같은 것이었기에 더 화제가 되었다. 제18회 라틴 그래미 어워즈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제60회 그래미에서는 본상인 노래와 레코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발자취만 살짝 보아도 얼마나 큰 명예를 거머쥐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어 인구의 높아지는 영향력과 더불어 라틴음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곡. (정효범)

 

 

19주 연속 1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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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나스 엑스(Lil Nas X) - Old Town Road (Feat. Billy Rae Cyrus) (2019)

 

카우보이 모자를 쓴 스무 살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는 19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로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미국 문화권을 겨냥한 컨트리와 힙합의 절묘한 크로스오버,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와 간결한 멜로디. 다만 이 곡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적극적인 바이럴 마케팅이었다. 소셜 미디어 틱톡(Tik Tok) 진출을 노린 카우보이 콘셉트와 베이스 드롭으로 반전 효과를 강조한 곡 구성이 '이햐 챌린지(#yeehawchallenge)'와 같은 인터넷 밈(Meme)을 낳으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이다. 빌리 레이 사일러스(Billy Rae Cyrus)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정상을 밟은 그는 이후 영 떡(Young Thug), 디플로(Diplo), RM 등 여러 아티스트와 리믹스를 주도하며 꾸준히 곡의 인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세태의 흐름을 영리하게 읽고 성공을 거둔 'Old town road', 인터넷 문화가 역사를 바꿨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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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아니었더라면 없었을 것들


나 피아노 치러 가야 해.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도 불쑥 이 말을 하고는 했다. 모두들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당 수업은 물론 소그룹에 속해 학기 내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시험이 끝나 해방감에 들떠 학교 옆 몽파르나스나 뤽상부르공원을 가로질러 간 카페에서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시간 계산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면 오후 5시니까 음계 연습에 40분, 9시까지 베토벤 소나타나 쇼팽 에튀드를 몇 번 칠 수 있겠다, 라는 계산이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순식간에 상념에 빠지는 나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마음이 먼 데 가 있는 사람처럼 눈빛이 꿈꾸는 것 같아.” 자주 만나는 친구로부터 “너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피아노가 더 중요해?”라는 불만 섞인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철이 없었을 때라 친구가 상처를 받든 말든 “응, 그래”라고 답하면서도 미안한 줄 몰랐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하다 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 있다. 내가 음악에 가장 가까이 있고, 오로지 나만 존재하며, 가장 나답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여행을 떠나 한동안 피아노를 못 치다가 집에 돌아갈 때면 내 피아노가 절실히 그리웠다. 파리의 공항이나 기차역에 가까워지면 ‘당장 집에 가서 피아노 앞에 얼마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어림짐작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큰 무대를 앞두고 연습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 시간대를 조정하고 싶어 하는 인터뷰이들의 요청대로 아침 8시 반에 호텔 조식을 같이 먹거나, 리허설이나 공연이 끝나기까지 밤 10시가 넘도록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향수 브랜드의 파리 부티크에만 있다는 높이 2미터가 넘는 향 캡슐의 향기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다리우스 콘지 감독은 알고 보니 부근에 사는 이웃이었다. 우리는 향수에 이어, 근처 카페에서 내놓는 산미가 강하고 꽃향기가 올라오는 원두에 밀도 높은 우유 거품을 올린 플랫 화이트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이어서 그가 열렬히 사랑하고 경배하는 영화에 대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옥자>를 찍던 강원도의 밤하늘과 산세에 얼마나 다양한 검은색이 놓여 있었는지, 봉준호 감독이 틀어주었다는 소콜로프의 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한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음악이 아니었더라면 성사되지 않았을 인터뷰였다. 그는 정중하지만 빈틈없이 완강한 거절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은 마침 7월 7일, 말러의 생일이었다. 작곡가 친구와 “우리 악보 들고 만나서 같이 저녁 먹고 음악 들을까?” 한 날이기도 했다. 런던에서 런던 심포니를 이끈 하이팅크의 실연을 들은 이후, 거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말러 <3번>에 매혹되어 있던 시기였다. 1악장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거절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음반을 다 듣고 우주 여행자가 된 듯한 벅찬 마음으로 답을 보냈다. “<옥자> 말고도 <아무르>에서의 이야기도 궁금했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막 말러의 생일을 기념해 그의 <3번> 교향곡을 들었다. 인간은 작은 존재에 불과하고 오로지 예술만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영화로 또 만나기를 바란다”라고. 바로 그에게서 답변이 왔다. “말러를 들었나?” “오늘은 말러의 생일이라 의식을 치르듯,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몇 번을 들었나? 누구 지휘로??” “<3번>, 하이팅크 RCO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메시지가 연달아 이어졌고 그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며칠의 침묵 이후 답변을 해온 날이 마침 7월 7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때 말러를 듣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틀이 지나 세 시간 넘게 이어졌던, 그러고도 할 이야기가 남아 한참 아쉽기만 했던 인터뷰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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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페지오, 느리게 삐걱이며…


눈물이 많은 편이라 자주 많이 울지만, <아무르>를 보았던 어느 겨울날처럼 울다가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일이 또 있을까. 피아노를 그만두고 한참 동안 말러 <6번>을 들었다. 곡의 부제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비극이었다. 거실을 온통 차지한 피아노를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도 한순간에 소리가 먼 데서 들렸고 풍경은 무채색으로 변했다.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어두운 저녁에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뚜껑이 닫힌 피아노 위에 어지럽게 쌓인 악보들을 보면 매일 이렇게 한 뼘씩 음악으로부터 멀어지는구나, 좌절감이 밀려왔다. 점점 이유 없이 화가 차올랐고 원래도 날 서 있던 성격이 더 사나워졌다.


어둡고 막막하고 파괴적인 말러 <7번>을 듣고 나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과 첼로 협주곡도 자주 들었다. 교향곡 <4번> 속 사정없이 날뛰는 음표들이 면도날처럼 피부 속에 들어와 박히는 순간마다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었다. 첼로 협주곡의 카덴차 첼로 솔로 파트처럼 한없이 무언가를 일그러뜨리고 처절하게 구기고 부수고 싶었다. 겉으로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일상을 버텼지만 내 안에는 세상 모든 것과 불화하는 흉포한 괴물 한 마리가 있었다. 점점 덩치가 커지는 그 괴물이 다스려지지 않는 날에는 메트로를 기다리던 플랫폼에서 알 수 없는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대로 뛰어들어 저 아래에 처박혀버리면 괴물도 죽고, 다 끝나겠지….


<아무르> 덕분에 연습하기 시작한 슈베르트 <즉흥곡 3번>에는 물결처럼 잔잔한 아르페지오가 이어진다.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괴물과 싸우는 대신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둔해진 손 탓에 느린 속도로 삐걱이며 아르페지오를 따라갔으나 삐걱이는 와중에도 슈베르트의 선율은 아름다웠다. 해가 유난히 짧은 겨울 내내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곡의 아르페지오를 연습했다. 메트로놈을 켜고, 한 음표를 두 번씩, 부점 스타카토, 음표 둘씩 묶어서….


2주가 넘는 부활절 방학을 알차게 보낼 생각으로 시작한 계약직 업무가 끝나는 날이었다. 회사의 부사장이 따로 나를 불렀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라며 그의 막내 아들이 피아노 레슨을 안 받으려 하는데, 혹시 아이의 연주를 들어봐 줄 수 있냐는 이야기였다. 그의 거실에 진짜 벡스타인 피아노가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발동해 그러겠다고 답했다.


주말에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피아노에 도통 흥미가 없었다. 짧은 바흐 인벤션 외에는 아무것도 칠 마음이 없었다. 청음과 이론이 싫고, 지겨운 바흐만 치게 하는 음악원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우아한 문양이 아로새겨진 보면대와 색이 바래지 않은 상아와 흑단으로 된 건반을 바라보았다. 1940년대에 수공으로 만들어진 피아노는 관리가 잘된 덕에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 곡 들려주세요.” 열 살 소년의 부탁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브람스 에튀드로 손을 풀며 손끝에 상아 건반의 감촉을 느끼다가 나도 모르게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두 개뿐인 페달이 어색했지만 겨울 내내 매달린 덕분에 나쁘지 않게 곡을 마칠 수 있었다. 뺨이 상기된 아이는 사뭇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자기는 언제쯤 이걸 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바흐 인벤션이 손에 익으면, 이라고 답하자 아이의 눈이 빛났다. 더 쳐주세요, 라는 부탁에 바흐 평균율과 스카를라티 소나타를 쳤다. 흑단과 상아로 만들어진 건반들이 손끝에 낯선 감각을 남기며 황홀하게 깊은 소리를 내주었다.


그해 여름, 학기말 시험을 마치자마자 바로 슈베르트 <즉흥곡 3번>으로 레슨을 시작했다. 추위를 견디며 연습했던 곡으로 여름을 맞이했다. 매번 아이가 아르페지오를 좀 더 익숙하게 속도를 내어 연주할 때마다, 이렇게 듣는 슈베르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르미카엘 하네케, 장-루이 트랭티냥, 엠마누엘 리바 | 아트서비스
‘폭력의 탐구자’에서 ‘사랑의 거장’으로 돌아온 미카엘 하네케,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 칸영화제를 눈물바다로 만든 두 노배우의 혼신의 열연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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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열풍, 음악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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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음악 관계자들 사이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어째서 이 무더운 여름 스트리밍 서비스의 실시간 차트에 발라드 노래가 가득하냐는 것이다. 최근 인기인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OST가 인기를 얻기 전까지, 절절한 이별의 가사와 애절한 창법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케이-발라드(K-Ballard) 곡들이 멜론, 지니, 벅스, 플로, 네이버 등 주요 스트리밍 차트의 정상부를 오래도록 점령했다.

 

'열애 중', '180도'로 발라드 시대 유행을 앞서 개척한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부터 1997년생 신예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무려 14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난 장혜진, 윤민수의 '술이 문제야'와 솔로 가수 김나영의 '솔직하게 말해서 나' 모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SBS <케이팝스타> 출신 송하예의 '니 소식', 황인욱의 '포장마차', 마크툽의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가 뒤를 받친다.

 

통념상 애절한 이별과 쓸쓸한 추억을 노래하는 발라드의 계절은 찬 바람 부는 가을이다. 하지만 올해 스트리밍 차트를 보면 발라드는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 차트 집계를 보면, 5월 둘째 주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마지막으로 7월 마지막 주 지금까지 발라드 이외 곡이 정상을 차지한 경우가 없다. 비단 1위뿐 아니라 톱 텐에도 앞서 언급한 곡들과 케이시의 '그때가 좋았어', 다비치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등이 공고한 인기 전선을 구축했다.

 

스트리밍 차트 성적대로라면 지금 우리는 '발라드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논란이 됐던 가수 닐로의 소속사(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이 상황을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했으나, '음원 자료가 제한적이라 사재기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6월 멜론 월간 차트 1위에 오른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역시 사재기 논란을 불렀다. 2018년 9월에 발매된 싱글이 2019년 여름 수직 상승하여 정상에 오른 것이 수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2Soo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유튜브와 페이스북 노래 조회수를 보여주며 사재기 논란을 일축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대중은 음원 사이트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니 의구심이 들고, 아티스트와 작곡가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속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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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노래방 문화, 그중에서도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혼코노족'의 부상을 발라드 유행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노래방 애창곡 목록에서 발라드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한국 노래방 업계 1위 TJ미디어의 7월 노래방 인기곡 순위를 보면, 1위부터 20위까지 발라드 이외의 곡이 하나도 없다.

 

러나 이 가설이 힘을 얻으려면 발라드는 물론 노래방 사업의 인기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2011년 이후 노래방 사업은 지속적인 하락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에서 없어진 노래방 수는 모두 1413개로 2015년부터 계속 증가 추세다. 신규 등록된 코인 노래방도 2017년 778개에서 2018년 409개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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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모바일 서비스 이용행태 조사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43%가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해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 28.1%를 크게 제쳤다. 2순위 기준까지 합한 결과는 유튜브 75.4%, 멜론 47.4%로 그 격차가 더 심하다. 연령별로는 오직 20대만이 유튜브보다 멜론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라드 노래들이 여기서 강세다. 유튜브 '멜론둥이', '멜론차트' 등 다양한 채널들은 멜론 주간 톱 100 차트를 그대로 재생하여 광고 없는 영상으로 만든다. '헬로 마이 뮤직',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같은 채널은 노래에 가사를 입혀 많게는 몇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확보한다. 노래 하나를 검색하면 원곡자의 라이브 영상은 물론 수많은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커버 영상이 이어진다.

 

'비 오는 날 수채화'의 권인하는 3년 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태연의 '만약에'를 부른 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2012년 전국 노래자랑의 '지구촌 노래자랑'에 출연한 그렉 프리스터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커버 영상을 업로드하며 33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앞서 언급한 노래방 문화와의 접점이 보인다.


이런 유튜브 채널들은 음원 사재기 논란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페이스북 음악 페이지의 확장형이다. 유튜브 88만 구독자를 보유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페이지는 페이스북에서 이미 300만 이상의 좋아요를 확보했다. 2013년~2014년 페이스북이 싸이월드의 지위를 대체한 20대에게 '감성 플레이어', '요즘 핫하다는 노래 동영상' 등의 채널은 이미 2015~2016년부터 그 파급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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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의 소비 형태 변화도 발라드의 차트 점령의 원인 중 하나다. 한 때 스트리밍 차트에는 '줄 세우기'가 일상이었다. 대형 아이돌 가수들이 새 앨범을 내면 발매와 동시에, 혹은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앨범의 전 수록곡이 1위부터 차례대로 차트 정상부를 점령하는 현상이었다.

 

이를 위해 팬덤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총동원해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 공격, 특정 가수의 곡을 집중적으로 듣는 방식으로 차트 순위를 올려주는 팬덤의 행태를 일컫는 말)'에 나섰고, 권장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숨밍(숨 쉬듯이 스트리밍)'을 이어갔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권고로 스트리밍 업체들이 0시 공개 음원을 차트 성적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거대 아이돌 그룹의 컴백에는 팬들의 열성적인 '스밍'이 뒤따른다.

 

그러나 발라드의 차트 점령으로 인해 소비문화도 변하고 있다. '스밍'으로 정상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팬덤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는 차트에서 비정상적인 상승 추이를 보이는 곡들을 '기계픽'이라 호칭하며 차트 조작을 의심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명확하지 않은 결론 때문에 팬덤 내에서는 '스밍'에 대한 자성과 함께 '기계픽'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 실시간 경쟁을 종용하는 차트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이제 팬들의 디지털 소비로 뮤지션이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건 쉽지 않게 됐다. 대신 팬덤은 실물 앨범을 활발히 소비하며 이를 만회하고 있다. 국내 앨범 판매량은 2017년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2018년 약 2천3백만 장 판매고를 기록하며 연간 2천만 장 판매고 시대를 열었다. 아이돌 팬덤의 적극적인 소비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에는 방탄소년단의 미니 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가 349만 9천 장 판매고를 올리며 대한민국 앨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세븐틴의 <You Made My Dawn>역시 46만 장을 판매했다. 역대 걸그룹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 판매 기록 1,2,3위가 2019년의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즈원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웬만한 그룹도 1만 장 이상의 판매고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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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종합해보면 현재 스트리밍 차트에서 발라드 곡이 강세인 이유를 정리할 수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차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순이용자들의 취향이 현재의 발라드 인기다. 주로 10대 초, 20대 중후반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채널, 커버를 통해 발라드 곡을 접하고 이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활발히 소비한다. 논란이 됐던 '바이럴 마케팅'이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 번 차트에 오른 곡은 다시 SNS를 통해 무수한 불특정 다수들에게 반복 재생된다. 일단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만 하면 매체 주목과 '톱 100 반복 재생'을 통해 안정적인 인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노래방, 커버, 버스킹 문화를 통해 2차 콘텐츠 생산도 활발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 다수 대중의 취향이며 2019년이 발라드 대유행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틀린 접근이다. 팬덤, 음악 관계자들 등 순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을 제외하면 차트에 대한 대중 관심도는 굉장히 낮다. 차트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낮아졌기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가'의 지위를 갖추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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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차트를 점령한 이별 발라드는 대중음악의 질적 후퇴를 가져온다. 최근 유행하는 곡들을 들어보면 거의 고음 경연의 장과 다를 바가 없다. '헤어져줘서 고마워'와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의 찢어지는 후렴은 소음에 가깝고, 그 내용 역시 사랑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면모를 담아내는데 급급하다. '양산형 발라드'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대중의 감정을 어루만질 수 있는 노랫말을 적재적소 음색과 음량 조절로 전달하는 것이 발라드의 매력이라면 지금의 곡들은 모두 실격이다. 이런 곡들이 SNS 상에서 '실력 있는 가수의 노래', '가창력 폭발' 등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도 좋지 않고 이를 소비하는 세대에게도 악영향이다. 과거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불러왔던 고음 지상주의가 겹쳐간다. 천천히 성장해야 할 아티스트에게도, 정말 좋은 곡을 접하지 못하는 대중에게도 서로 악영향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발라드는 항상 사랑받아왔다. 1980년대 유재하와 이문세, 1990년대 변진섭과 신승훈 그리고 이승철이 있었다. 훗날 벤, 임재현, 닐로, 케이시, 송하예도 2010년대 말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기억될까.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이들은 음악으로 기억되기보단 SNS, 스트리밍 차트, 바이럴 마케팅의 일부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도현 (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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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나의 두 번째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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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심장 가장 가까이에서 울리는 소리


가을이면 나의 두 번째 악기인 첼로 소리가 더 깊게 들린다. 타악기의 속성을 지닌 피아노와는 달리 몸 가까이에서 현악기 몸통의 진동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처럼 레퍼토리도 더 다양하고, 가지고 다니기도 쉬운 악기가 아닌 내 덩치만 한 첼로에 반한 건 아홉 살의 가을날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들은 뒤였다. 바이올린으로 음반에서 듣던 근사한 소리를 내려면 까마득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때였다. 나는 돌이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소리에 유난히 예민해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듯 숨 넘어가게 울어 엄마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아기였다.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우는 나에게 놀라 온 집 안의 전화기를 담요와 이불로 꽁꽁 싸맸던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라고 말해주었다.


자발적으로 고른 두 번째 악기인 만큼 첼로가 내 인생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는 엄마의 예상대로, 나는 첼로에 빚을 많이 졌다. 애인 같은 존재인 첼로를 나는 주저 없이 파리로 가져갔다. 긴 방학에 한 달 이상 다른 도시로 떠날 때에도 첼로를 챙겼다. 약음기를 끼우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도 악기를 잡을 수 있어 방 한쪽에 자주 악기를 꺼내두었다. 매번 케이스에 악기를 넣고 정리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을렀던 탓도 있지만 그만큼 첼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잦았다.


자발적으로 선택해 모국어로부터 멀어진 삶을 산다는 건 설렘과 동시에, 완전히 내 것이 아닌 불완전한 언어로 둘러싸인 일상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기도 했다. 남들보다 성긴 구멍의 뜰채로 웅덩이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어부처럼, 아무리 애를 써서 뜰채를 건져 올려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이 없어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이대로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구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며 잔뜩 흔들리는 날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거실의 피아노 의자를 가져와 높이를 조절하고 첼로를 잡았다.


개방현으로 두고 활을 그을 때마다 양 무릎과 왼쪽 가슴 위에 놓인 악기가 깊게 몸을 떨었다. 그 단순한 진동이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현을 짚는 왼손의 지문 위로 붉은 자국이 남으며 적당한 통증이 지나가는 만큼, 나를 둘러싸고 외부에서 벌어지는 그렇고 그런 일들도 소음처럼 지나갔다. 손가락 끝에 옅은 굳은살이 배기며 껍질이 벗겨지고 새살이 나는 과정은 순간의 고통과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뿌듯함, 오늘보다는 내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뒤섞이며 스스로 한 꺼풀 껍질을 벗는 일이기도 했다.


매번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첼로를 나는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계절이 달라질 때면 소소하게 활에 바를 송진을 바꾸며 현에 붙는 활 털이 달라지는 미묘한 변화를 느꼈고, 수명이 다한 첼로 현을 세트로 바꾼 뒤에는 달라진 소리의 질감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를 찾느라 가지고 있는 악보를 모두 꺼내 놓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는 자주 칼날같이 곤두서는 예민한 기질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었다. 나는 내 첼로에 이름을 지어주고 주기적으로 현악기 제작자를 찾아가 악기를 점검받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하듯, 온도와 습도에 신경을 썼고, 계절에 맞는 높이의 브리지를 깎아 구색을 갖춰 극진히 살폈다. 동시에 완벽 그 이상의 첼로 사운드를 지닌 첼리스트들의 음반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생에서 이런 소리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이상향으로 삼을 만한 대상이나마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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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피눔 밤 풍경

 

 

어둠 속의 첼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은 어느새 묵직해진 가을의 공기와 잘 어울리는 곡이다. 드보르자크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게 바친 노래의 멜로디가 숨어 있는 3악장은 곳곳에 스며 있는 보헤미안의 감수성과 함께 이 협주곡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짧은 일주일 일정으로 프라하로 향했던 어느 가을, 나는 드보르자크 음반과 악보를 챙겼다. 인터뷰로 만났던 첼리스트 G가 프라하의 루돌피눔에서 연주하는 날과 마침 일정이 겹쳤다.


공연이 끝나고 만난 그에게 사인을 받고 싶다며 드보르자크의 원전 악보를 내밀자 그가 주저했다. 이 곡은 너무나 아름다운 걸작이며 슬라바(로스트로포비치의 애칭)를 비롯해 이미 위대한 첼리스트들이 엄청난 레코딩을 선보였다면서 경외심을 표했다. 고심하던 그가 분리된 솔로 파트 악보를 펼쳤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며 3악장 속 드보르자크가 재사용한 멜로디를 짚었다. 작곡가의 내면을 유영하듯, 그의 감정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며 첼리스트는 나에게 언젠가 꼭 한 번 이 멜로디를 직접 연주해보라고 권했다.


몇 달이 지나 파리에서 다시 만난 그는 나에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중에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별 망설임 없이 4번이라고 답했다. 아마도 5번이 더 유명하고 더 널리 알려졌으며 더 자주 연주되겠지만 그래도 4번이 내 심장에 더 가까이 있는 곡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첼로를 짊어진 채 곧 연주할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의 주요 선율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리허설을 듣고 가라는 그의 권유에 대기실에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는 아직 다 착석하지 않은 상태였다. 빈 무대에 그가 먼저 자리에 앉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모음곡 2번이었다. 꽉 들어찬 객석이 아닌 텅 빈 콘서트홀에서 듣는 첼로 소리는 더욱 잔향이 섬세했다. 소리가 청중들의 머리카락이나 옷, 피부에 의해 흡수되지 않고, 빈 객석의 나무 의자에 와닿아 부딪히는 덕이었다. 프렐류드, 알라망드를 지나 사라방드가 시작되었고,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조심스럽게 호흡을 내뱉었다. 어떤 미세한 소리도 사라방드의 선율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라방드의 느린 선율이 중간쯤 지나가는데 갑자기 콘서트홀의 조명이 꺼졌다. 말 그대로 암전, 칠흑같이 깜깜했다. 실황 녹음과 방송을 미리 준비하러 나온 프랑스 뮈지크 기술팀의 실수였을까. 순간 무척 당황한 나와 달리 무대 위 첼리스트는 아무렇지 않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어둠 속에서 사라방드가 끝나고 미뉴에트와 지그가 이어졌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을 때처럼, 모든 시각 정보가 차단된 공간 속에서 들려오는 바흐는 역설적으로 가장 눈부시게 찬란했고 생동감이 넘쳤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가 어둠 속에서 춤을 추는 듯,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한껏 공간을 지배하다가 저 너머로 그 차원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영혼의 춤 중간중간 들려오는 소리가 생생함을 더했다. 악보가 바로 떠오르는 익숙한 선율 속 음표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날아와 피부 아래에 박혔다. 첼리스트의 굳은살 배긴 왼손이 지판을 강하게 짚는 소리가 무용수가 무대를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를 때 슈즈를 신은 발끝이 바닥에 부딪는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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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미술관 피라미드

 

 

지그를 지나며 모음곡이 끝나갈 때, 거짓말처럼 다시 조명이 들어왔다. 사위가 밝아지며 콘서트홀의 모든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모든 시각 정보가 사라지고 청각만이 오롯하게 존재하는 경험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모음곡이 끝나고 첼리스트가 활을 내리고 나서야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들어왔고 지휘자와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리허설이 이어졌다. 빈 콘서트홀에서 홀로 듣는 쇼스타코비치는 너무나 강렬한 청각적 경험이었다.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듯, 모든 것이 다 헝클어지고 소멸해가는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세계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격렬한 4악장과 처절한 울음 같은 카덴차를 지나며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잔뜩 구겨진 알루미늄 캔처럼 차갑고 불균질하며 날 선 소리가 파편처럼 흩어졌다.

 

첼로 소리에 잔뜩 취한 채, 나는 첼리스트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콘서트홀을 빠져나왔다. 메트로를 타는 대신 귀마개를 끼고 어둠이 내린 길을 걸었다. 방금 경험한 순도 높은 음악에 불쾌한 소음으로 불순물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개선문을 지나 센 강변을 따라 걷다가 밤의 불빛이 아름다운 루브르 앞 피라미드로 향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루브르 앞 가로등 아래를 천천히 걸으며 이 부드러운 노란 빛으로 오늘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갑작스레 콘서트홀의 조명이 사라졌던 것처럼 전혀 닮지 않았다고 여겨온 바흐의 사라방드와 쇼스타코비치가 맞닿아 나를 깜짝 놀래며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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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목소리 - 송하예 「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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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더하기미디어


 
한때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슈퍼스타K’에서부터 이를 대놓고 복사한 ‘위대한 탄생’, 해외 방송의 판권을 들여온 ‘더 보이스 오브 코리아’, 대형 기획사를 참여시켜 아이돌 사업에 보다 특성화된 모습을 보여 준 ‘K팝스타’까지…… 방송마다 화제성은 달랐으나 우승자는 꼬박꼬박 탄생했고, 우승자 못지않은 실력자 또한 우수수 등장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노래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역시 춤과 노래의 민족! 그러다가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저번에 본 것 같은 친구가 여기에 또 나왔네!
 
그렇게 사람들이 지겨움을 느낄 즈음 일반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저물었다. 그렇다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기획사의 연습생을 대상(‘프로듀스101’)으로 하거나 이미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까지 지원 가능한 형태(‘쇼미더머니’로 체제가 전환되었다. 역사상 명멸했던 숱한 티브이 프로그램들이 그렇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무언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음의 유행과 화제가 돌아오고, 그것이 이 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진리일 것이다. 그 돌고 도는 간격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인기가 유지되는 시간은 그에 따라 더더욱 짧아지고 있다는 추측도 진리에 덧붙는 사실이 분명하다.
 
솔로 가수 송하예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하지만 이 길 아닌 다른 길은 없었다. 송하예는 ‘K팝스타’ 시즌2로 (약간) 얼굴을 알렸다. 노래가 별로라고 하기에는 어려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 없는 태도와 어김없는 잔실수들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이 또한 편집에 의한 화면만 보고서 남은 기억이니 진실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편집이 진리요 화면이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얼굴을 다시 떠올린 건 「니 소식」 때문이었다. 무심코 재생해 둔 ‘실시간 TOP100'에 앞쪽에 그 노래는 오랫동안 자리해 있었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아서 듣기 편한 발라드인데, 공감할 데가 많은 가사가 전달도 잘 되었다. 그 노래의 가수가 바로 송하예다.
 
오디션의 범람 속에 애매한 순위로 그 파도를 함께 탔던 신인 가수들 모두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기억에 남을 한 장면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송하예의 싱글들도 그래 보였다. 「처음이야!」, 「Ice Summer」, 「순대」로 이어진 싱글들은 인디 음악을 하려는지, 대중적인 팝 음악을 하려는지 좀처럼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와 같은 노래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가요팬의 주의 산만함을 탓하긴 어려웠으리라. 이 시기 송하예의 목소리를 자주 들은 이들은 가요팬이 아닌 드라마 시청자였다. ‘최고의 결혼’에서부터 는 물론이고 최근 방송된 에 이르기까지 송하예는 알게 모르게 드라마 OST의 단골 보컬이 되었다.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으나, 최근 송하예만큼 한국 드라마 OST에 자주 참여한 가수는 없을 것이리라 짐작된다.
 
도대체 그다지 대단한 특색이 없어 보이는 노래 「니 소식」이 어째서 이토록 귀에 와 박히는지 하는 의문의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대단히 한국적인 경쟁 상황에서 반쯤은 탈락한 이 가수가, 또한 더욱 대단히 한국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사운드 트랙을 통해 음원 차트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공력을 완성해 낸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적이어야 할 장르의 특성에 따라, 누구나 들어도 괜찮을 법한 노래를 송하예는 불렀다.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든 낮든, 노래가 유명해지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가수는 자기를 불러주는 녹음실에 기꺼이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꺼이 반복해 불렀을 것이다. 노래가 좋아서일 수도 있고, 더 좋은 가수가 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프로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한국의 드라마는 한 명의 가수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송하예의 소식이다.
 
「니 소식」은 더 유명한 가수들이 부른 비슷한 장르의 음악이 차트에 등장해 사라질 동안 계속해서 그 자리다. 숱한 드라마가 방영과 종영을 거듭할 동안 송하예의 목소리가 그 자리였던 것처럼. 이제 그 자리의 다음 행방을 알고 싶다. 감정 표현, 안정적인 고음, 발성의 정확함…… 이런 것들은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에 무척이나 신경 썼던 요소들이겠지만, 지금의 송하예에게는 됐다 싶다. 드라마를 보조하는 음색이 아닌, 자신만의 음색으로, 보다 완성된 앨범의 형태로 송하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오디션은 사라져도 목소리는 남는다. 송하예의 목소리가 여기 이렇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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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카스의 노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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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풍미한 카스(The Cars)의 프론트맨 릭 오케이섹(Ric Ocasek)이 9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뉴욕 펑크와 개러지 록, 로커빌리 등 다양한 장르를 버무려 뉴웨이브의 시대를 대표한 밴드는 미국인들의 신앙과도 같은 '자동차'를 이름과 앨범 커버에 내걸고 근사한 팝 멜로디와 기분 좋은 청량감으로 당대 젊은 세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뉴웨이브 밴드는 많았지만 카스는 그 중에서도 최첨단이자 최신 유행이었는데, 앨범 커버 속 잘 빠진 자동차는 물론 앤디 워홀과 티모시 허튼 등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과 당대 최신 유행의 컴퓨터 그래픽이 밴드와 함께했다.

 

그 중심에 무심한듯 건조하게 유머와 재치 가득한 메시지를 노래하며 신구의 조화를 이루던 릭 오케이섹이 있었다. 베이스의 벤자민 오어, 기타리스트 엘리엇 이스턴, 키보드 그렉 호킨스, 드러머 데이비드 로빈슨을 조화롭게 엮어내어 카스의 소리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다. 카스 해체 이후에도 배드 브레인스(Bad Brains), 가이디드 바이 보이시스(Guided by Voices), 노 다웃, 배드 릴리전, 홀 등 수많은 밴드들의 프로듀서로 재능을 발휘했으며 1994년 신인 밴드 위저(Weezer)를 슈퍼스타로 만든 인물 역시 그였다. 이즘이 선정한 카스의 10곡으로 릭 오케이섹의 이름을 기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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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times roll (1978, < The Cars > 수록)

 

카스는 분명 뉴웨이브의 한 단계를 정립한 밴드였다. 'Good times roll'은 이 진술을 위한 적확한 근거다. 밴드는 뉴웨이브, 신스팝의 선구를 열렬히 받아들여 신스 사운드를 곡 사방에 삽입하면서도, 파워 팝 식의 미니멀한 기타 록 골조를 견고하게 유지하며 유행의 전후를 모두 아우르는 양식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송라이팅에 능란한 릭 오케이섹이 단순한 코드 구성과 다소 느릿한 템포속에서도 캐치한 코러스를 찾아내고, 프로듀서 로이 토마스 베이커가 부피감이 큰 배킹 보컬을 후렴구에 배치해 훅을 강조함으로써 밴드와 곡은 팝의 문법까지도 꿰뚫을 수 있었다. 'Good times roll'에는 뉴웨이브 사운드가 가질 수 있는 최적의 균형이 존재했다. 다시 말해 릭 오케이섹 일당이 제시한 것은 뉴웨이브 시대의 팝을 위한 완벽한 모델이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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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st friend's girl (1978, < The Cars > 수록)

 

1980년대 새 시대를 향해 고속도로에 올라탄 카스는 미국발 뉴 웨이브 밴드답게 데뷔 앨범 < The Cars >의 'My best friend's girl'에 어릴 적 듣고 자란 1950년대 로커빌리식 기타 연주를 얹었다. 1944년생의 릭 오케이섹이 운전대를 잡았기에 가능했지만, 덕분에 팀은 신시사이저 위주로 흐른 영국, 유럽과 달리 기타를 중심으로 개성을 잡을 수 있었다. 리더이자 마스터였던 그가 펑크로 카스를 성공 반열에 올리자 그 스노우볼은 자연스레 1990년대 미국의 그런지 록과 네오 펑크로 굴러갔다. 위저와 배드 릴리전, 2001년 노 다웃까지 예의 펑크 밴드들은 그의 프로듀싱으로 특혜를 받았으며 릭 오케이섹 또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폭발의 핵심이었던 너바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4년 3월 1일 생전 마지막 공연에서 커트 코베인은 'My best friend's girl'을 열창하며 카스의 영향력을 다시금 전파했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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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what I needed (1978, < The Cars > 수록)

 

미국 뉴 웨이브를 대표하는 카스는 이 곡으로 시동을 걸었다. 릭 오케이섹이 만들고 베이시스트인 벤자민 오어가 부른 'Just what I needed'는 라디오를 통해 알려졌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27위에 올라 밴드의 순조로운 출발을 도왔다. 펑크(Punk)의 단순함과 하드 록의 기운이 뉴 웨이브라는 틀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이 곡은 오하이오 익스프레스가 1968년 발표한 'Yummy yummy yummy' 인트로에서 영감을 얻은 단순한 기타 리프로 시작, 신시사이저와 기타가 사이좋게 끝을 맺는다. 릭 오케이섹을 중심으로 한 카스의 음악에서는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동등한 지위를 얻었다. 무덤덤하게 기타를 연주하던 릭 오케이섹의 첫인상은 차가웠지만, 그의 음악에는 팝과 록의 따스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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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in stereo (1978, < The Cars > 수록)

 

1982년 영화 < 리치몬드 연애 소동 >에서 피비 케이츠가 수영복을 탈의했던 장면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Moving in stereo'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데뷔앨범 < The Cars >의 주요 타이틀 곡은 아니었으나 라디오에서 주목을 받아 이후 여러 영화에 삽입되기도 했다.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아래 드럼 비트가 심장 박동처럼 울리는 사운드와 입체적으로 떠돌아다니는 벤자민 오어의 보컬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스테레오 레코딩을 조작하는 행위에서 영감을 받은 릭 오케이섹이 키보디스트 그레그 호크스와 함께 곡을 만들었고 퀸, 저니 등을 맡았던 프로듀서 로이 토마스 베이커가 실험적인 기타 리프를 덧입혀 최면술에 가까운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2019년 < 기묘한 이야기 3 >의 킹카 빌리가 등장할 때 흘러나온 이 곡은 7080 세대에게 다시금 추억을 안기고, 젊은 세대에는 좌중을 압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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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1979, < Candy-O > 수록)

 

이 곡은 릭 오케이섹이 명료한 멜로디를 뽑아내는데 일가견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미국의 인스트루멘탈 밴드 더 로터스(The Routers)의 1962년 원곡을 리메이크한 'Let's go'는 묵직한 록 드럼과 뉴 웨이브 풍의 신시사이저를 촘촘하게 엮고, 쉽고 잘 들리는 멜로디 라인을 내걸어 그룹 카스 발(發) 대중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룹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20위권인 14위에 이름을 올렸고 이는 이후 1980년대 상업적 최전성기를 위한 전초전이었다. 리듬에 맞춰 함께 '렛츠 고!' 하며 따라 부를 수밖에 없는 중독성이 이 노래 곳곳에 자리한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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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 it up (1981, < Shake It Up > 수록)

 

뉴웨이브 밴드였지만 댄스 팝까지 통달한 릭 오케이섹의 폭넓은 작곡 능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시작부터 경쾌한 리듬이 꽂히고, 이어서 등장하는 릭 오케이섹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곡의 정점을 찍었다. 더불어 신시사이저는 코드 톤(코드를 이루고 있는 음)을 사용해 단순하지만 선명한 리프를 만들어냈고, 화음으로 리듬을 표현하는 특이한 주법을 구사했다. 기타는 컨트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펜더 텔레캐스터로 리듬을 연주하고, 록에서 자주 사용되는 깁슨 기타로 화려한 솔로를 선보이는 등 편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악기까지 설명해가며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적절히 섞어내 밴드만의 사운드를 창조하는 데에 탁월했기 때문. “Shake it up!”이라고 외치는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도 한몫했다. 빌보드 싱글차트 4위를 기록하며 카스에게 최초로 톱 텐 히트곡을 안겨준 영광스러운 곡이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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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 (1984, < Heartbeat City > 수록)

 

뮤직비디오 속 천연덕스럽게 물 위를 걸으며 노래하는 릭 오케이섹의 모습이 보인다. 모여든 사람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손을 뻗으며 미친 듯이 열광하기도 한다. 작은 풀장이 순식간에 공연장이 되는 놀라운 마법의 순간이다. 릭 오케이섹의 음악도 마술에 가깝다. 화려한 등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독특한 스타일과 깔끔한 작곡 실력으로 흥을 돋우던 모습은 영락없는 베테랑 마술사의 솜씨가 아닌가. 그중 'Magic'은 천진난만한 신시사이저 멜로디와 시원한 록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다. 정확하게 짚어낸 기승전결과 쉬운 마력으로 빌보드 차트 12위 자리를 거머쥐며 밴드 카스의 대표곡 중 하나로 탄탄하게 자리 잡는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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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1984, < Heartbeat City > 수록)

 

릭 오케이섹은 그 누구보다 재기발랄하고 시크한 인물이었지만 이런 성인 취향 발라드도 쓸 줄 알았다. 부드러운 신시사이저와 하늘하늘한 코러스는 1980년대 팝을 상징하는 부피 큰 사운드의 전형이다. 정작 제목대로 '드라이브'감을 강조한 'Magic' 바로 다음 트랙이라는 점이 재미있는데, 곡의 골격을 확실히 잡고 있는 릭 오케이섹의 감각적인 팝 멜로디와 < Heartbeat City >를 질주감 가득한 로큰롤과 상냥한 신스팝으로 동시에 버무린 프로듀서 존 '머트' 랭의 합작품이다. 팀의 달콤한 목소리 벤자민 오어에게 보컬을 맡긴 결정 역시 이 곡을 1980년대의 교과서로 만든 요소. 'Drive'는 'You might think', 'Magic' 등을 제치고 카스에게 최고의 상업적 영예를 선사했으며(빌보드 싱글 차트 3위), 릭 오케이섹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 촬영 중 만난 21살 연하의 모델 폴리나 포리즈코바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룹과 프런트맨 모두에게 복덩이같은 곡이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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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ight think (1984, < Heartbeat City > 수록)

 

이 노래는 1984년의 시대성을 응축한다. 왬, 컬처 클럽, 듀란 듀란 등이 각축전을 벌이며 꺼내든 중독적인 신시사이저, 즉 뉴웨이브의 흥겨움을 잔뜩 담았고, MTV의 부흥에 발맞춰 '보이는 음악'으로의 매력도 놓치지 않았다. 당대 혁신적인 컴퓨터 그래픽의 활용과 재기발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는 제 1회 <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에서 가장 명망 있는 '올해의 비디오' 상을 수상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릭 오케이섹의 발군의 대중감각은 이후 밴드 위저(Weezer)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며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그때의 인연 덕택일까? 2011년 애니메이션 < 카스2 >의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이 곡은 위저의 연주와 목소리로 그 생명력을 연장했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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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ght she comes (1985, < Greatest Hits > 수록)

 

카스의 중심이자 리더나 다름없던 릭 오케이섹이 만들고 부른 노래다. 'Tonight she comes'는 원래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될 예정은 아니었으나, 결국 베스트앨범에 수록됐고 싱글로도 낙점되어 1985년 세상에 나왔다. 신시사이저와 건반의 역할이 대폭 확대되어 밴드의 사운드를 새롭게 정의한 5집 < Heartbeat City > 이후 발매된 터라 여전히 신스 리프가 곡을 주도하긴 해도, 노래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타리스트 엘리엇 이스턴의 기타 솔로 연주만큼은 초창기 카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해당 곡은 1986년 빌보드 싱글 차트 7위를 기록하면서 카스에게 마지막 톱 텐 기록을 안겨준 "효자곡"이기도 하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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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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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우리가 동시에 침묵했던 순간


인터뷰를 정리하며 나는 인터뷰이가 나를 보던 시선, 그와 둘이 마주하고 있던 순간의 분위기, 그의 목소리의 변화 같은 언어 외적인 요소들을 반추한다. 이 복기의 과정을 통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런 비언어적 요소들을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단어를 고른다. 어떤 문장들은 귓가에 아주 오랫동안 남는다. 짤막한 말이지만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에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순간들의 진실이 들어 있다. 그리고 문장을 넘어 우리가 동시에 침묵했던 순간들도 있다.

 

수십 명의 인터뷰이들을 만났지만 가장 느린 템포로 길게 이어졌던 인터뷰였다. 가장 자주, 오래 들은 음반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그리스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 대왕과 이름이 같은 덕에 자신의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부세팔루스’라 이름 붙였다는 그는 유쾌한 대화 상대였다. 이어서 그는 나에게도 이름 붙인 악기가 있는지 물었고 내 첼로의 이름을 말하자 그가 첼로는 남성(프랑스어에서)이 맞다고, 근사한 이름이라며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처음 만나는데도 마치 수년간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파리 오페라의 발레리나였던 어머니 덕에 5살에 피아노와 발레를 시작했다는 그가 긴 팔을 뻗어 뽀르 드 브라로 몇몇 발레 레퍼토리를 흉내냈고, 이어서 우리는 피나 바우슈와 존 노이마이어 이야기를 하며 가장 좋아하는 파리 오페라의 에투알(최고등급수석무용수)이 누구인지 말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내가 음악가이기는 하지만 나는 사실 춤을 더 동경합니다.” “저 역시 살 플레옐(클래식 공연장)보다 무용 공연을 보러 오페라에 더 자주 가는걸요.” “내가 진짜 가장 이상향으로 삼는 건 사실 사람 목소리예요.” “목소리요?” “노래 말이에요.” “바바라를 알아요?”라고 묻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더니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나직하면서도 호소력 넘치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운데 테이블을 놓고 마주한 상태에서 나는 크리스털 물잔의 남은 물을 얼른 들이켜고 비워진 잔에 그의 스마트폰을 집어 넣었다. “이러면 소리가 더 공명되면서 생생하게 들려요.” 그가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우리는 말없이 바바라의 <Dis, quand reviendras-tu?>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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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와인하우스

 

 

호소력 짙은 나직한 목소리에 실린 시와 같은 가사들이었다. 노래하는 이의 감정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몇몇 단어들을 따라가다 보니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애써 눈물을 참는 나에게 그가 얼른 냅킨을 내밀었다. “이렇게 단숨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게 목소리예요.” 그가 바바라에게 속절없이 반해버렸던 소년 시절의 몇몇 일화를 들려주었다.

 

나는 애써 감정을 절제하려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골랐다. “목소리에는 정말 신기한 힘이 있어요. 듣는 순간 우리를 꼼짝없이 사로잡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온 신경을 다해 거기에 집중하게 만들거든요.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걸 하는 건 좀 힘들지 않아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라는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목소리가 되었어요.”

 

한번 잔뜩 흔들린 마음은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그가 발음한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화살처럼 나를 찔러왔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냅킨을 펼쳐 얼굴을 가렸다. “한 곡만 더 같이 들어요.” 우리는 숨죽인 채로 <Ma Plus belle histoire d’amour>를 들었다. 그가 머무는 호텔 스위트룸의 거실에는 크리스털 잔에 담겨 한층 더 울림이 깊어진 바바라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피아노로 다다르고 싶은 지점, 목소리


같이 노래를 듣다 인터뷰 시간이 모자라게 된 나에게 그가 점심을 같이 먹을지 물었고, 우리는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식사를 주문하고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는 그에게 괜찮느냐고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의 부작용이 생겼거든요. 매번 무대에 서는 게 너무 떨리니까.”

 

부작용이라는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에게 그가 별거 아니라며 여전히 웃는 얼굴로 캐시미어 스웨터를 걷어올려 옆구리를 슬쩍 보여주었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손을 잡아 옆구리에 가져갔다. 마른 몸에 마디마디 등뼈가 드러난 그의 허리 부분에 슬쩍 부풀어 오른 덩어리진 무엇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는 오래되어 몸의 일부 같다며, 지금은 많이 크기가 줄어들었다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지고 있던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이렇게 덩어리진 채 몸에 자리잡았다는 것을 촉감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연주할 때 긴장하면 손이 정말 많이 떨려요. 그래도 우리는 피아노가 앞에 있어서 청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않아 다행이죠. 노래하는 사람들은 정면으로 청중을 바라보며 노래를 하는 거니까, 몸을 떨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꺼내놓는 거니까 정말 대단한 거예요.”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나서도 우리는 좋아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일의 연습과 피아노 소리에 지친 그에게 가장 위안이 되어주는 건 사람의 목소리라고 했다. “피아노로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기도 해요. 내 피아노가 그대로 노래처럼, 한순간에 듣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포로로 만들기를 바라죠. 듣는 즉시 속절없이 사로잡아 꼼짝없이 만들어버리는 건 음악만이 가능한 거니까요.”

 

그가 나에게 좋아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물었다. 넉넉하고 깊고 풍성하면서 동시에 빛이 깃든 목소리를 지닌 소프라노 제시 노먼을 말하자 그가 스마트폰을 뒤져 제시 노먼이 부르는 에릭 사티의 <Je te veux>를 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늦은 점심이라 로비 안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탄산수를 얼른 들이켜고 빈 물잔에 그의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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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노먼

 

 

에릭 사티의 음반도 녹음했던 그가 말을 이었다. “이런 목소리라면 이 곡은 마땅히 소프라노에 의해 불리워져야 해요. 피아노로는 그저 간신히 흉내만 낼 수 있으니까요.” <Je te veux>에 이어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 중 <Mon coeur s’ouvre a ta voix>가 흘러나왔다. “제목대로 정말 그래요. 우리의 심장이 보통 꽁꽁 문을 닫고 있지만 누군가의 목소리에 반했을 때에는 활짝 열리거든요. 그 목소리는 우리의 심장에 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사는 거라고,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이십대 청년이던 어느 혁명기념일에 들었던 잊을 수 없는 <라 마르세예즈>에 대해 말했다. 프랑스 국기를 드레스로 만들어 입은 제시 노먼의 목소리가 콩코드 광장에서부터 샹젤리제 거리를 어떻게 가득 메웠는지, 그의 표정은 그날의 흥분과 감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들었던 제시 노먼의 <라 마르세예즈>는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경험이었으며, 특별하고도 장엄한 아름다움이었다고 말하는 그가 제시 노먼의 <하바네라>를 틀었다. 인터뷰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이어서 그는 마리아 칼라스의 <Casta Diva>를 틀었고, 노래와 노래 사이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바라와 칼라스를 들으며 음악을 꿈꾸고 열망했던 십대 시절과, 음악원을 다니면서 콩쿠르를 준비한 이야기, 음악원을 졸업하고 콩쿠르에 입상하고 나서도 밥벌이가 시원치 않아 무성 영화 클럽의 반주 아르바이트를 맡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 시절의 에피소드가 술술 이어졌다.

 

디저트를 주문하며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궁금하다는 그에게 아델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를 아느냐고 묻자 그가 탁월한 목소리에는 장르의 구분이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로만 보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건 아니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지고 호소력을 갖는 마법이 일어난다는 걸 아는 그가 연달아 노래를 틀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 휘트니 휴스턴, 에디트 피아프, 사라 브라이트만…..


질감과 결과 색채가 다른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우리는 천천히 디저트를 먹고 샴페인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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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어느 여름날의 남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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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사라지지. 우리가 사라지듯이.”


파리에서 몇 번 만났던 피아니스트 B를 인터뷰차 남프랑스 살롱드프로방스에서 다시 만났다. 수영장과 큰 디너룸이 딸린 리조트식 숙소에 미리 도착해 그를 기다렸다. 축제에 온 안면 있는 다른 게스트 연주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지나가면서 "우리는 인터뷰 안 해?" 물어 오기도 했다. 바야흐로 한여름이었다. 정원에 가득한 풀, 꽃, 허브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아서 조금 늦는 B가 계속 늦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도착한 그가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풀이 너무 웃자란 곳을 피하고 꽃향기가 더 가까이 느껴지는 곳으로 테이블을 맞잡고 옮겼을 때는 아직 오후였으나, 그와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긴 여름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빛의 색'이 달라지는 순간에 대해 우리는 무척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알레르기 약을 상비하는 나를 배려해 내가 그늘에 앉고, 그는 정면으로 태양을 마주하고 있었다. 햇빛을 쬐던 그가 나에게 양해를 구한 뒤 내가 벗어둔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를 잠시 끼기도 했다.

 

햇빛의 질감이 점점 달라지자 그가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 피부색에 대한 말하기 시작했고, 지금 이렇게 붉은 석양이 내려오면서 내 눈과 머리카락과 피부가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도 한참을 말했다. 빛에 의해 다르게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일까? 아니면 우리가 진짜 색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는 오랑주리 뮤지엄에서 만나게 되는 모네의 <수련>과 <생라자르 역>에 대해, 그가 수없이 그렸던 시리즈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스피노자의 이름을 꺼냈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던 시기, 딱 1년간 들었던 소르본에서의 스피노자 강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음악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들어 피아노를 계속할 이유를 찾아보려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시기라고도 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를 이야기하다가 훌쩍 1910년대의 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클림트와 실레, 말러와 프로이트, 알반 베르크의 이름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고, 어느새 해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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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와 빈에서 만났던 뵈젠도르퍼 건반의 묵직한 느낌을 먼저 말했던 게 누구였던가. 재정난으로 인해 이곳저곳으로 팔려버린 피아노 회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다가 옛 피아노 얘기로 넘어갔다. 쇼팽이 좋아했다는 플레옐 피아노와 리스트가 좋아했다는 에라르 피아노는 그들의 상반되는 기질만큼이나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여름 해가 길었지만 시간이 훌쩍, 휘발되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쇼팽을 친다고 한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쇼팽이 정말로 꿈꾸었던 바로 그 이상향일까? 악기부터가 다른데.” 그가 어린 시절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플레옐 피아노의 건반이 얼마나 가벼우면서도 밝은 음색을 가졌는지 말했다. 우리는 저녁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사라지고 잊혀진 것들에 대해 말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 우리가 사라지듯이.”


“음(音)도 사라지는걸, 공기 중으로.”

 

B는 손꼽히는 콩쿠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우승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공연을 하며 분더킨트로 불리었고, 이십대 초반에 녹음한 슈베르트의 깊이 있는 해석으로 라두 루푸와 비견될 정도로 놀라운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깊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구나. 프로필 속 이력 몇 줄로 한 사람의 삶을 짐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 한동안 철학 강의를 들으며, 이 모든 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는 그의 이야기에 지나온 어떤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가 실내악 파트너를 함께 춤추는 파트너에 비유했다. 피나 바우슈,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윌리엄 포사이드, 크리스털 파이트…. 좋아하는 안무가들의 이름을 말하는 동안 하늘이 어둑해지며 저녁 공연 준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뤽상부르그 정원 앞 카페 로스탕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이라고 말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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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브람스의 방문


다음 날 오전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독일 번호였다. 다음 주에 독일에 가는 만큼 취재를 요청한 공연 기획사겠거니, 하고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할로” 발음하며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친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부드럽고 다정하고 익숙한 불어, 생기 어린 목소리의 G였다. 근처의 도시에서 연주를 하는 그가 원래는 매진인 공연 티켓에 여유가 생겼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는 나의 씩씩한 독일어 목소리에 꽤 놀란 것 같았다. 살롱드프로방스에서 B와 인터뷰를 했다고 하자, G가 놀랍게도 사실은 B와 오래전에 함께 실내악 연주를 종종 했다고 말하며, 당시에는 오히려 B와 평생 함께 듀오를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살롱드프로방스에서 기차를 타고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하니 기온이 36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탈수 증세가 일어날 것만 같은 한여름이었다. 피아노로 바바라의 목소리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피아니스트 A와 G의 조합이 브람스에 어울릴까? 하는 의문도 잠시 들었다. A의 피아니즘은 너무나 프랑스적이다. 고요하면서도 얼음같이 차가운 음색에, 투명할 정도로 빛나는 소리, 아티큘레이션이 돋보이는 핑거링과 마치 무용수처럼 움직이는 우아하고도 절제된 팔놀림까지…. 그와 독일 음악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늘 생각하고는 했다.

 

반면에 G는 어떤 레퍼토리에서도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첼로 조프레도 카파는 유난히 둥글고 서정적인 소리를 낸다. 선 굵은 브람스, 드라마틱하게 뻗어나가는 굵직하고 진한 선율을 빚어내며 압도적인 소리를 내는 몬타냐나 같은 첼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듀오의 브람스를 듣기 전, 두 가지 경우를 생각했다. 이 둘의 조합이 아방가르드적 퀴진처럼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혹은 실패한 퓨전음식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니거나 할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하며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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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라는 것은 얼마나 빗나가기 쉬운 걸까. 그날의 브람스는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이 그렇게 산뜻하고 투명하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저녁이었다.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객석 전체에서 뜨거운 기립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두껍고 육중하게, 불투명하게 겹겹이 쌓인 구조를 갖춘 음악이 아니었다. 산뜻하고도 절제된 가운데 마치 한 몸이 된 연인처럼 피아노와 첼로가 만들어가는 브람스는, 젊은 시절의 그를 직접 만나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이 나지 않았을 얼굴로 슈만을 찾아왔을 때처럼, 클라라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품고 곡을 써내려 갔던 그런 젊은 청년의 얼굴이, 서늘한 피아노와 매끈하게 정제된 결이 고운 첼로 소리를 통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차갑고도 투명하다가 순간 불붙는 피아노 소리로 빚어내는 황량하고도 고독한 단조의 선율들이 얼음으로 만든 칼날처럼 나를 베어내며 지나갔다. 낮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며 속삭이는 첼로의 깊은 울림.

 

무대 뒤에서 만난 G는 재킷을 벗은 셔츠 차림이었다. 그와 프랑스식 인사를 하는데 흠뻑 젖은 등에서 확, 열기가 전해졌다. 맞댄 뺨에서 땀방울이 묻어났다. 전력에 문제가 생겨 홀의 냉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G도 그제서야 더위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완전히 새롭게 들리는 브람스에 황홀하게 취해 잠시 모든 감각을 초월할 수 있었던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Jean-Guihen Queyras / Alexandre Tharaud - 브람스: 첼로 소나타, 헝가리 춤곡 Johannes Brahms 작곡/Alexandre Tharaud, Jean-Guihen Queyras 연주 | Warner Classics / Erato Records
케라스는 최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베토벤 실내악 시리즈로 각종 음반상을 휩쓸어 브람스 연주에 더욱 큰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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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진저 베이커, 드럼 거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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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드러머'  '드럼 마왕' 진저 베이커가 현지 시각 6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전설의 파워 트리오 크림(Cream)의 결성을 주도한 당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파괴적이고도 정격적인 드럼 연주로 일거에 록의 판도를 바꿔 놓은 것은 물론 프리 재즈의 자유로움과 월드 뮤직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엮어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붉은 머리칼의 드럼 마에스트로, 록 최초의 드럼 슈퍼스타, 진저 베이커의 업적을 굵직한 이름으로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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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 파워 트리오

 

크림은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슈퍼 그룹이다. 지금도 전설이지만 당대에도 검증된 실력자들이었던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와 진저 베이커는 기타 - 베이스 - 드럼의 삼중주로 낼 수 있는 소리의 극한과 무아지경의 즉흥 연주, 사이키델릭의 성향에 엄격한 규격을 부여하며 록 역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흥미로운 점은 멤버들 중 누구도 크림을 록 밴드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프리 재즈에 심취한 잭 브루스는 크림을 '일종의 재즈 밴드'라고 생각했으며 야드버즈를 '너무 팝적’이라 탈퇴한 에릭 클랩튼은 블루스에 영혼의 충성을 맹세한 뒤였다. 팀의 결성을 주도한 진저 베이커 역시 '나는 로큰롤이 싫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실제로 진저 베이커를 음악의 길로 안내한 이들은 애커 블릭, 테리 라이트풋 같은 재즈 맨들이었으며 그의 상징적인 더블 베이스 드럼 (더블 킥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연주는 듀크 엘링턴 밴드의 드러머 샘 우드야드로부터 따온 것이었다.

 

뜻이 어찌 됐든 그 치열함과 극한의 테크닉은 크림을 1960년대 록 시장에서 단숨에 슈퍼스타로 만들어주었다. 모든 것이 혁명이었지만 진저 베이커의 드럼은 특히 그 적수가 거의 없었다. 모든 록 드럼 솔로 곡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Toad' 한 곡만으로도 진가가 드러난다.

 

영화 <조커>에 삽입되어 익숙한 'White room'에선 묵직한 베이스 드럼과 세밀한 스네어 드럼, 하이햇 컨트롤을 오가고, 17분짜리 'Spoonfull' 라이브를 통해 기막힌 셔플 연주와 강약 조절로 연주 미학의 처절한 꽃을 피운다. 'Sunshine of your love'가 헤비메탈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에릭 클랩튼의 화려함과 잭 브루스의 백비트 리듬을 보좌하는, 강철같고도 그루비한 드러밍 덕이다.

 

1966년 결성된 크림은 2년 동안 <Fresh Cream>, <Disraeli Gears>, <Wheels of Fire> 단 세 장의 정규 앨범으로 그들의 운명을 마무리지었다. 잭 브루스는 진저 베이커의 드럼 세트를 박살냈고 진저 베이커는 드럼 스틱으로 잭 브루스의 머리를 내려치며 응수했다. 대중음악의 위대한 세 광인(狂人) 중 이제 남은 이는 에릭 클랩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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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페이스와 새로운 시작

 

크림 해체 후 진저 베이커는 에릭 클랩튼과 함께 또 하나의 슈퍼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결성한다. 트래픽(Traffic)의 키보디스트 스티브 윈우드가 전권을 잡은 블라인드 페이스는 비록 에릭 클랩튼의 싫증으로 단 한 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졌으나, 진저 베이커는 이 와중 15분짜리 'Do what you like'에서 블루 노트 레이블을 연상케 하는 섬세한 심벌 컨트롤과 야성미 넘치는 드럼 솔로로 또 다른 슈퍼 그룹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진저 베이커의 재즈적 터치에 반한 스티브 윈우드는 블라인드 페이스 해체 후 제 3의 슈퍼 그룹 진저 베이커스 에어 포스(Ginger Baker's Air Force)에도 함께한다. 드럼, 퍼커션, 팀파니와 보컬을 담당하며 명실상부 리더로 거듭난 진저 베이커는 재즈 록 퓨전과 아프로 비트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음악 세계를 확장해보였다. 실황의 자신감 또한 여전해, 그룹의 첫 정규 앨범 역시 영국 로열 알버트 홀에서의 라이브 실황 기록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었다.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이 'Blue rondo a la turk'로 선보였던 12/8 박자에 가나 드러머 레미 카바카가 토속적 색을 더한 'Aiko biaye'는 향후 이 붉은 머리 드러머의 행선지를 예고한 트랙이었다. 진저 베이커는 1971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로 건너가 다큐멘터리 감독 토미 파머와 함께 '아프리카의 진저 베이커'를 촬영한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전설적 만남이 성사된다. 아프로 비트의 대부 펠라 쿠티(Fela Kuti)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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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라 쿠티와 아프로비트, 그리고 재즈 탐구

 

펠라 쿠티는 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전통 음악으로부터 재즈와 펑크(Funk)를 추출해낸 아프로비트(Afrobeat) 리듬의 창시자다. 사이키델릭 음악의 주술성, 블루스의 메기고 받기, 전통 타악기의 리듬을 결합한 아프로비트 음악은 재즈와 블루스의 고향에서 리듬의 원형을 찾고자 랜드 로버를 몰고 아프리카를 횡단하던 진저 베이커에게 너무도 매혹적인 것이었다.

 

둘은 펠라 쿠티의 밴드 아프리카 '70(Africa '70) 무대에서 협연을 펼쳤고 이 실황은 1972년 <Live!>로 기록됐다. 아프리카 '70의 드러머 토니 앨런과 진저 베이커는 이 앨범에서 본능에 온몸을 내던진 채 리듬과 그루브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훗날 재발매된 앨범에 수록된 1978년 베를린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16분짜리 드럼 솔로는 두 대륙의 장인이 만든 치열한 악기 예술의 현장이다.

 

이후에도 진저 베이커는 베이커 거비츠 아미(Baker Gurvitz Army), 진저 베이커 트리오(Ginger Baker Trio)를 결성하며 테크닉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섹스 피스톨스의 조니 로튼이 독립하여 만든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의 전위적이고 삭막한 리듬 역시 진저 베이커의 창작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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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의 드럼 거장은 고집스러웠다. 1993년 그를 로큰롤 명예의 전당으로 인도한 크림 활동에 대해 '신에게 맹세컨대 나는 록을 연주하지 않았다. 크림은 두 명의 재즈 플레이어와 한 명의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즉흥 연주를 선보인 팀이었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013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다큐멘터리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의 늙은 아티스트는 분명 고독하고 비타협적인 인물이었다.

 

바로 이 올곧음이 대중음악에 다채로운 씨앗을 뿌렸다. 블루스, 록, 헤비 메탈은 물론 재즈계와 월드 뮤직, 나아가 디스코 펑크(Funk)와 힙합까지 그의 드럼 연주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우리는 이 위대한 드러머, 진저 베이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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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어엿한 뮤지션으로 - AK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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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YG엔터테인먼트

 

 

지금도 사람 많은 전철에서 다리를 벌리거나 꼬고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악동뮤지션의 시작을 알린 노래 「다리 꼬지 마」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제는 사라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동뮤지션의 역사는 시작되는데, 친남매 그룹이자 멤버가 각자가 노래 만들기와 노래하기에 특화된 그룹은 대중가요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말하자면 악동뮤지션의 역사는 곧 가요의 역사이며 악동뮤지션의 발자취가 곧 모두의 발걸음인 셈인데, 팬으로서의 단 한 가지 걱정이었던 것은 이 그룹에게 ‘악동’이라는 명사가 이름으로 어울리느냐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해체의 걱정이 덜하고, 그래서 오래토록 활동할 그룹이기에 이 걱정의 체감은 더했다. 언제까지 악동일 수 있을까. 언제까지 10대이려나.
 
악동뮤지션는 앨범 아트 및 각종 음원 사이트에 표기되듯 'AKMU'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저 네 글자 알파벳은 여태 악동뮤지션의 줄임말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었겠으나, 정규 3집 앨범 <항해>를 통해 비로소 완연한 이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요컨대 그들은 악동에서 뮤지션으로 이동을 이제 완료한 것이다. 기발하고 안정적인 프로듀싱에 정확하고 청아한 보컬을 겸비한 그룹이 이제야 뮤지션으로 보인다니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 전의 악동뮤지션과 이번 앨범 후의 AKMU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지난 앨범들에 실린 작품들인 「200%」,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리얼리티」, 「DINOSAUR」 등은 주로 10대 소년 소녀의 발랄함과 엉뚱함, 재치를 그린다.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기를 망설이는 청소년의 의구심과 상실감이라거나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어린 낭만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 3집 앨범 <항해>는 다르다. 누구나 노래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에서부터 어른이 된 자신 앞에 놓인 잔잔한 동시에 광포한 바다를 노래한다. 이렇듯 전철의 매너 없는 인간들에게 「다리 꼬지 마」라고 일갈하던 악동들은 이제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고 어엿한 이별을 맞이하는 뮤지션으로 한 차례 성장을 완료한 것이다.
 
찬혁은 이번 앨범의 전반적인 프로듀싱과 함께 수록곡과 같은 제목의 소설  『물 만난 물고기』  를 동시 출간함으로써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의 족적을 남기고 있다. 수현은 라디오 DJ로, 1인 방송 진행자로 다양한 활동을 능숙하게 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수로서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은 이번 앨범 개개의 노래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뱃노래」에서 수현의 보컬은 대체불가능한 목소리임을 증명하고, 「달」의 가사는 근래 어느 케이팝의 가사보다 시적이다. 「밤 끝없는 밤」은 편안한 목소리의 친구 같고 「시간을 갖자」는 각별한 사랑을 나눈 연인의 목소리 같다. 「FREEDOM」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멈출 수가 없다.
 
그들이 발표한 거의 모든 음원이 그렇듯이 <항해>의 수록곡도 발표되자마자 차트의 윗줄을 점령했다. 음악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카페나 패션 매장에 가면 실시간 인기곡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경우 그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하지만 AKMU는 다르다. 어느 장소에서든 수현의 목소리는 사람의 귀를 잡아 끈다. 어떤 시간대이건 찬혁의 멜로디와 가사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이번 앨범은 특히나 그렇다.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AKMU의 또래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어떻게 시작해야 될는지, 어떻게 떠나야 할는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 할는지 같이 고민할 뮤지션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이제 본격적인 뮤지션으로, 풍부한 개성의 아티스트로 다음 차례의 성장을 준비하는 듯하다. ‘항해’를 기본적 콘셉트로 한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서 찬혁은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 있다. 수현은 빈 노트 위에 팬을 잡은 손을 올려둔 채 책상에 앉아 있다. 그들은 그림을 완성하기 못해, 글을 다 못해 괴로워한다. 앨범 아트에서 디자인 요소로 쓰이기도 한 푸른색 회화 작품이 완성되고, 그들은 바다로 나아간다. 이 항해가 되도록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파도와 폭우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악동에서 뮤지션으로 변신을 완료한 그들은 이제 항해 중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을 것이다. 


 

 

악동뮤지션 - 항해악동뮤지션 노래 | YGPLUS / YG엔터테인먼트
지난 앨범까지는 온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없던 아이와 청소년이었다면, [항해] 앨범 속 ‘AKMU’는 나를 지켜주던 보금자리를 떠나 사회로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의 모습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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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2019년에도 유효한 1999년 가요 30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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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Z세대는 '온라인 탑골공원'과 '온라인 노인정'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기획이 불러온 유행과는 다르다. 디지털 시대의 신세대들은 '레트로 도서관' 유튜브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세기말을 즐거운 놀이의 도구로 활용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아련한 추억으로,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활용하는 '레트로 퓨처'다.1999년 가요 특집을 기획하는 것은 묘했다. IMF의 구제 금융을 받고 있던 그 시절 한국은 지금의 유튜브 댓글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호시절'이 아니었다. 재계 2위 대우그룹이 해체됐고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으며 화성 씨랜드 참사 등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국토 전역에 보급된 인터넷이 새로운 새천년에 주어진 일말의 희망이었다.그 기록과 기억 덕인지 지금부터 소개할 노래들은 20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도 전혀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의 가요계를 만들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소비되는 1999년의 유행가 30곡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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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 To heaven

 

20년 전의 발라드는 투박하고 직선적이었다. 지금이야 비교적 웅장했던 스트링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플루트 같은 관악기까지 합세해 유연한 느낌을 도출해내지만, 당시에는 8비트의 정직한 드럼과 간주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기타 솔로가 정석이었다. 'To heaven'은 당시를 대표하는 발라드의 표본이다. 이는 그때의 직설적인 감성을, 자글자글한 텔레비전 화질의 향수를 떠오르게 한다. 섬세한 미성의 보컬, 차가운 음색의 피아노 연주는 언뜻 건조하게 들리지만 꾸밈없기에 순수하게 와닿는다. 각종 상을 휩쓸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며 '얼굴 없는 가수'에서 당대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만들어준 영예의 곡.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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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 영원한 사랑

 

새끼 손가락을 들고 '약속해줘'하는 장면은 남녀노소 모두가 안다. 제목은 헷갈려도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영원한 사랑'은 1집 성공에 이어 핑클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았다. 전주의 피아노와 웅장한 세션 사운드가 지금은 촌스러울지 몰라도 옥주현의 깔끔한 고음으로 완성도를 높였고 전국민이 따라 춤출 수 있는 안무로 대중성을 잡았다. 1999년 서울 가요대상과 가요대전에서 걸그룹 최초로 대상을 받은 것은 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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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K - 헤어진 후에

 

한일 합작 록 밴드, Y2K의 1집에 수록된 '헤어진 후에'는 그때이기에 유행했고 그때이기에 가능했던, 가요가 담을 수 있는 화려하고 담백한 록 사운드다. 다채로운 기타 소리 위에 흘러나오는 직관적인 가사와 선명한 멜로디 라인.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 플라워의 'Endless'와 함께 노래방을 제패한 이 곡은 1980년대의 부활부터 2000년대의 버즈까지 이어지는 록 발라드 시대의 중앙에 위치하고, 그렇기에 정확하게 그 포인트를 담고 있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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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타이거 -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 업타운과 지누션이 있었음에도 한국인들은 힙합을 잘 몰랐다. 너도 나도힙합 패션을 따라하면서도 기성 가요를 힙합으로 착각했고 랩을 노래의 부수적 요소 정도로 여겼다. 훗날 타이거 JK는 '매일 밤 01'에서 당시 힙합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이렇게 기억한다. '힙합 좀 안다구 젝키춤에 텀블링 현란한 안무'.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교포 듀오 드렁큰 타이거의 등장은 그런 가요계에 떨어진 불호령이었다. '음악같지 않은 음악을 이젠 모두다 집어치워 버려야 해'라는 호기로운 선언은 김진표가 도운 빽빽한 랩과 경탄의 속사포 영어 랩으로 당위를 얻었다. PC 통신과 언더그라운드로 알음알음 형성되던 한국 힙합 마니아들은 현란한 '진짜 힙합'에 열광하며 '부쳐핸섬(Put your hands up)'을 목놓아 외쳤다. 술 취한 호랑이 둘의 과감한 질문이 한국 힙합을 개안시킨 것이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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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 - 돌아와

 

새천년을 앞둔 1999년에는 테크노와 미래지향적 콘셉트가 합쳐진 음악이 쏟아졌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체육대회를 준비하다 접하게 된 댄스 음악의 매력(?)은 잠들어있는 내적 흥을 발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여성 보컬 김태영,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되는 강력한 리듬은 이 곡의 매력이다. 강원래와 구준엽이 만든 클론 세상은 199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꿍따리 샤바라', '초련'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댄스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에 활력을 주는 존재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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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태 - 순정

 

이 곡은 나의 첫 사회 경험과 맞닿아 있다. 욕은커녕 소심한 성격에 처음 학교 문턱을 넘던 날 세상은 그저 규율과 엄격함, 그리고 어색함뿐이었다.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답답한 생활환경 속에서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이 노래였다. 왜 초등학교 운동회의 단체 군무용으로 이 곡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나는 빨간 티셔츠에 소고를 들고 열렬히 뽕짝, 클럽 사운드를 즐겼더랬다. 비련미 가득한 가사에 일순간 중독되어 버리고 마는 마성의 멜로디 '워어어 워어어'에는 '그땐 그랬지'류의 아련함이 묻어있다. 김종민, 빽가가 합류하기 이전의 코요태 원년 멤버가 함께 불렀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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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는 에스이에스 2집(1998)의 후속 활동 곡이었다. 곡의 운명은 여러 번 바뀌었다. 노래는 1집(1997)의 수록곡에서 2집의 타이틀곡으로, 다시 2집의 후속곡으로 조정됐다. 당초 데뷔 앨범을 제작하며 2집을 위해 아껴둔 노래였지만, 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유로 팝 'Dreams come true'에 선두 자리를 밀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노래는 1집의 '('Cause) I'm your girl', 'Oh, my love'에 이어 친근한 콘셉트와 멜로디로 사랑받았다. 지금까지도 에스이에스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소녀 이미지는 이 곡으로 완성됐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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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 어머님께

 

텔레토비 보던 나를 아이돌로 이끈 곡이다. 이 자장면 송에 추억 없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이유로 god에 처음 빠지게 됐는지 까먹었을 만큼 시간이 지났어도 (다음 해에 나온 육아일기 예능이 불을 지폈던 것 같다.) 곡 하나로 좋아했던 god의 잔상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와썹맨으로 더 유명해진 박준형과 그의 홀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박진영이 쓴 노래이나, 투팍과의 표절 논란으로 투팍에게 저작권이 넘어갔다. 요즘 어머님들은 자장면보다 탕수육을 더 좋아하실 만큼 형편이 나아졌지만 가난했고 어렵던 시절 가출 청소년들은 '어머님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엄마를 졸라 여보갈비(윤계상 부모님이 운영하던 갈빗집)에 가자고 했는데.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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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 사랑보다 깊은 상처

 

"크게 라디오를 켜라"던 헤비메탈의 기수는 새천년을 앞두고 알앤비 가수와 '완벽한' 호흡을 뽐냈다. 임재범의 허스키 보이스가 뿜어내는 농밀한 어덜트 발라드 감성은 수많은 메탈 팬들에게 배신감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정말, '20세기의 음악' 헤비메탈의 항복선언일까. 글쎄. 오히려 이 노래는 우리가 진정한 '한국의 데이빗 커버데일'을 갖게 됐다는 확정판결이 아니었을까. 커버데일이 메탈만 잘 불러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듯, 임재범도 한 그릇에 머물지 않았기에 임재범이지 않을까. 물론 최고급 록 보컬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박정현의 가창도 일품이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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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1998년 <Crom's Techno Works>에서부터 보여준 신해철의 테크노 실험은 1999년으로 이어졌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크리스 샹그리드와 팀 모노크롬을 꾸렸고, 그 후 나온 앨범이 그의 4집 <Monocrom>이다. 그중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는 신해철이 청춘에게 날리는 육중한 일갈이다. 호통치듯 세차게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반복하는 노랫말은 꿈과 갈 길을 잃은 현재 젊은이들의 사정과도 맞닿은 듯, 여전히 그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 끊긴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꺼내 들어볼 만한 노래. 2003년에는 헤비메탈 밴드 크래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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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오티(H.O.T) - 아이야!(I YAH!)

 

일찍이 故 신해철은 '남이 써준 가사로 세태를 비판하는 건 정말 멋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고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에 대한 언급을 지속해 갔다.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된 채 인위적 판타지만을 제공하는 작금의 케이팝 신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때가 더 도전적이고 과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1999년 6월에 일어났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를 모티브로 한 이 노래는, 기성세대의 욕심을 비판함과 동시에 삶을 꽃피워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19명의 어린 영혼을 추모하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트렌드였던 뉴메틀적인 요소와 더불어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과 베토벤의 월광을 삽입하며 웅장함과 비장함을 더하는 등 음악적인 시도 또한 게을리 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했다. 사고로부터 불과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들려왔던 이 노래. 아이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었던 그룹의 걸작이다.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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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 미안해 널 미워해

 

2집 <戀人>에 수록되며 1998년 말에 발매됐으나 수록곡 '미안해 널 미워해'는 발매 이후 장기간을 인기곡으로서 보냈다. 그보다 이른 시점에 밴드는 이미 'Hey Hey Hey'로 성과를 거두며 이름을 많이 알린 상태였다. 다만 오로지 기존의 성취만이 후속의 성공을 이끌어낸 것은 아니었을 테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타 록 사운드가 있고, 그 너머에는 멜랑콜리한 선율이 내재했으며, 가장 깊은 곳에는 이별의 아릿한 서정이 담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곡 특유의 아릿한 정서와 거친 기타 록 사운드를 특유의 비음 섞인 중저음 목소리로 온전하게 소화해내는 김윤아의 가창이 존재했다. 사람들을 매혹할 요소들은 죄다 갖고 있었기에 곡의 성공에 문제를 제기할 여타 사유는 없었다. 이것으로 자신들의 성공 사유를 일찌감치 확증한 자우림과 김윤아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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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 여전히 아름다운지

 

고음을 위해 노래가 만들어지던 1990년대 '대고음시대'에 노래를 위해 고음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다.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그럴 때마다' 등 몇몇 곡을 통해 유희열의 하드웨어로서 역할을 한 김연우가 또 한 번 참여하여 호소력을 더했다. 토이의 디스코그래피에 결정적인 한 방으로 기록된 이 곡은 <A Night in Seoul>을 1990년대의 명반 중 하나로, 유희열을 대한민국의 대표 싱어송라이터로 발돋움하게 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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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 - 천년의 사랑

 

밴드 부활의 멤버였던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은 한국 '록 발라드'의 역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금이야 록이 시장에서 모습을 감추고 발라드는 스트링 어레인지가 대부분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이 둘의 조합은 성공 공식이었다. 특히나 강렬한 하드록 사운드와 고음을 내지르는 보컬에 맞춰 비상하는 기타 솔로, 애절한 가사, 여기에 웅장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현악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더해진 '천년의 사랑'은 한국인의 정서를 겨냥한 '록 발라드'의 정석이자 노래방 인기곡으로 남아있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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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 - 몰라

 

2000년대 들어 섹시의 헤게모니는 핑클의 이효리에게 넘어가지만 김완선 이후 부재하던 '섹시 퀸'은 세기말 인기가 급부상한 엄정화와 함께 주인을 찾는다. KBS 라디오 '가요광장'의 진행을 통해 음악 공력을 쌓던 그는 커플로 수식된 송라이터 주영훈을 만나 가공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1999년에 발표한 5집에 수록된 '몰라'의 작곡자는 주영훈이 아닌 '히트제조기' 김창환이었다.그만의 클럽 형 일렉트로닉 댄스비트에다 한번만 들어도 바로 포박당하는 멜로디를 내걸었으니 성공은 예약된 상황. 엄정화 역시 리듬을 끊어 타는 방식, 약간은 비주얼과 맞춘 사이버틱 이미지의, 이전과는 다른 보컬로 접근하는 공을 들였다. 이 곡은 그를 커리어 꼭짓점으로 끌어올려 많은 상품광고모델을 독점했을 만큼 당대 '원탑'으로 군림했다. 영화든 TV든 정말 그때는 엄정화만이 눈에 보였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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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 - Tell me, tell me

 

20세기의 추억으로 남을 뻔한 샵을 21세기로 끌어올린 두 번째 앨범 <The S#arp 2>의 타이틀곡으로 선배 그룹 룰라의 이상민이 프로듀싱한 1998년 데뷔작 <The S#arp>의 'Yes' 같은 개성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1집 'Lying'의 댄서블하고 편한 이미지에 힌트를 얻어 이 곡을 쓴 작곡가 박근태와 다시 손잡고 1999년 12월 'Tell me, tell me'로 첫 정상에 올랐다. 이후 같은 앨범의 '가까이'를 비롯해 'Sweety',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등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히트곡으로 전성기를 달렸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세기말 인류 멸망의 전조를 극복한 샵은 팀 내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2002년을 끝으로 세기 초의 기록으로 남았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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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 - Get up

 

김형석은 그윽하면서도 귀에 빠르게 익을 멜로디를 지었다. 반주는 단출하면서도 적당히 경쾌했다. 서윤경의 가사로 노래는 고혹적인 자태를 냈다. 김조한은 이 성분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도입부에 이어 그가 곳곳에 입힌 애드리브는 노래에 흥과 속도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근사한 마감재가 됐다. 이것들이 이룬 시너지로 베이비복스는 이전과 다른 이미지를 갖추는 데에 성공한다. 귀엽고 발랄했던 소녀들이 1년 만에 섹시한 숙녀가 됐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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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 와

 

'와' 무대의 모든 요소가 세기말의 도상이 됐다. 외눈 부채, 새끼손가락 마이크, 무협지에 나올법한의상과 사이버펑크 스타일링,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와 거대한 비녀까지. 영화 <꽃잎>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신인배우 이정현은 '와' 이후 '바꿔', '줄래', '반'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IT 강국의 테크노 여전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충격과 파격이 절실했던 IMF 구제금융 시기의 일탈이자 상징적 인물이었다. 누군가 1999년의 가요계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이정현을 보게 하라.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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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 되돌아온 이별

 

그때는 이래도 됐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적나라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뽕삘'이 선명한 선율을 고음으로 내질러도 괜찮았다. 오늘날 누구도 듣지 않는 메탈 기타 리프를 전면에 내질러도 됐다. 적어도 그때의 우리는, 이른바 '힙하고 독특한 것'을 찾아다니며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려 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감정이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김현정 음악엔 그 모든 솔직함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20년 전 카세트 노점 리어카의 스피커를 울려대던 이 곡이 아직도 사람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이유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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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 T.O.P(Twinkling Of Paradise)

 

어릴 적, CD로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전주에서 클래식이 나와 고장이 난 줄 알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곡이더라.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소화하고 D.R.C(Dangerous, Risky, Chaos), D.O.P(Delight Of Passion) 등 풀이가 필요한 가사를 사용하는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수준 높은 무대를 제공한 덕분에 1990년대 말 아이돌 홍수 속에서 대중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그룹의 존폐를 두고 나온 2집 <T.O.P>가 그들을 '신화'로 만들었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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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타임 - 1TYM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2019년만큼 힙합이 여러 경로로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다. 그럼에도 주류 신 곳곳에서는 힙합을 하거나, 힙합을 표방하거나, 힙합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식의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다. '1TYM'으로 등장한 원타임도 그 대종이었다. 국내 메인스트림에서의 힙합을 통시적으로 얘기한다면 우리는 이 곡을 당대의 사례 중 하나로 언급해야 한다. 이어 우리는 향배의 변곡점 중 하나로도 이 곡을 한 번 더 얘기해야 한다. '1TYM'을 통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원타임은 이어 힙합을 하는 그룹으로 오래 활동해낸 데다, 그룹의 중심이었던 테디는 한 레이블의 음악적 주축으로서 경력의 상당 기간을 보냈다. 또한 곡이 수록된 앨범이자 그룹의 데뷔작 <One Time For Your Mind>의 성공에 힘입어 YG는 블랙 뮤직 레이블로서 연이어 성과를 기록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향후 K-POP 산업의 주축이 되는 연예 기획사로서의 가능성을 점칠 수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1990년대 말, 당시의 음악 트렌드를 대표하면서도 미래의 산업 양태를 여러모로 잠재한 곡이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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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인들 - 빙(氷)

 

한 편의 콩트다. 등굣길에 골목길의 깡패한테 돈을 뜯기는 학생의 시선, 학생을 갈취하는 깡패의 시선, 학교 주변을 순시하며 불량배들을 몰아내려는 원로 선생님의 시선을 섞어 시대상을 보여 준다. 교복 바지를 힙합 스타일로 크게 입는 패션의 유행, 학생 인권 신장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많은 학교에 확산된 체벌 금지 조치, 이를 악용하는 학생들 때문에 조심스러운 교사의 모습이 줄지어 나온다. 연기를 하는 듯한 세 멤버의 래핑 덕에 노래는 한층 사실적으로,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폴리티컬 힙합과 코미디 랩의 조화! 1999년에는 이런 힙합이 있었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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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에이 - 섹시한 남자

 

원년 멤버가 해체되고 새로운 멤버로 다시 꾸려진 스페이스 에이의 앨범 <Maturation>의 타이틀곡이다. 당시 테크노가 유행하면서 리듬은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신시사이저를 사용해 중독성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선 팀 중 하나가 스페이스 에이. 제목만 들으면 지금도 익숙한 후렴구가 떠오른다. 화려한 복장의 그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면 덩달아 춤추는 재미도 쏠쏠했다. 게다가 촌스러운 복고풍 사운드가 이렇게나 신날 일인가? 20년이 지난 지금, 테크노의 세계로 우리를 소환한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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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 서커스 매직 유랑단

 

갓 스물을 넘긴 나의 각오는 단 하나였다. '학교는 안 가도 공연은 간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당시 내 사회학 교재는 홍대 클럽 문화였고 거기에는 제도권 하 규칙대로만 커온 내가 향유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녹아있었다. 그중 매달 빼놓지 않고 참여했던 게 바로 크라잉넛의 공연이었다. 그러면서 확신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들의 음악에는 '향수'가 '낭만'이 있다는 거였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크게 따라 부르기 좋을, 잘 불러도 못 불러도, 땀 흘리며 함께 할 수 있는 외침과 아코디언이 전해주는 멜랑꼴리함이 특유의 서정성을 뽐낸다. 벌써 발매 20년이 되었다니. 노래와 함께 흘러가는 삶이 새삼 꽤 근사하게 느껴진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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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 - 너를 보내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멜로디가 따라 부르기 쉬워서인 것도 있지만,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마냥 좋았었다. 연인의 사별이라는 비참한 주제는 절로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걸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한 가사로 풀어내어 더욱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세차게 힘을 가하는 강한 록 음향과는 대조적으로 여리고 부드럽게 자리한 비유 표현들도 슬픈 감성을 짙게 하는 포인트. 1994년 1집 수록곡이었던 이 노래를 1999년에 리메이크해 발매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가장 사랑받는 윤도현의 노래 중 하나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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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 시작

 

<응답하라 1994>에서 고아라가 이 곡을 부른 덕에 다시 박기영의 음악을 꺼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곡에 얽힌 일을 생각할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데뷔 초였던 박기영은 자신이 만든 곡을 내세우지 못하고 작곡가가 쓴 곡을 불러야 했다. 그래서 일본 밴드인 브릴리언트 그린의 'There will be love there'을 표절했다는 의혹은 고스란히 그가 받게 되었다. 이후 발매된 5집의 '나비'는 어린 나에게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매력을 알려준 소중한 곡이다. 박기영은 자신을 표절 논란에 휘둘리는 상태로 방치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작곡을 발표했고 또 좋은 곡을 만들어내며 성장했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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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 P.S. I love you

 

2011년도 방영한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자신의 곡 '꿈에'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능수능란하게 열창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워낙 충격적인 탓에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장면이다. 그런 그의 1집 <Piece>에 수록된 'P.S. I love you'는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또 다른 의미의 놀라움이다. 미묘하게 앳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미 완성형으로 다듬어져 있는 특유의 소울틱한 보컬과 신비로운 감각. 정말 신인의 목소리가 맞는지 싶다. 그가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알 것 같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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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상자 - 신부에게

 

'신부에게'를 발표하기 전부터 유리상자는 결혼식 축가 게스트로 유명했지만 이때는 주로 해바라기나 한동준의 노래를 불렀다. 1999년에 공개한 3집을 완성하기 직전에 박승화는 자신들의 노래로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세준과 음반사 대표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부랴부랴 노래를 만들어서 3집에 수록한 곡이 '신부에게'. 박승화가 멜로디를 만들고 이세준이 가사를 쓴 '신부에게'는 이렇게 소심한 욕심으로 탄생해 이제는 거룩한 결혼축가가 됐다. 서둘러 제작하느라 악기 구성이나 사운드 믹싱에 아쉬움이 있지만 20년이 흐른 현재 그 단점은 오히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해 유통기한 없는 영생을 얻었다. 지난 5월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유리상자가 출연한 건 당연했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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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 오직 너뿐인 나를

 

지극히 대중지향적인 이승철은 이 무렵 록 밴드 출신과 흔히 연결되는 지르기(shouting)과 쥐어짜기(screeching)와 작별하고 부드럽게 부르기(crooning)에 집중한다. 2000년대 이후 그에게 전성기의 지속가능성을 선사한 '감성창법'이 1999년 라이브 베스트와 함께 엮은 6집에 수록된 이 곡으로 본격화했다. 힘을 빼고 충분히 참으면서 적절하게 흉성과 두성을 배합해 창조한 소프트 앤 멜로는 '보컬 극강'만의 필살기였다.스스로도 얼마 전 한 TV프로에 나와 욕심을 버린 무심(無心)으로 터뜨린 대박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미국의 친구가 곡을 들려줬는데 너무 좋아 술 먹다 말고 집에 가서 밤새 가사를 써서 3일 만에 완성했다.” 나중 재미 작곡가로부터 표절소송을 당하는 곤란을 겪지만 음반 안에 표기한 '작곡가의 행방을 수소문해서 찾으려는 노력' 즉 의도적 저작권침해가 아닌 관계로 합의점을 찾았다. 좋은 곡에 집착하는 '욕심'과 내려놓고 노래하는 '무욕', 그 모순의 드라마틱했던 산물.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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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 이소은 - 기적

 

서동욱과의 전람회와 이적과의 카니발을 거쳐 솔로로 거듭난 김동률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노래. 당시 가수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이소은의 앳된 목소리와 김동률 특유의 저음이 조화를 이루는 아리따운 곡이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동화 같은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결혼식 축가로서 애용되었으며 당시를 조명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8>에 삽입될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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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U2가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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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8일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록밴드 U2의 내한 공연이 실현되었다. U2는 독창적인 사운드와 진솔한 가사로 대중적 성공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우리 시대 최고의 밴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외국 밴드의 내한 공연에 국내 많은 언론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난 40년 동안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이들의 두드러진 활동과 업적 때문이다. 이로 인해 U2의 리더, 보노(Bono)는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며 뮤지션으로서는 특별한 영향력을 펼쳐 왔다. 이들의 방한이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많은 이들이 기대한다.

 

U2의 음악 여정은 유럽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된다. 1976년 당시 14세였던 래리 뮬린 주니어(Larry Mullen Jr.)가 마운트 템플 학교 게시판에 밴드 맴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보노(본명 Paul Hewson), 에지(David Evans), 아담(Adam Clayton)과 래리가 '피드백'(Feedback)이란 그룹명을 정하고 방과 후와 주말에 맹연습에 돌입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과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더블린 소년들의 자기 발견과 음악적 소명은 1집 <Boy>(1980)와 2집 <October>(1981)의 수록된 가사에 잘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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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가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들의 세 번째 앨범 <War>(1983)부터이다. 이 앨범은 시종일관 분노 가득한 비판의 어조로 가득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그 타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전쟁'이며, 그 폭력으로 인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담아냈다. 타이틀곡 'Sunday Bloody Sunday'는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델리(Delly)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던 아일랜드인들 28명이 영국군의 발포로 잔혹하게 희생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이 사건을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고 부른다.

 

아이들 발밑에 뒹구는 깨진 병들.

막다른 골목에 쓰러진 시체들, 전쟁이 시작 되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승자는 누구일까?

우리 가슴에 구멍을 파는 아픔

어머니와 아이들과 형제와 자매들을 찢어놓았지.

일요일 피의 일요일

우리는 이제 면역이 생겼나봐.

지금도 이런 희생은 계속되고 있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죽어가지.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 Sunday Bloody Sunday -

 

그 날을 담아낸 방송엔 총탄이 발사되는 와중에 가톨릭 주교 에드워드 달리(Edward Daly)가 자신의 하얀 손수건을 흔들면서 부상자들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보노는 그 하얀 손수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눈에 비친 손수건은 항복의 백기라기보다 발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용기 있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어떤 명분과 이념도 생명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U2는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흰 깃발을 휘날리며 청중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U2의 공연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상징적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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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U2의 멤버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쟁과 분열로 인한 갈등 상황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었다. U2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현실을 고발하며 듣는 이들의 양심을 일깨운다. 'Seconds'에서는 핵무기의 비인격적 파괴성과 국가 이기주의에 의한 핵 확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New Year's Day'는 폴란드 정부가 자유노조운동(Solidarno) 지도자 바웬사(Lech Walesa)를 투옥한 것에 반대하며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곡이다. 'Like a Song'은 둘로 쪼개진 이익집단의 탐욕으로 인한 전쟁에 희생되는 '이름 없는' 젊은 세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Refugee'는 정치적 이유로 난민이 된 한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다룬다.

 

우린 매일 전쟁과 혁명 속에 살고 있지.

소비에트, 독일, 런던, 뉴욕, 베이징!

배후를 조종하는 앞잡이들이 있어.

'굿바이'하며 작별하는 데 불과 몇 초면 돼.

플러그를 당기고 버튼을 눌러. 그렇게 굿바이.

- Seconds -

 

사람들은 지금이 황금시대라 하지만

황금은 바로 전쟁의 이유야.

- New Year's Day -

 

매 맞고 찢겨진 이름 없는 세대,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지. 그냥 아무것도 없어.

분노의 말들은 싸움을 막을 수 없지

서로 다투는 두 세력은 절대 옳은 일을 할 수 없어.

- Like a Song -

 

전쟁, 전쟁이야. 그녀는 난민이 되었지.

그녀의 엄마는 넌 언젠가 미국에서 살게 될거라 말했지.

이른 아침 그녀는 배를 기다리고 있어.

전쟁, 전쟁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터로 나갔어.

그녀의 엄마는 아빠가 곧 돌아올거라 말했지

늦은 저녁 그녀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 Refugee -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비극은 곧바로 다른 지역의 고통으로 전이되어 공감을 부른다. “깨진 병들과 쓰러진 시체들”은 이후에도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쿠웨이트와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40'는 다음 가사로 마무리된다.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밥 딜런이 'Blowing in the Wind'에서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깨닫게 될까?”

 

“이 노래는 저항노래(rebel song)가 아닙니다!” 보노가 공연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부를 때 자주 외치는 말이다. 그는 이 노래가 영국군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아일랜드의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한 무장 조직 IRA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대한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IRA의 강경한 무력 도발의 원인이 되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의 원인이기에 한 편이 그 반복적 복수의 사슬을 끊는 것이 평화의 길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U2가 노래에서 말하는 '용기 있는 선택'이며 '진정한 전쟁'(real battle)이고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이다.

 

누가 너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을까?

나도 너의 눈물을 씻어줄게.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지.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를 성취하자.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

- Sunday Bloody Sunday -

 

이 노래가 말하는 '진정한 전쟁'은 비폭력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 상징물로 그가 공연에서 사용한 것이 '백기'였다. 이 노래는 폭력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과 예수가 화해의 피를 흘린 '부활절 일요일'(Easter Sunday)을 대비하며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인류 역사에서 나온 최고의 사상은 바로 '은혜'(grace)이입니다.

 

이것이 내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입니다. '응보'(karma)가 궁극적 판단이라면 난 희망이 없습니다. 복음은 응보가 아니라 은혜입니다.”U2는 내한공연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오프닝 곡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피의 일요일이 아일랜드뿐 아니라 한국인의 상처임을 알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피의 일요일! 그 날 이후 이 아픈 전쟁의 상처는 우리들의 기억과 마음에 여전히 깊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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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음악과 사회 방향은 어느 정치 체제나 경제 이데올로기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 다만 현실정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한 1980년대 중반부터 U2는 대규모 자선 공연에 참여하면서 “록의 양심의 대변자”로 불리게 되었다. 봅 겔도프(Bob Geldorf)가 주도한 에티오피아 기아 난민 구호 프로젝트인 'Band Aid'와 'Live Aid' 캠페인은 그 시작이었고, 아일랜드 실업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 'Self Aid,' 남아공 인종차별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Sun City' 공연, 성차별주의를 반대하는 'Rock against Sexism' 공연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1984년부터 U2는 소위 '아메리카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앨범을 연속해서 발표했다. U2의 눈에 비친 미국은 로큰롤 고향이며 발전된 문명을 이룬 곳이지만 물질만능주의와 패권의식으로 구원의 힘을 잃어버린 모순의 땅이었다. 미국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이중적 이미지는 많은 아티스트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U2는 <The Unforgettable fire>(1984)와 <Rattle and Hum>(1988)에서 자신이 존경한 미국의 인물들과 대중음악 전통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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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랑의 이름으로 왔다네...

4월 4일 이른 아침 멤피스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

마침내 자유다! 그들은 당신의 목숨은 앗아갔지.

그러나 당신의 자부심은 빼앗지 못했어.

사랑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

사랑의 이름 위에 그 무엇이 있으랴.

- Pride(in the name of Love) -

 

이 노래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마틴 루터 킹(Martin-Luther King Jr.) 목사이다. U2는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졌고, 이 노래와 또 다른 곡 'MLK'를 그의 영전에 바쳤다. 'Pride'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한 울분과 추모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면, 'MLK'는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에서 또한 그의 평생 품었던 간절한 평화와 자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2006년 오바마(Obama)가 흑인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역사적 날에 U2는 백악관에 초대되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다름 아닌 'Pride'였다.

 

1984년 U2는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시작하며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니엘 라누아(Daniel Lanois)를 프로듀서로 영입하면서 음악적 변화를 도모하였다. 이노는 신디사이저를 통해 주 선율 이면에 흐르는 배경음을 통해 공간감을 불어넣는 획기적인 방식을 고안해냈다. '앰비언트'(Ambient)라고 불리는 이 연주 방식은 영롱한 딜레이 사운드와 스트레이트한 록큰롤을 표방한 U2의 음악에 안정감과 화사한 세련미를 불어 넣었다. 이 만남은 U2의 개성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메시지의 경건함을 극대화한 최고의 조합이었다. <The Joshua Tree>의 타이틀곡 'Where the street has no name'의 인트로는 절망을 넘어 비춰오는 희망의 여명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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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대중음악 역사에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The Joshua Tree>이다. 이 앨범의 대 성공으로 U2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된다. 무려 2,5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고 빌보드 앨범 차트 9주 연속 1위, 두 곡이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과 '베스트 록 퍼포먼스'(Best Rock Performance) 상을 수상하였고, 록 밴드로는 세 번째로 시사주간지 Times 표지를 장식했다.

 

이 앨범의 또 다른 타이틀은 'The Two Americas'였다. 이 앨범에서 U2는 미국을 '사막'으로 비유하며 성경의 메타포를 이용해 풍부한 영감으로 내면화하고 있다. U2에게 미국은 “공간이며 동시에 철학이다.” '사막'은 이 앨범을 관통하는 중심 이미지이다. 죠슈아 트리는 황량한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일종으로 희망과 생명 그리고 종교적 구원을 상징한다. 이 앨범에 묘사된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먼지 구름과 산성비로 가득한, 황폐해져버린”사막이다. U2는 이 앨범에서 11곡의 수록곡을 통해 '공간'과 그 안의 인간의 삶의 관계성을 풍성한 영감으로 펼쳐 놓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In God's Country'에서 U2는 '신의 나라'를 꿈꾸던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사막의 하늘, 그 사막 하늘 밑의 꿈.

강은 흐르지만 곧 말라 버릴거야.

우리는 새로운 꿈이 필요해

그녀는 자유, 그녀가 곧 나를 구원하러 올 거야

희망, 믿음, 그리고 그녀의 허영.

가장 귀한 선물은 금이겠지.

신의 나라에서, 잠은 마역처럼 찾아오지.

신의 나라에서, 슬픔은 십자가를 짓밟고 있지.

- In God's Country -

 

풍요로운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그 가치를 잃었으며 황량한 사막에서 이제는 새로운 꿈이 필요하다. 미국은 자유를 외치며 세계를 돕는다고 나서지만 허울 좋은 희망의 가치는 단지 미국의 허영일 뿐이다.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돈이다. 또 다른 곡, 'Bullet the Blue Sky'에서 U2는 1980년대 북중미 국가에 행사된 미국의 강압적 개입에 분노를 터뜨리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악마의 씨를 뿌리고 화염을 일으킨다.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보라. 솟구치는 불꽃을...

가시덤불의 장미처럼, 로열 플래시의 모든 색깔처럼

그는 달러 지폐를 낙하시키고 있다...

벽을 통해 우린 이 도시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미국이 밖에 있다. 미국이 밖에 있다.

- Bullet the Blue Sky -

 

1989년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기록한 저서 <아메리카>에서 미국이란 장소 안의 허상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며, 그 문화 자체를 '사막'에 비유하였다. 그는 뉴욕은 초현실주의적 텍스트와 이미지를 '수직적으로' 구현한 허상이라면, 캘리포니아는 일종의 자기증식 과정 속에 '수평적으로' 확장된 '사막'으로 그 안의 거주자들을 “외국인과 좀비와 관광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하며 “희망 없는 낙원” 미국의 폐부를 저격한다.

 

이는 같은 프랑스인으로서 1831년 미국을 여행하며 미국식 공화정과 정교분리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큰 감동을 받아 미국을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묘사한 알렉시스 토그빌(Alexis de Tocqueville)의 보고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보드리아르가 이런 희망의 땅이 20세기를 거치며 사막으로 황폐해진 풍경을 U2는 1987년 이 앨범을 통해 먼저 구현해내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가 미국을 진정성과 의미가 사라진 이미지만 남은 허상으로 바라보았다면, U2는 그 사막의 절망 속에 새로운 사유를 시작한다. 그 사막은 현실의 모순과 절망에서 신을 의지하고 구원의 희망을 꿈꾸는 장소이다. 보노는 이 사막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막을 그저 황량한 곳이라고만 생각하죠.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막은 아주 긍정적인 이미지입니다. 사막은 어떤 일이든지 시작할 수 있는 아주 깨끗한 캔버스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사막은 아주 상반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U2가 바라본 미국 역시 그런 이중적 애정과 분노가, 절망과 희망의 공존을 음악 속에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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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에게 미국은 '마음의 땅'(Heartland)이기도 하다. 보노는 1987년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이 특히 중미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은 농부와 인민의 황폐화를 자행하고 있죠. 그러나 난 미국 시민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미국은 '악몽'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꿈'입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U2가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급진적 체제 변혁이 아닌 온건한 체제 수정을 모색하는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비판을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바로 이 점이 보수적인 그래미상이나 주류 언론이 지속적으로 U2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호의를 보여준 이유일 것이다.

 

“당신과 함께이든, 당신 없이든, 난 못견딜 것 같아요.” U2의 대표곡 'With or without you'는 언뜻 남녀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 노래는 삶의 실존 속에 지속될 수밖에 없는 회의와 진리 사이의 갈등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그 고뇌의 해답이나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U2의 노래는 인간 실존의 부조리와 믿음과 회의 사이의 고뇌를 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이다. 이 노래는 가사와 음악 모두에서 가스펠송을 표방한 U2의 대표곡이며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다.

 

나는 높은 산을 오르고, 저 들판을 달려 왔습니다.

오직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하여.

나는 달리고, 뒹굴며, 이 도시의 담을 해메며 다녔습니다.

오직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것들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장차 임할 왕국을 믿습니다.

그 때에 모든 인종들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달려갑니다.

당신은 모든 속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죠. 내 부끄러움의 십자가를.

당신은 내 믿음을 아시지요.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것들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

 

이 노래는 상투적인 신앙고백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 제목이 말해주듯 “갈구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회의를 말하고 있다. 이는 일상 속에 신의 존재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의 믿음을 말한다. 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나는 계속 달려갑니다.”(I'm still running)라는 가사에 있다. 실상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I still haven't found)는 부정적 고백은 그래서 난 포기하고 말았다는 허무와 좌절이 아니라,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진리를 향한 여정을 계속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 희망은 황폐한 사막 너머 서로 간의 구별이 사라진 “이름 없는 거리”를 향하고 있다. 바로 그 곳이 U2가 바라보는 약속의 땅이며 구원의 도시이다.

 

난 달아나고 싶어, 숨어버릴테야

나를 가두는 이 벽을 무너뜨리고 싶어

난 손을 뻗어 희망의 불꽃을 만지고 싶어

이름 없는 거리에서.

내 얼굴을 비추는 햇빛을 느끼고 싶어

그 곳에서 먼지구름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

나는 산성비를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해

이름 없는 거리에서이 도시는 홍수가 범람하고 우리 사랑은 녹이 슬었지

세찬 바람은 우리를 때리고 먼지 속에 쓰러지고 말았어

내가 이제 보여줄게 이 사막 너머 있는 세상을

이름 없는 거리에서

내가 그 곳에 갈 때 너를 데려갈게

- Where the street has no n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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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John Lennon)이 우리를 천국과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imagine)하게 한다면, U2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으로 세상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한 인터뷰에서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천국이 우리가 죽으면 가는 하늘 위의 어떤 곳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우리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말이죠.”.

 

폭력과 탐욕으로 대변되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이들은 평화의 세상을 꿈꾼다. 그 구원의 희망은 이들에게 응보가 아닌 신의 은총이며 그 상징이 사막에서도 꿋꿋하게 서있는 조슈아 트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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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shua Tree> 앨범의 대성공 이후 밴드는 중대한 전환의 기로에 서게 된다. 맴버 간의 음악적 방향에 대한 의견 충돌과 모든 것을 이룬 뒤의 목표 상실은 이전 슈퍼 밴드들이 무너져간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그런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암울한 이념적 대립의 해빙 무드는 이들이 다시 한 번 서로 간의 존중과 대화 속에 길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발표된 앨범 <Achtung Baby>는 화해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에서 작업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돌파구와 변화의 시발점이 된 명반이다.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모든 팬들과 평론가들은 그들의 예상치 못한 과감한 변화에 경악했다. 스트레이트한 창법이 돋보였던 보노의 보컬은 감정 없이 낮고 건조하게 그리고 때론 뒤틀리고 찌그러진 읊조림을 반복했고, 과도한 이펙트와 전자 사운드를 장착한 에지의 기타는 분명 전작의 심플한 매력과는 달랐다. 그들의 음악은 당시 급부상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인더스트리얼 음악 트랜드를 수용한 전혀 다른 밴드로 돌아왔던 것이다. 가사 역시 이전의 진솔하고 시적인 내용과 달리 암울하고 냉소적인 어법으로 그들의 경건한(?) 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앨범 커버의 이미지도 여러 모습으로 분장한 보노의 얼굴들과 요상한 소품들의 모자이크로 디자인되어 차갑고 뒤틀린 자아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러한 그들의 파격은 그 다음해에 진행된 “Zoo TV” 월드 투어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일단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다양한 카메라 효과들을 극대화한 영상 테크놀로지의 극치였다. 수없이 쏟아내는 모호한 이미지 컷들이 스트린을 통해 현란하고 어지럽게 난무하더니, 보노는 공연 중반 “플라이” “미러볼맨” “맥피스토”라 명명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해 연기하는 비주얼 쇼킹을 보여줬던 것이다. 보노는 이런 이미지 변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감각의 과부하이다. 우리는 모든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착취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제 U2는 이전의 진지한 양심을 뒤로한 채 화려한 슈퍼 엔터테이너의 길을 걸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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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인상의 충격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앨범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이내 일관된 U2의 진정성이 이 파격적 앨범에도 그대로 녹아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풍부한 기독교적 사랑과 정의에 대한 수사가 넘쳐나고, 선명한 멜로디 라인도 여러 트랙에 담겨져 있다. 과거와 현재,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U2가 갈등을 딛고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을 “1980년대의 밴드”로 멈추지 않고 이후에도 지속적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준 변화의 산물이었다. 특히 지금까지 U2의 드라마틱한 콘서트의 원형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U2는 테크놀로지와 문명에 대한 회의를 사운드 조작과 과장된 이미지로 비판하는 이중적 전략을 활용한 것이다. 즉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가치가 소멸되어 가는 현실을 이전의 진지함과는 달리 자조적인 기지로 대치하며 질문을 던진다.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당신을 만족시키겠어...

오 이제 그녀가 온다.

나를 더 높이 데려가줘, 더 높은 곳으로.

당신은 진짜야. 당신은 진짜야.

심지어 진짜보다 더 좋은걸.

-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

 

1990년대 부상한 음악의 새로운 흐름 가운데 일부 아티스트들은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휴머니즘 상실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비판하는 역설의 미학을 강조하였다.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메시지를 강화시키는 도구인 것이다.

 

U2는 1997년 앨범 <Pop>에서도 연속적 작업의 일환으로 보다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이 앨범은 소비지상주의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맥도널드와 대형마트를 상징하는 무대와 스크린에서는 “사세요! 더 많이! 당장!”과 같은 문구를 쏟아내며 자본주의 이미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Pop> 앨범의 타이틀 곡 'Discotheque' 서 소비적 욕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판타지를 클럽과 파티에 비유해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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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을 수 있지만 붙잡을 수는 없어

머물게 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어. 자루에 담을 수도 없지.

너는 풍선껌을 씹으며,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좀 더 원하지.

저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은 너에게 늘 부족해

너는 혼란스럽게 뭔가를 위해 고통받고 그것을 위해 일하지.

가자, 가자. 디스코텍으로.

- Discotheque -

 

1990년대 U2의 포스트모던 삼부작은 모든 것이 이미지와 기호로 치환되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욕망의 판타지에 종속된 사회에 대한 차가운 비판과 냉소를 자신들의 앨범과 공연의 콘셉트로 보여준 것이다. 이 앨범들은 “복제된 것에 진정한 것들이 소외된” 현대 문명을 차갑게 들여다본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명저 시뮬라시옹』 에서 욕망을 부추기는 '복제기술'(simulation)은 복제된 문화를 만들고 실재보다 더 생생한 과잉실재(hyper-reality)에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삶이 오히려 밀려나는 '복제사회'(simularque)의 문제점을 예고한 것이다. 복제기술은 이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현실을 능가하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을 복제하여 이미지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원본이나 진실이 소멸을 의미한다.

 

또한 보드리야르는 또 다른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도 사물 자체가 아닌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진단하였다. 즉 상품의 필요를 소비하기보다 상품이 상징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대상이 이미지가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문제제기를 멈추고 합성된 이미지를 통해 위조된 현실을 엿보는 데만 익숙해진다고 주장한다. 보드리아르는 시뮬라시옹에 전적인 지배를 당하는 극단의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이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지만, 그 저항에 있어 희망의 의미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묵시적인 허무를 표명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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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가 1990년대 발표한 세 장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이러한 포스트모던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직접적인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비유와 풍자로 표현하면서 현대사회의 비인격화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런 현대 사회를 U2는 'Zooropa'라는 가상사회로 명명하고, 문명화된 바벨론, 'Zooropa'의 세계관을 담아냈다. <Achtung Baby>의 타이틀 곡 'Zoo Station'은 이 도시로 들어가는 진입로인 셈이다. 그 도시에는 “희망 대신 자본이, 평화 대신 맹신이, 생명 대신 무감각이, 진리 대신 불확실성이, 공동체 대신 익명성이” 지배하는 신 없는 디스토피아이다.

 

내겐 나침반이 없어. 내겐 지도도 없어.

내겐 이유도 없어. 되돌아갈 이유 말이야.

내겐 종교도 없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난 한계를 몰라. 우리 소유의 한계 말이야.

주로파, 걱정하지마. 그래, 다 잘 될거야.

주로파, 불확실성이 우릴 인도할거야.

그녀는 꿈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떠올릴거야.

- Zooropa -

 

U2가 묘사한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개인주의와 그로 인한 인간 소외였다. 다양한 개인들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하나됨을 이룬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딜레마일 것이다. 1991년 발표한 'One'은 1990년대 U2의 가장 큰 히트곡이며 가사에 담긴 문학적 미학과 정신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영국의 음악 채널 VH1이 기획한 “100 가장 위대한 노랫말(100 Greatest Lyrics)” 설문조사와 음악 잡지 Q가 선정한 “100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1001 Greatest Songs of All-time)” 차트에서 “One”은 1위에 올랐다. 어떤 점이 이 노래가 이토록 평단과 팬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는가? 그것은 바로 이 노래가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대변하는 현 시대 '다원주의' 담론의 고민과 방향을 선명하게 제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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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갈등과 반목의 상황 가운데 U2는 진정한 평화와 하나됨의 가치를 일깨우며 이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One'은 “시대의 노래”가 되었다. 2001년 한국의 취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노는 오랜 분단의 아픔을 겪은 아일랜드인으로서 한국의 분단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 공연이 성사된다면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가 'One'이라고 말했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시작된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걸까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죠.

당신은 비난할 누군가를 찾았으니까요.

당신은 말합니다. 한 사랑, 한 생명.

오늘밤 우리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라고

한 사랑. 우린 함께 나누게 되었다 합니다.

하지만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곧 사라집니다.

- One -

 

오늘날 다수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됨”의 가치를 강조하며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결국 누군가를 비난하고 소외시킨 차가운 현실의 결과물일 수 있다. U2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한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공동체'란 개념에는 사실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상 강한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은 그 외부의 이질적 요소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때로는 그 이방인들을 추방하고 처단하며 내부 결속을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 Girard)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역사 가운데 평화와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일종의 문명사적 방법론이 바로 개인에게 가하는 공동체의 집단적 따돌림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타자 또는 소수자라는 이름의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다수자들은 화해와 평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한국사회에서도 이런 폭력적 제의의 사례는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희생자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공동체는 하나됨을 위해 또 다른 모난 사람들, “비난할 누군가”를 찾아 공격할 것이다.

 

U2는 공동체가 “한 사랑, 한 생명”을 외친다면 그것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이런 현실적 인식과 반성이 있어야 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하나됨을 위한 방법을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하나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죠. 단지 함께 보듬고 가는 겁니다.” 하나됨이란 모두가 같아지는 획일성(sameness)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togetherness) 삶의 방식이다. 이 노래의 2절에서 화자는 주류 집단의 위선적인 포용과 다원주의 담론에 대해 철저히 조롱하며 비판한다.

 

당신은 누군가를 용서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죽은 자를 살려내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흉내를 내고 싶은 건가요?

마치 나를 당신 앞에 문둥이로 보면서...

당신은 내게 들러오라 하지만, 나를 기어서 가게 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받아들여 질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것은 결국 상처입니다.

 

언론과 공식적 발언에서는 성적, 인종적, 신체적, 문화적 소수자들을 포용한다는 선전을 늘어놓지만 정작 두터운 편견으로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이중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포용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값싼 동정심”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들에게 이 공동체에 머물러도 좋지만 주류인들의 언행을 따라 튀지 말고 살라고 강요한다. 더 나아가 주류인들의 거주지가 아닌 그들만의 구역 안에 게토화시켜 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포용의 실재이다. 이후 이 노래는 U2의 콘서트에서 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보노는 청중들에게 그 당시의 중요한 세계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동참”(carry each other)할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1980년대 U2가 사막을 순례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담아냈다면, 1990년대의 노래들은 포스트모던 소비사회 안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였다. 여기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이전의 순례에는 사막에 자라나는 '조슈아 트리'의 생명력이 상징하듯 갈등과 욕망으로 황폐해진 사회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강조했다면, 포스트모던 삼부작에서는 묵시적 과잉실재의 디스토피아 속에 길을 잃은 불안을 보다 염세적으로 표현해 냈다. 하지만 구도자의 여정이 멈춘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의 결론과는 달리 U2는 지도와 목표를 잃고 방황할지라도 진정한 삶의 가치와 신의 나라를 향한 지속적인 여정의 길은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전설적인 컨트리 뮤지션 조니 캐쉬(Johnny Cash)와 함께 작업한 'The wanderer'는 그 절망과 희망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밖에 나가 걸었다.

금으로 포장된 거리에서 영혼 없는 도시의 뼈와 살을 보았지....

나는 어느 교회 앞에서 멈췄다.

사람들은 신의 나라를 원한다지만 신은 원치 않는다....

나는 밖에서 찾아 다녔다.

한 명의 의인을 찾아서, 그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을만한 영혼을 가진나는 성경 한 권과 총 한 자루를 들고 있다.

신의 말씀이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예수여,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예수여, 저 곧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찾아 계속 떠돌아다닙니다.

- The wander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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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포스트모던 3부작의 실험적 모험을 마치고, 2000년대 U2는 이전의 록큰롤 사운드로 회귀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마흔 살 중년기에 접어든 밴드는 이전보다 힘의 완급조절을 통해 서정적인 멜로디를 강화하고 특유의 샤우팅은 의도적으로 강도를 낮추는 원숙미를 보여준다. 가사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사회비판적 메시지보다는 솔직한 자기각성과 성찰을 강조하면서 도덕적 행동의 실제적 방법을 제안하며 왕성한 정치적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 U2는 그들이 비판하고 거부했던 주류의 한 복판에 있다. 음악 평론가 소승근의 평가는 U2의 다음 발걸음을 위한 매우 중요한 질문을 제공한다.

 

“50대에 접어든 멤버들의 관록과 포용력 그리고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그들의 음악에서 뿜어져 나지만 얼핏 타인들에게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위험한 계몽성도 있다. 보노의 정치적 활동 때문인지 어느새 U2의 음악도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권력'이 되었다.

 

”U2 역시 이러한 자신들의 위치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류를 비판하는 주류” 밴드이며, 자기의 유명세와 힘을 소외된 자들과 공존하는 평화를 위해 사용하는 법을 터득해 갔다. 오늘날 U2는 사랑의 가치와 이상향을 향한 순례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윤영훈(bigpuzzl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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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밀림의 새로운 왕 - (여자)아이들, 「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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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사랑받을 거라 믿었던 아이돌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오랫동안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조작의 산물이었다는 게 밝혀진 2019년 가을, 그나마 이 프로그램이 있어서 케이팝의 팬들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퀸덤」은 박봄, AOA, 마마무, 러블리즈, 오마이걸, (여자)아이들이 동시에 출연한 경연 프로그램이다. 현장투표와 온라인 음원 차트, 생방송 문자투표 같은 것으로 ‘순위’를 매긴다는 점에서 해당 방송사의 종특이라 할 수 있는 ‘오디션’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완성된 여성 아이돌의 경쟁이라는 점에서는 ‘캣파이트’를 부추겨 눈요깃거리로 삼으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방송이 끝난 후, 그런 것들은 기우임이 밝혀졌으니, 그 공로의 대부분은 여섯 팀의 출연진에게 있다. 그중에서도 (여자)아이들의 무대 몇 지금 케이팝의 최전선에 누가 서 있는 여실히 보여 주는 증표와 같았다. 거기에는 (여자)아이들이 서 있다. 
 
(여자)아이들은 첫 경연에서 데뷔곡 「LATATA」를 주술적이고 신비한 방식으로 편곡해 1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순위와 상관없이 회차마다 다른 개성의 무대를 선보였다. 그들의 숨겨진 명곡이었던 「싫다고 말해」를 통해서는 콘셉트를 정확히 이해한 표정 연기와 무대 연출로 다시 한번 놀라움을 선사했다. 절정은 아무래도 마지막 경연곡이었던 「LIO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위와 관계없이 케이블 방송사 특유의 방송 취지를 역전시켜버린 여성 아이돌의 포부를 ‘사자’(아마도 암사자일 것이다.)로 표현해낸 것도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대담하고 변화무쌍한 흐름의 음악 자체도 근래 보기 드물게 훌륭했다. 이미 놀라고 있는 와중에 더욱 놀랄 일은 이러한 「퀸덤」에서의 (여자)아이들의 성과가 멤버 ‘소연’의 기획 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3분 동안의 무대만 볼 수 있었던 여타의 음악 프로그램과 달리 「퀸덤」은 하나의 무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전달하였고, 우리는 말로만 들었던 소연의 역할과 능력치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대형 기획사(큐브)가 오래 공들인 팀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시작 단계에서부터 이미 높은 성적을 기록한 그룹이다. (여자)아이들은 「퀸덤」에서도 1위에 올랐던 「LATATA」를 통해 데뷔 직후 1위에 올랐고 이후 발표하는 노래마다 음원 사이트와 음악 방송을 가리지 않고 높은 순위에 자리를 잡는다. 청순함과 섹시함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럼에도 모두를 포괄하는 이 그룹의 매력은 뒤이은 히트곡 「한(―)」과 「Senorita」에 이르기까지 더욱 도드라진다. 「1997년생부터 2000년생까지로 구성된 팀이지만 ‘유혹’과 ‘이별’의 감정 표현 모두 능수능란했으며, 여섯 명이 채우는 무대의 장악력 또한 남달랐다. 이러한 남다름은 역시 조금은 다른 활동 변경에까지 가닿는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 가상 캐릭터 역할을 맡고, 런칭 영상 주제곡을 부른 것도 그 경계에 해당한다.
 
최근 히트곡인 「Uh-Oh」에서의 도전도 역시 성공적이었다. 1990년대에 걸음마나 떼었을 이들이 형상화한 뉴트로 감성은 억지스럽기는커녕 (여자)아이들이 다룰 수 있는 음악과 콘셉트의 자유분방함을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에스닉에서부터 뉴트로까지 그들의 퍼포먼스는 그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르기 주저하게 될 만큼 성숙하고 도발적이다. 능숙한데 새롭다. 예리하되 자연스럽다. 이 넓은 영역의 기획자가 멤버인 소연이라는 데 이 그룹의 특장점이 있다. 동료들을 뮤즈 삼아 그는 작곡과 작사, 랩메이킹과 콘셉트 설정까지, 프로듀서의 모든 영역을 커버한다. 소연의 커버가 다른 멤버의 그늘이 되는 건 아니다. 멤버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천재) 프로듀서의 능력은, 그렇게 장점을 찾은 아티스트에게 자유를 주기 마련이다. 지금 (여자)아이들의 소연을 포함한 여섯 멤버는 모두 지극히 자유로워 보인다.
 
다시 「LION」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경연곡 여섯 중에서 유일하게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이 노래에서 그들은 말한다. “난 나의 눈을 가리고 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뻔한 리듬을 망치고 사자의 춤을 바치고” 눈을 가리는 것도 자신이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도 자신이다. 뻔한 리듬을 망치고 사자의 춤을 바치는 주체도 자기 자신일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여성 아이돌이 나타났다. 밀림이 새로운 왕들을 글로 모실 때는 ‘(여자)아이들’로 써야 하지만, 감히 읽을 때는 ‘아이들’로 읽어야 한다. 여기에 아이의 뜻이 ‘Kids’는 아닐 것이다. 나(I)를 뜻하는 것이다. 왕이 나타나셔서 나는 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누가 군소리를 달겠는가?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케이팝은 곧, (여자)아이들이다. 
 

 

 

 

 

 


 

 

(여자) 아이들 - LION(여자)아이들 노래 | (주) 카카오 M / 주식회사 큐브엔터테인먼트
마지막 경연곡 여섯 중에서 유일하게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이 노래에서 그들은 말한다. “난 나의 눈을 가리고 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뻔한 리듬을 망치고 사자의 춤을 바치고” 눈을 가리는 것도 자신이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도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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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U2 내한 공연 전 준비해야 할 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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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갖춘 밴드' 유투의 무대는 흔히 '지상 최대의 콘서트'로 묘사된다. 지난 40여년 간의 역사를 완벽히 압축하는 무대 구성과 압도적인 연출,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영리한 기획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통해 유투는 2018년에도 최대의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에 올랐다. 현재진행형의 전설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자, 지속적인 혁신의 상징이 바로 유투 콘서트다.이 황홀한 경험은 지금까지 한국엔 허락되지 않았다. 입이 떡 벌어지는 유투의 공연은 거대 규모의 공연장을 갖추지 못한 한국에선 영원히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더는 DVD와 유튜브를 뒤적일 필요가 없다. 2019년 12월 8일, '조슈아 트리 투어(The Joshua Tree Tour)'의 일환으로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유투의 첫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이들의 2019년 셋리스트 중 핵심적인 15곡을 선곡하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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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bloody sunday (1983, <War> 수록)

 

“일요일, 피의 일요일. 얼마나 오래 우린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는 13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영국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총격에 의해 사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있었다. 그 비극의 증거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분쟁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 곡이다. 둔탁한 드럼연주로 시작돼 거친 목소리를 가진 보노의 노래는 울부짖음에 가깝다. 이는 저항 정신보다도 현실을 토로하는 탄식이다. 영국 차트 1위에 올라있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앨범 <War>에 이 곡이 수록되어있다.북아일랜드에서 시작된 '피의 일요일'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은 탓에 그들은 변함없이 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대부분의 투어 때마다 부르는 곡으로 유명한 'Sunday bloody Sunday'는 평화의 갈구요, 전쟁과 비극의 산물이다. 세계 곳곳, 유투의 공연장에서는 멈추지 않고 그날의 일요일을 울부짖는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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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s day (1983, <War> 수록)

 

소년과 10월이 떠나가고 <War>가 찾아온 1983년, U2는 당시 유럽 곳곳의 혼란스러움을 짚어내며 밴드의 이미지와 위치를 확립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말하는 'Sunday bloody sunday'과 함께 앨범에 정치적 성향을 짙게 풍기게 한 노래가 바로 'New year's day'다. 원래의 곡은 보노가 그의 와이프에게 쓴 가사로 채워져있었으나, 당시 폴란드 내에서 일어나고 있던 공산당과 연대자유노조의 갈등에 대한 언급이 추가되었다. 우연의 장난인지 혹은 실로 노래의 힘인지 알 수 없지만 곡이 발매된 후 폴란드 정부가 계엄령 폐지를 선언했다.

 

실제로 폴란드에서 열린 '버티고 투어(Vertigo tour)'나 '360?투어(360?tour)' 관련 영상들에서 이 곡이 연주될 때마다 온 관중이 빨간색과 하얀색 수선을 활용하여 자신의 국기를 그려 밴드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곧 다가올 밴드의 내한공연에서 지구 저편의 국민들이 가졌던 당시의 감동을 간접적이라도 느낄 수 있길 기대해보자.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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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1984, <The Unforgettable Fire> 수록)

 

혼란, 무력감, 절망, 고립. 이 모든 것을 내버리라고 외치는 'Bad'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있다. 유투가 결성된 곳이자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은 1980년대 초반 경제난의 영향으로 마약 중독자가 증가했고, 사람들은 고통 속을 헤엄쳐야 했다. 보노는 당시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위로를, 우리에게는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 곡으로 전하고 있다.'Bad'는 또한 유투가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는 일에 기여한 곡이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이 곡을 부르던 보노는 앞으로 밀려오는 관객들에게 밟혀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했다. 여성을 직접 만나러 가기 위해 무대 밑으로 뛰어내린 보노는 구출된 관객을 따스하게 안아주며 함께 춤을 췄다. 유투는 이를 계기로 전 세계 팬을 확보하게 되었고, 상징적인 라이브를 보여준 밴드로 각인됐다. 'Bad'는 유투에게도, 우리에게도 각별한 곡이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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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In the name of love) (1984, <The Unforgettable Fire> 수록)

 

1987년에 <The Joshua Tree>에 수록된 'With or without you'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발표하기 전까지 유투의 독보적 대표곡은 'Pride (In the name of love)'다. 딜레이 효과를 극대화한 기타 전주만 들어도 끓어오르는 피는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탑 40에 올라 유투를 각인시킨 이 노래에는 정치도 없고, 허세도 없으며 눈지 보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의 변방 아일랜드에서 온 20대 중반 청년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을 투영하지 않고 투명하게 직접 통과시킨다. 초기 유투 음악이 후련했던 이유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을 통해 보편적 인류애를 설파한 'Pride (In the name of love)의 두려움 없는 기타 리프와 '떼창'을 위한 후반부 코러스의 힘은 늘 그래왔듯 내한공연에서도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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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1987, <The Joshua Tree> 수록)

 

앰비언트의 선구자 브라이언 이노가 영적인 신시사이저로 여백을 채우면 리듬을 잘게 쪼갠 악기들이 혈관으로 타고 들어와 심박수를 높인다. 기타 연주를 지연시켜 만든 딜레이와 깨끗한 공간감은 1984년 전작 <The Unforgettable Fire> 이후 완성시킨 유투 사운드의 정수. 누가 들어도 유투임을 알리는 이 소리 체계는 이들의 노래를 들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거리에 따라 계급, 종교가 나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달리 모든 것이 무명에 가까웠던 에티오피아를 본 보컬 보노는 구분 지어 차별하는 세상이 아닌 '이름 없는 거리', 시온(Zion)을 꿈꿨다. 가사를 쓰고 이를 알리기 위해 어떠한 장벽도 없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콘서트를 갈망했고, 마침 공연용 곡을 연구하던 기타 주자 에지에 의해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길이 탄생했다. 보노, 에지 콤비의 인류애적 사색이 확실한 목적 아래 담긴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은 곧 있을 국내 무대에서도 새 역사를 쓸 유투의, 유투 라이브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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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1987, <The Joshua Tree> 수록)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가 매만진 광활한 사운드 속 절규하는 보컬 보노의 목소리는 꼭 인간이 대자연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로큰롤을 넘어 의미가 담긴 음악을 만들기 원했던 유투는 이 곡에서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 내가 원하는 걸 찾지 못했다' 한탄하는 가사는 보노가 <롤링스톤>지에서 밝힌 대로 신에 대한 의심, 그에 따른 좌절을 표현한다. 고된 진리 탐색의 과정에는 그러나 희망이 서려 있는 법. 나약한 인간의 절규 속에는 그렇게 회복과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 함께 자라난다.

 

의식적인 메시지뿐 아니라 노래는 차분하게 중심을 잡는 베이스라인과 질주하는 기타, 따라 부르기 쉬운 보컬 멜로디를 엮어 대중의 기호에도 적중했다. 'With or without you'와 함께 1987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고 이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시장 고지에 꽂은 승리의 깃발이었다. 믿음을 갈망하는 노랫말은 종교의 영역을 가로질러 꿈을 좇는 모든 이들에게 한줄기의 단비가 되어준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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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or without you (1987, <The Joshua Tree> 수록)

 

<보헤미안 랩소디> 속 퀸(Queen)이 그랬듯, 이들에게도 <Live Aid>(1985)는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스테이지에 내려와 여성관객과 춤을 추는 모습이 100여개 국가에 송출된 그 날 이후,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짐과 동시에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은 깊어져 갔다. 그런 와중에 만들어진 데모는 멤버들 사이에서도 혹평을 받았고, 세상에 선보일지조차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보노 개인에게는 기혼자와 뮤지션이라는 역할 간의 갭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최악의 시기에 새로운 희망처럼 탄생한 것이 바로 이 곡이다. 실험적인 기타 사운드와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을 거친 끝없는 수정작업을 거쳐 완성된 외관에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는 직관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노랫말을 얹어 세기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명확한 메시지성을 가진 밴드의 여타 노래들과 달리 이 곡의 가사는 다소 모호하다. 그 덕분에 어떤 이에게는 삶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에 대한 자세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각자 모양과 크기가 다른 자신만의 꽃을 키우게끔 하는 자양분 역할을 하는 셈. 잔잔한 가운데 순간순간 내비치는 역동적인 연주와 호소력 짙은 보컬은 찰나의 전율이 아닌 평생의 여운을 남기며, 그래서 오래 듣고 함께 곱씹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나 아픔이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 진정한 자신을 찾아 살아가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U2가 있건 없건', 그 여정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시그니처 송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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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et the blue sky (1987, <The Joshua Tree> 수록)

 

U2의 많은 정치, 사회적 노래 중에서도 'Bullet the Blue Sky'의 논쟁점은 특히 첨예했다. 노래는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을 펼친 미국을 겨눴다. 내전이 한창이던 1986년에 엘살바도르를 방문한 보노는 지면이 떨리고 탄약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그동안 엘살바도르 정부군을 지원해온 미국에 분노를 느꼈다. 단지 파워게임을 위해 그들과 관계없는 땅에 전쟁 무기를 판매하며 살상을 방조한 것에 개탄했다.

 

참혹한 현실을 확인한 그는 노랫말과 음향으로 미국을 질타했다. 가사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무턱대고 정부를 지지하던 미국 내 기독교인의 양심을 저격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비판의 대상을 분명히 했다. 전투기 소리와 같은 굉음을 내는 기타 솔로는 디 에지가 울리는 시대의 경종이었다. 문제작 중 문제작이었던 노래의 매서운 메시지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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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 to stand still(1987, <The Joshua Tree> 수록)

 

브라이언 이노가 많은 음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지만, 그 최고 수혜자가 유투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유투는 밴드의 각인이 새겨진 기타 리프와 각 트랙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공간감을 얻었고 이 안에서 보다 섬세해진 사운드를 구사했다. 구도자의 자세로 종교와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The Joshua Tree>는 이노의 터치 덕분에 설교가 아닌 호소로서 감성의 영역에 닿을 수 있었다.

 

둔탁한 일렉 기타 대신 초기 블루스의 통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Running to stand still'는 약물을 남용하고 지친 눈빛으로 세상을 배회하는 여인을 관조한다. 피아노 반주와 드럼, 흐릿한 기타 배킹이 주축이 되는 단순한 곡이지만, 잔잔한 수면에 던진 돌이 종래에는 커다란 물결을 만들듯 각 악기의 소리 그리고 보노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어 절정을 향해, 듣는 이의 마음을 향해 나아간다. 유투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종교, 정치 등의 거시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매몰된 개인을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Running to stand still'이 그렇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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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hill mining town (1987, <The Joshua Tree> 수록)

 

유투는 명확한 소신을 지닌 밴드였고, 그들이 주조한 희대의 모던 록 명반 <The Joshua Tree>는 사회적 이슈를 세밀하게 파고든 하나의 생생한 일지였다. 그중 'Red Hill Mining Town'은 영국 보수당이 경제개혁을 목적으로 국영 탄광을 폐광 조치한 사건과 졸지에 실업자가 된 광부들이 벌인 1984년도 대규모 파업의 이야기를 광부의 시선에서 담고 있다.

 

둔탁한 드럼과 명징한 기타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침착한 곡 진행은 장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돋보이는 건 광산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연상되는 호소력 짙은 보노의 보컬이다. 그가 절절하게 'Hangin' on'을 울부짖는 부분은 슬픔과 단단한 의지가 한데 섞인 마치 시위대의 선봉장의 인상이다. 현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마음에 와닿도록 풀어낸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화법이 드러나는 곡이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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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od's country (1987, <The Joshua Tree> 수록)

 

때론 시대를 낭만적으로(혹은 낭만주의적으로) 작동하려 한다는 점이 이따금 유투를 무모하게 보이게도 했다. 예컨대 'In god's country'에서의 방식이란 꿈이라는 장소에서 자유의 여신을 현시한 뒤 미국의 한계를 마주해보고 또 이상향을 그려보는, 지극히 영적이고도 구도적인 체험과도 같아서 그저 순진하기만 한 반성에 순수하게 의지하려는 모습처럼 읽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현실적인 접근으로도 해결하기 버거운 거대한 시대 문제 앞에선 낭만적인 텍스트가 되려 선명하게 솟아나기도 한다. 희망이 여전히 몸부림치나 황량한 허화가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해버린 1980년대의 서구 속에서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곡은 <The Joshua Tree>의 단편으로서는 더없이 적확했고 그래서였을까, 최근 '조슈아 트리 투어'의 일환으로 공연을 진행하기 전까진 한동안 셋리스트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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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vation (2000,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수록)

 

새천년 최초의 록 명반,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의 영광스러운 첫 투어는 '뷰티풀 데이 투어(Beautiful day tour)'도, '워크 온(Walk on tour)'도 아닌 '엘리베이션 투어(Elevation Tour)'였다. 에지의 지글거리는 빈티지 페달 기타 리프 인트로부터 가슴을 끓게 만드는 곡은 새천년의 환희와 열광, 완연한 상승의 에너지를 응축시켜 지글거리는 힙합 리듬을 거쳐, 강력한 후렴구와 보노의 팔세토 후렴으로 폭발한다. 둘의 뒤에서 춤을 추는 아담 클레이튼의 드러밍도 놓칠 수 없다.

 

'Elevation'은 당연히 'Elevation Tour'의 시작을 알렸고, 'Vertigo Tour'에선 인트로 리프를 늘려 전율의 '떼창'을 유도했다. 이번 '조슈아 트리 투어'에선 앵콜 곡으로 등장해 뜨거운 장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끌어올린다. 유투의 투어 셋리스트에 영원히 살아남을 곡. 시나위의 '상승'보다 U2의 'Elevation'을 먼저 알았던 나에게도, 지상 최대의 밴드를 직접 마주하는 고척 스카이돔의 관객들에게도 감격스러운 순간이 될 것이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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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tigo (2004,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수록)

 

명실상부 전성기인 1980년대와 다채로운 사운드의 1990년대를 지나, 현대에 도달해서도 유투가 가진 왕좌의 위엄은 실로 견고했다. 바로 2004년도 작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의 리드 싱글이자 앨범의 시작을 강렬히 알리는 'Vertigo'가 그 증거다. 능란한 완급 조절과 탄탄한 기승전결은 거장의 면모를, 반면 파열음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커팅과 둔중한 기타 사운드는 예리함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세대 못지않은 폭발적인 에너지 또한 돋보이는 요소다. 비록 메시지는 기존의 진중함에 비해 다소 가벼워진 모습이지만, 뚜렷한 멜로디 캐치 능력과 시대를 거쳐온 노련함만큼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달려온 유투의 기세를 대표하는 'Vertigo'는 그해 그래미 어워드 록 부문에서 무려 3개를 수상하며 놀라운 기염을 토했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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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day (2000,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수록)

 

테크노를 앞세웠던 <Pop>이 미미한 반응으로 돌아오자 유투는 빅히트 싱글을 만들기 전까지는 앨범을 내지 않겠다며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 물론 이들의 키워드인 휴머니즘의 실천은 논외다. 제 3세계의 부채 탕감을 위한 쥬빌리 2000(Jubilee 2000) 캠페인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참여한 보노가 영감을 얻어 가사를 만들고 에지의 즉흥 멜로디를 입혀 탄생한 선 공개 싱글 'Beautiful day'는 그들이 새로운 역사를 향해 내딛은 첫 걸음이었다.

 

라틴 팝, 댄스, 아이돌 그룹의 진영이 넓어지면서 록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았던 새 천년, 3년만에 돌아온 유투가 승리했다. 1990년대의 유투보다 더 유투답게 돌아왔음을 선포한 이 곡이 제 43회 그래미에서 3개의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세상 그 자체에서 환희를 얻을 수 있다는 가사는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감되고 필요하기에 빼놓을 수 없다. 목적 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숨을 고르게 하고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는, 마치 진실된 친구 같은 곡.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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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1991, <Achtung Baby> 수록)

1990년대 U2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대표 발라드. 당시 멤버들 간의 불화와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향 받아 쓰인 가사는 'One'이라는 제목 아래 화합보단 분열의 아픔을 노래한다. 멤버 에지의 기타 연주가 영감이 되어 15분 만에 완성했으며 싱글로 거둬 들인 수익을 에이즈 연구를 위해 기부하는 등 U2의 사회적 행보는 여기서도 계속된다.

 

앨범 군데군데 일렉트로니카, 펑크, 사이키델릭 등 전에 없던 다채로운 사운드들이 눈에 띄는 와중 이 곡은 U2표 발라드의 전형을 담고 있다. 천천히 고조되며 갈라지는 보컬 보노의 위태롭고 강렬한 창법이 전하는 울림과 외침은 오늘 날 이 곡을 명곡의 반열에 올렸다. 발매 이후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안착했으며 2010년 <롤링스톤> 선정 '역대 최고의 노래 500' 속 36위를 차지했다. 메리 제이 블라이지, R.E.M 등 많은 뮤지션들의 커버는 물론 투어마다 빼놓지 않고 선곡되는 대표 히트곡. 애초 쓰인 가사와 별개로 'One'은 끊임없는 화합을 양산 중이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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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2019 연말 결산, 올해의 가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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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대표할 올해의 싱글 10곡이다. 따스한 위로와 즐거움, 냉철한 시선과 너른 시각으로 숱한 이들의 감정을 대신 노래한 노래들이다. 2010년대의 마지막 한 해를 상징하는 10곡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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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그간 발표한 히트곡 'Bye bye my blue'나 '우주를 건너'보다도 훨씬 자신의 이름을 강하게 아로새긴 활약이었다. 올 상반기 백예린은 두 번째 미니 앨범 <Our Love Is Great>의 수록곡들을 줄줄이 음원 차트에 올리며 '음원 퀸'의 면모를 부각했다. 그중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는 핵심. 세련된 음향과 제 색깔을 찾은 듯 유연한 보컬, 젊은 세대의 사랑 이야기를 보듬는 노랫말로 그만의 개성과 시선을 따뜻하게 담아냈다.

 

오랜 시간 유튜브 등에 커버 영상을 올리며 수련한 백예린은 정직함으로 승부했다. 작위적인 콘셉트나 마케팅으로 주목을 갈구하지도, 많은 방송 출연으로 빠른 호응을 끌어오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음악만으로 형성된 아티스트의 캐릭터가 대중의 호응에 직결하며 작자와 청자가 한 폭에 공존하는 그림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야말로 '좋은 음악'의 저력. 자신의 색깔과 대중성 양쪽 모두를 껴안으며 왕관을 쓴 그에게 올해의 대중음악가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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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따 '돈 call me'21C

 

새로운 성공 서사는 이렇게도 적힌다. 오랜 무명시절을 거쳐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 편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래퍼보다는 MC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염따는 2016년 정규 1집 <살아숨셔>로 진솔한 속내를 고백하며 작게나마 이름을 알렸다. 이후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며 커리어에 새 활로를 연다. 비속어와 반말을 섞어 쓰며 난데없이 그만의 언어 '빠끄'를 외치던 염따는 특유의 친근함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는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6천만 원의 판매고를 올린 '티셔츠 대란'은 그를 세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음악 외의 것을 주 무기 삼아 조명받았으나 '줌' 당겨 자세히 보니 음악 또한 심상찮다. 외적으로 보이는 쿨 함과 웃음기 어린 '플랙스' 사이 눈물 젖은 고생 사와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진지함이 묻어있으니 이건 다름 아닌 우리네 젊은 날의 초상이다. 소셜 플랫폼 <딩고>와 협업해 멜로디컬한 선율에 힘을 빼고 담담하게 부르는 염따식 위로는 멀리 에둘러 돌아가지 않고 익숙하게 곁을 내준다. 젠체하지 않고 솔직하게 끌러낸 그만의 힙은 올해 가장 너른 사랑과 공감을 받았다. 염따의 돌풍! 제대로 살아 숨쉬었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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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보다 쉽고 편하다. 'DNA', 'Danger', '불타오르네', '쩔어'와는 확실히 다르다.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복잡함과 진지함을 걷어낸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그러나 작지 않다. 탁하고 허스키한 음색의 할시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 맞춰 밝고 투명한 목소리를 냈고 그마저도 'Oh my my my...'나 '오아 오아 오아...', 'I want it!' 같은 후렴구나 추임새에만 등장한다. 음악 동료 이상의 인간적 유대감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과감한 결정이다.

 

발표한 지 6개월이 지나 한 걸음 떨어져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들어보니 그 안의 '작은 것들'이 들렸다. 에코 사운드를 사용한 가성과 진성을 교차하는 보컬과 울림소리를 최소화한 슈가, 제이 홉, 알엠의 서로 다른 래핑, 펑키(funky)하고 선명한 16비트의 리듬 기타, 신시사이저로 정밀하게 찍어낸 하이햇과 드럼, 세련된 편곡, 미세한 소리도 균형 있게 조율한 믹싱까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2019년에 등장한 그 어떤 노래보다 가장 듣기 좋고, 편하고, 마음 따뜻한 댄스곡이다. 무엇보다 목석처럼 뻣뻣한 할시를 춤추게 하지 않았는가.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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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클레프(Jclef) 'Mama, see'

 

세상이 커지는데 '뭔가 이상하다.' 엄마에게 부리는 투정의 형식을 빌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 '엄마가 상영한 악몽'은 친구들의 '간편한' 죽음과 학대에서 재생산된다. 거대한 부조리에 대한 답답함과 무력감, 그리고 이에서 파생되는 분노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모두 2019년을 대표하는 정서다.엄마에 대한, 엄마를 위한 '시'는 억압받는 이들의 시점에서 세상을 '봐' 달라는 호소이기도 하다. 굳이 날을 세우지 않은 비트 위에서 부드러운 멜로디로 이를 노래하는 제이클레프의 방식은 색다르다. '등 떠밀지는 않'겠다고, '그저 내 옆에 서'서 변화의 '파도'를 타 달라고, 담담하지만 확고하게 연대를 부탁한다. 이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 (황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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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소녀(LOOΠΔ) 'Butterfly'

 

“Fly like a butterfly.그들의 목소리가 거대한 공명(共鳴)이 되어 경계를 허물었다. 국가, 인종, 성별의 한계를 넘어 진행되는 뮤직비디오는 물론 확실한 라인을 가진 후렴구를 선호하는 기존의 시장과 다른 행보, 강렬한 선을 가진 안무 등 이달의 소녀는 'Butterfly'를 통해 보이지 않는 벽을 부쉈고 자신들만의 우주를 증명해냈다. 작은 날갯짓으로 얻어낸 의미 있는 행보였다.

 

그들이기에 가능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소녀'들은 2018년 10월, 12명의 완전한 그룹이 되기까지 매달 솔로 혹은 유닛 활동으로 실력을 다졌고 아티스트 그라임스와의 협업 등 계속해서 움직이며 기록을 남겼다. 'Butterfly'가 꿈이란 보편적 메시지로 세상과 교감할 수 있던 것은 이달의 소녀가 걸어온 길이 새로운 시도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발걸음은 나아가 앨범 <[X X]>가 미국 아이튠즈의 전체 장르 차트 1위에 오르며 2019년 대중음악에 뚜렷한 흔적을 새겼고 그 중심엔 'Butterfly'가 있다. 케이팝의 기준을 제시할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시작됐다.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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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이(BewhY) '가라사대'

 

씨잼의 친구로 시작해 2015년 <쇼미더머니5>에서 'Forever'로 '얍, 얍, 얍', '영원히 비와' 등 유행 가사를 만든 비와이는 대회 우승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7년 2집 <The Blind Star> 이후 2년 만에 나온 <The Movie Star>의 타이틀 '가라사대'는 비와이의 종교적 신념과 음악인의 가치관을 가감 없이 담아 '여호와 밑 가라사대/이게 내 위치 가라사대'로 기독교인의 모습을, '나는 되고 싶은 내가 될 지어다'로 자신이 믿는 래퍼의 길을 내뱉는다.

 

'Day day', 'The time goes on', 'Dejavu'에 이어 비와이 대표곡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가라사대'는 노래의 의도를 확실히 전하기 위해 비와이 자체를 신격화한다. 짧은 음악 속에서도 강하고 웅장한 비트는 '지어다', '가라사대'라는 반복적인 각운과 정점의 속사포 랩 파트를 이용해 중저음의 목소리를 뇌리에 꽂는다. 거친 힙합의 편견에서 벗어나 올해도 다사다난했던 힙합 계에서 청정의 유기농을 자랑하는 비와이는 믿음도 음악도 신실하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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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신청곡 (Feat. SUGA of BTS)'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순간에도, 음악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 작은 진실을 일깨워준 '신청곡'은 새해에 등장해 이번 2019년을 아름답게 장식한 싱글이다. 타블로가 써낸 섬세한 멜로디, 이소라의 우아한 보컬, 방탄소년단 슈가의 개성이 담긴 랩을 선호하는 이들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 데뷔 시기와 음악 스타일이 모두 다른 뮤지션이 모였기에 특별한 의미를 제공한다. 

 

라디오, DJ, 신청곡. 사실 오늘날 세대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단어들이다. 편곡 또한 아날로그 소재에 맞춘 듯 다소 투박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세련된 분위기보다는 감정과 노랫말 그 자체에 집중한 곡이다. 쉽게 다가오는 선율과 진솔한 메시지는 대중의 선택을 이끈 핵심 요소였다. 따스한 온기로 치열했던 올해를 품어준, 우리의 신청곡.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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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

 

한 스마트폰의 광고가 나른함을 때리며 단숨에 다수 시선을 나포했다. 그 CF의 주인공은 전문 모델이 아니라 독일 클럽에서 뛰는 유명 한국인 DJ였고 배경음악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은은하게 리듬이 퍼지는 'Starry night'는 매혹의 EDM이란 것 못지않게 해외 활동에 치중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말이 들려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 중 하나 등등 신상도 가히 최상급이다. 시대의 키워드인 '핫'과 '힙'의 총집결? 로큰롤 전설 버디 할리의 명곡 '페기 수'가 아닌 페기 구, 이 이름만 봐선 힙을 무기로 하는 것 같지 않지만 급부상의 원동력이 힙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중음악 분야 비(非) 메인으로 치면 2019년의 토픽 인물 그리고 토픽 송.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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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기린 '오늘밤엔 (Feat. Ugly Duck)'

 

'슬픈 노래는 듣고 싶지 않아 / 서울의 달은 유난히 오늘따라 더 밝아' 이태원에서 시작해 홍대까지, 좋은 음악과 즐거운 파티를 찾아 서울의 밤거리를 분주히 오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송가다. 레트로를 세련되게 승화시킨 기린의 '오늘밤엔'이 이들에게 제격이다. 에잇볼타운(8BallTown)의 유누(Yunu)가 프로듀싱을 맡고, 감각적인 알앤비 비트 위에 제이슨 리(Jason Lee)의 색소폰 연주가 얹어지며 복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밤중 뜨거운 파티를 대변하는 이 노래는 어딘가 모르게 친근하다. 데뷔한 이래로 레트로만을 고집해오던 기린의 오랜 뚝심이 2019년을 뜨겁게 달군 '온라인 탑골공원' 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기린 특유의 감성에 박재범의 트렌디한 보컬과 멜로디 진행력이 더해져 만인이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음악을 창조했다. 과연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세대의 공존, 기린의 레트로.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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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 'LION' 

 

어린 사자인 줄 알았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Senorita', 'Uh-oh'로 차근차근 올라서더니 마침내 세상을 호령하는 제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왕관이라는 먹잇감을 노리고 우아하게 전진한 결과,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와 혼을 빼놓는 전자음이 난무하는 음악계에서 여왕의 품격이 무엇인지 선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팀의 프로듀서 전소연의 '서낳괴(서바이벌이 낳은 괴물)' 모먼트가 폭발하고 이에 멤버들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막강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어린 소녀가 비웃음을 뒤로하고 전장에서 승리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자의 포효 같은 민니의 고음, 모든 멤버가 돌아가며 'I'm a queen like a lion'을 외치는 퍼포먼스는 즉위식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아이돌이 가지는 고정관념의 철창을 부수고 그들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은 데뷔 2년 차의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자)아이들의 주체성, 정체성 더 나아가 비전까지 제공한 이 곡을 가볍게 넘길 이유가 전혀 없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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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달려온 2019년도 이제 연말 결산의 시기를 맞고 있다. 단 한 해도 결산이 쉬운 적은 없었으나, 2010년대의 마지막 해인 올해를 상징할 앨범을 선정하는 과정은 특히 무척이나 쉽지 않았다. 놀라운 총기,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 중 10장의 국내 앨범을 선정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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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 <Language>

 

수직의 두 선을 곱하면 면이 되듯이, 김심야와 프랭크(FRNK)가 각자의 분야에서 이뤄낸 실력의 연장선은 곧 거대한 면적으로 추산되었다. 이는 <KYOMI>에서부터 <Moonshine>을 거치며 개척한 XXX만의 영토다. 타 아티스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의 기름진 토양을 양분 삼아 태어난 <LANGUAGE>는 힙합 신에서 좀체 보기 드문 공격성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가진 이전에 없던 소통 방식, 말 그대로 새로운 '언어'를 담고 있었다.

 

앨범은 관조적으로, 때로는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깨우친 열반의 위치에서 조소와 냉소를 잘근잘근 씹어 댄다. 자칫 날카로운 혀끝에 베이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감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전작의 허무에서 분노를 머금은 김심야의 래핑은 한층 더 첨예해졌고,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프랭크의 전자음은 변칙적이면서도 더욱 뚜렷해졌다. 이제는 알겠다. '향후 5년간 이 앨범을 뛰어넘을 앨범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그의 발언은 객기가 아닌, 개척자의 당당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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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 <항해>

 

올 한해 제일가는 발라드 승자는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로 차트 장기 집권을 누린 악동뮤지션이다. 그간 자, 타의로 옭아매어 있던 '재기발랄한 남매 듀오'의 콘셉트에서 나아가 사랑의 감정을 녹진하게 표현한 이 곡은 아프게 울고, 소리 높여 지르는 한국형 발라드 창법 하나 없이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허나 타이틀로 가격한 변신의 징조를 앨범 단위로 확대했을 때 감정은 더 강렬해진다. 근래 이토록 근사하게 컨트리, 포크, 일렉트로니카를 응용해 멜로디를 주무른 음반이 있었을까? 대중의 기호를 떠나 강단 있게 끌어온 다채로운 장르의 활용과 여전히 재치 있는 가사의 발화, 이전에 없던 짙은 감성의 섬세한 표현까지. 악뮤는 이 음반으로 자신들만의 확실한 조류를 만들었다. 매혹적으로 끌어당기니 어쩌나, 빠져버릴 수밖에. 2019년 최고의 작가주의형 대중 앨범.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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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 <SEIREN>

 

소마의 바다는 위험할 정도로 깊어서 더 유혹적이다. 얼터너티브 알앤비, 소울,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은 잔잔하게 일렁이다가 어느 순간 신비로운 목소리가 소용돌이를 일으켜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렇게 심해에 다다르면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인 물고기, 해적 그리고 인어가 그간 걸어온 길을 노래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동화적 이미지와 파도를 닮은 보컬을 타고 공감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손을 건넨다.    

 

<SEIREN>의 핵심 키워드는 '확장'과 '극복'이다. 첫 정규 앨범이지만 커리어를 총망라하여 그가 누구인지 아로새겼고, 포근한 멜로디 안에는 단단한 위로가 응집되어 있다. 과거의 아픔을 재치 있게 넘기기도 하고 다른 이의 고통을 품어주는 힘을 보이는 가사는 힐링의 텍스트가 되어 드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세상의 모든 괴물을 물리치려는 마음'이 모두에게 닿는 그 날까지 소마의 노래는 계속 항해한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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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 <Love Poem>

 

8년 전 '너랑 나'에서 '눈 깜빡하면 어른이 될 거에요'라 노래하던 열아홉의 아이유를 기억한다. 그 눈 깜빡할 8년의 시간 동안, 아이유는 가십에 날을 세우기도 하고 (<Modern Times>) 과거에 악수를 건넸으며 ( <꽃갈피>)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했다 ('스물셋'). 아티스트 아이유와 인간 이지은은 어느새 선배들에겐 '기특한 후배'로, 동년배들에겐 '나의 이야기'로, 후배들에겐 '동경하는 선배'로 그 존재감을 넓혀왔다.

 

<Love Poem>은 차근차근 어른의 시간을 기다려온 아이유가 그 자아를 과감히 확장하는 순간이다.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써내려 간 여섯 편의 시는 소박하고 편안하며 자연스럽다. '너랑 나'가 닿고자 했던 '시간의 바깥'에서 '기를 쓰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냐'('Unlucky'), '소란한 너의 밤을 지킬게'('자장가')라며 본인을, 본인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보듬는다. 'Love poem'을 통해 숱한 비보로 눈물졌던 올해를 가장 깊이 끌어안았던 아티스트 역시 아이유였다. 눈 깜빡할 사이 아이유는 어른이 되었다. 아주 크고, 진솔하며, 닮고 싶은 어른이.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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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마 - <밭>

 

오도마의 <밭>은 곧 그의 삶이다. 일산 오사마리(OSAMARI) 크루의 일원인 그는 성공한 래퍼들과 어울리며 랩스타의 꿈을 가꾸지만, 그의 현실은 옷가게의 '비정규직'이다. 스타와는 거리가 먼 '범인'은 그 와중에도 자신과 주변인들의 '급'을 나누며 자괴감을 느낀다. '모독'의 구토로 오도마가 마주한 자아는 가까이서 봐야만 보이는 비극 속에 남겨져 있다.

 

황홀한 환상과 눈 앞의 풍경이 자아내는 모순에서 그는 절망하고 분노하지 않는다.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랩으로 쟁기질을 하고 언어의 씨앗을 심는다. 고뇌를 삶의 일부로 인정하며 마초적인 '플렉스' 문화 이상의 성숙으로 위로와 공감을 자아낸다. 이기적인 성공 신화 대신 '우린 서로가 서로의 가시가 되어 / 나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아픔을 새겨'내자는 연대를 노래하는 것도 범상치 않다. <밭>은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황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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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 <돛>

 

김현철 10집 <돛>을 단순히 시티 팝 혹은 발라드 앨범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김현철의 디스코그래피 전부를 모아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지난 30년 음악 인생의 집합체와도 같은 작품이기에. 그러니까, 재즈와 펑크(Funk)를 바탕으로 세련된 시티 뮤직을 국내에 선보인 <춘천가는 기차>와 <32℃ 여름>, 발라드와 알앤비로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한 <동야동조>와 <거짓말도 보여요>를 기억한다면 이번 앨범은 이름만 '돛'일 뿐 사실상 김현철 베스트앨범이나 마찬가지다.

 

가요계 후배들과 작업한 이번 앨범은 8집 <... 그리고 김현철>의 행보와 발을 맞춘다. 레트로 유행에 응답한 원조의 시티 팝 'Tonight is the night'에서 김현철과 솔(SOLE)은 꽤나 멋지게 그 시절의 담백한 보컬을 재현해냈고, 박원의 목소리를 빌린 '당신을 사랑합니다'와 주식회사와 함께 한 '오늘의 여행'은 요즈음 발라드에서는 찾기 힘든 순수한 사랑을 묘사한다. 시티 팝의 유행이 필연적으로 추억을 회상하게 만든 '그 여름을 기억해'의 가사는 분명 과거에 머물러있지만, 사운드는 미래를 향해있다. 결국 김현철의 돛이란 복고의 순풍을 타고 그를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음악적 원동력인 셈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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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99 - <동두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있다. 눈에 보이는데도 외면하고픈 현실이 있다. <동두천>은 들여다본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일상을, 미군 부대를 위해 지어졌던 기지촌과 낙검자 수용소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보산역 일대에 힘겹게 자리 잡은 난민들을. <동두천>은 풀어낸다. 낯선 첫 인상과 분노를, 자욱한 안개 아래 울렁거리는 감정의 파고를, 깊이 눌러 담은 투쟁과 생존의 문제를.

 

방랑하는 아티스트 레인보우99의 <동두천>은 리얼리즘의 기록이다. 일그러진 현대사가 강요해온 일상을 깊이 관찰하고, 소리로 스케치하여 도시 곳곳에서 녹음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혐오를 놀이와 집결의 도구로 사용하는 2019년 대한민국에 '잊힌 자들'의 기록을 아프게 상영한 작품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치유받을 수도, 전진할 수도 없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나아간 <동두천>같은 작품이 있기에 우리는 반성하고 기억하며 더 밝은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뗄 수 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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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 <온다>

 

그야말로 이채롭다. 악기 연주는 빼곡한데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조용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저돌적으로 변하며, 거칠게 나아가다가도 갑자기 차분해지곤 한다. 어두운 대기로 일관하지만 고저가 가파르고, 완급의 차이가 커서 곡들은 내내 역동성을 띤다.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차진 호흡은 잠비나이의 음악을 더욱 색다르게 느껴지도록 한다. 또 한 번 독특한 소리가 휘몰아친다.남다른 퓨전 속에 변화도 깃들었다. 이번 음반은 전작들보다 보컬의 지분이 많아졌다. 덕분에 기묘한 느낌이 한층 증대됐다. 'Square wave'는 멀리서 울리는 것처럼 꾸민 보컬로 화자의 절박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부각했다. '온다 (ONDA)'는 어절을 연결해 부르는 가창으로 유연함과 몽롱함을 함께 전한다. 이 보완으로 기존에 지닌 환상적인 기운이 곱절이 됐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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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 <Evolution>

 

실험이라면 30년 동안 할 것은 다했다. 메탈의 정체성과 관련해 그들은 시의성을 건네기 위해 너른 범주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전작을 낸지 14년이 흐른 지금, '변방'이 아닌 어쩌면 '소멸'의 위기 속에서 선두인 그들의 응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흐릿한 자존심보다는 후배들의 트리뷰트앨범을 대하면서 피어오른 자신감 아니 '희망'이 그들을 9집 풀 앨범에 대한 의욕으로 몰아넣었다. 전자음악에 기웃거린다거나 사운드의 무조건적 '약화'가 아니었다.선택은 3분 정도로 곡 길이를 짧게 하는 '간소화'로 실질 전에 형식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사운드의 정확성과 밸런스에 공을 들여 잠재수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게 타이틀이 가리키는 진화 아니었을까. 전곡이 듣기 편한 게 진정한 승리. 주상균 보컬은 여전히 톱이며'AI', 'Log in', 'Dimension'는 멋지다. 30년 커리어가 어디 가겠는가. 앨범이 나온 것만으로도 2019년 음악계는 본분을 다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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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잔향이 짙게 깔린 피아노 소리와 담백하게 내뱉는 슬픔의 언어들. 고요함이 주는 힘이 이 음반에 있다.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는 전진희의 피아노 연주에 김훨, 코듀로이 등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화려한 음악들 사이에서 꾸밈없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중에게 잘 전달했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는 '멋진' 음악을 만드는 일보다도 '진심'이 가득 찬 음악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한마디로 숨 같은 음악이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화자의 마음이 느껴져 함께 슬프고, 숨을 내쉬면 그의 위로가 청자에게로 닿는다. 진심이 담긴 언어는 어떠한 것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올해의 앨범 중 가장 잠잠하고 조용하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의 마음에 따스하게 안착하는 앨범.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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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2019 연말 결산, 올해의 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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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해보다 올해 우리는 팝을 많이 들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일상화, 유튜브의 거대해진 영향력 등으로 대중음악에서 국경은 거의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훔쳐 '국민 가요' 대접을 받은 노래들은 단순 기술 발전에서 요인을 찾을 수 없다. 마음을 울리는 가사, 깊은 멜로디의 힘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불변의 가치인 덕이다. 2019년 팝 싱글 10곡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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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7 rings'

 

2019년 빌보드 싱글 차트는 릴 나스 엑스가 독차지했지만 올해의 '작은 첫발'을 찍은 주인공은 다섯 번째 음반 <thank u, next>에서 'thank u, next'와 '7 rings' 두 곡을 정상에 올린 아리아나 그란데였다. 그중 '7 rings'는 영화로 익숙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My favorite things' 멜로디를 빌려와 친근감을 더했다. <thank u, next>의 주제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자존감은 성공과 우정을 과시하는 '7 rings'의 자신감에서 더욱 넘쳤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가는 음악시장의 흐름에서 가장 대중적인 위치를 점한 그는 작년부터 이어진 여성 음악가들의 약진을 2019년으로 이었다. 낯익은 선율, 어렵지 않은 랩과 보컬은 '평범'이라는 이 곡의 의외의 성공 동력. 팝 가수의 최선이 군더더기 없는 노래임을 증명하며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는 성과를 남겼다. 팝 애호가라면 모두가 상반기에 이 노래를 언급했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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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bad guy'

 

Z세대의 에이브릴 라빈은 스케이터 보이를 놓친 발레 소녀를 탓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스케이터 보이들 위에 군림할 뿐. 상남자 타령이나 하는 마초남들에게 10대 소녀가 날리는 일침이 가관이다. "아~ 네가 그렇게 나쁜 남자야? 난 너네 엄마가 싫어할 정도로 나쁜 여자(bad guy)인데"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에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던지는 조롱 섞인 "Duh!"까지, 이거 완전 펑크(Punk)를 품은 팝송이다.

 

자신의 몸이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며 위아래로 빅 사이즈 옷을 맞춰 입고 Z세대를 대표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몸소 전하는 빌리 아일리시. 짧지만 굵은 그의 행보를 비춰보았을 때 'bad guy'가 갖는 의의는 명확하다. 'bad guy'는 센 척이나 하는 속 빈 강정들을 향한 충고이자, 누릴 것 다 누린 부머(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날리는 "요즘 것들"의 통렬한 한 방이다. 이것이 얼터너티브고, 이것이 록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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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나스 엑스(Lil Nas X) 'Old town road (Feat. Billy Ray Cyrus)'

 

현 시대의 히트곡이란 무엇인지를 규정짓는 트랙이다. 'One sweet day'와 'Despacito'를 훌쩍 넘어선 19주 연속 1위라는 빌보드 신기록. 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틱톡(TikTok)과 밈(Meme)이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인싸 플랫폼'을 통한 유행의 무한확산이야말로 이 현상의 핵심이자 공식이기 때문이다. 카우보이 문화를 선망하는 'Yeehaw agenda'의 맥락을 잇는 전략적인 곡 제작과 스스로 일으킨 'Yeehaw Challenge' 붐.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Z세대에게 있어 음악은 단순한 놀이소재로도 쓰일 수 있음을 한발 앞서 눈치챈 셈이다.

 

유행이 띄운 노래라고 미리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인 인치 네일즈(Nin Inch Nails)의 '34 Ghost Ⅳ'를 샘플링해 만든 컨트리 스타일의 리프부터 그의 재기가 느껴지니 말이다. 쫀쫀한 트랩 비트를 타고 넘는 주인공의 래핑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기도 한 컨트리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의 보컬이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카우보이의 부합하며 발하는 시너지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후렴의 합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영리하게 섞은 덕분일 터. 시대의 트렌드를 시대의 방법으로 전파해 다시 한번 새시대를 정의하는, 현 세대에게 있어 음악의 가치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지침과 같은 싱글.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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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떡(Young Thug) 'The London (Feat. J.Cole & Travis Scott)'

 

래퍼 21 새비지(21 Savage)는 '퓨처(Future)와 영 떡은 요즘 힙합 노래들의 저작권료 90% 정도는 받아야 한다'라는 트윗으로 두 아티스트의 위상을 요약했다. 독특한 발성의 멈블(Mumble), 보컬과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짜는 영 떡의 스타일은 2010년대 말 힙합 씬의 가장 선명한 흐름을 주도했다.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Metro Boomin)과의 찰떡궁합, <Jeffry> 등의 멋진 믹스테이프,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 피쳐링으로 주류 시장에 존재감을 키워온 그는 첫 메이저 데뷔작 <So Much Fun>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곡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 'The London'이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한 제이 콜과 작년 <ASTROWORLD>라는 걸작으로 슈퍼스타가 된 트래비스 스캇이 한 데 뭉쳐 최고의 3분 25초를 선사한다. 트래비스 스캇의 몽롱한 훅이 티 마이너스(T-Minus)의 차분한 트랩 비트와 함께 럭셔리 호텔 '더 런던'의 문을 열고, 제이 콜이 날카로운 랩으로 모두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다음 영 떡의 주술 같은 목소리가 자욱한 연기처럼 파고든다. 컨디션 절정의 세 래퍼가 정의한 이 시대의 힙합 문법.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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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Sucker'

 

2013년 해체 이후 세 형제가 다시 만나 올해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추억 속 소년의 앳된 보컬과 외모 대신 그들은 성숙해진 목소리와 매끈한 팝으로 돌아왔다. 200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보이 밴드의 신곡 발표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발매 즉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석권하면서 이들을 몰랐던 이들에게도 산뜻한 첫인상을 제공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얻지 못한 싱글 넘버원이기에 더 화제가 되었다.

 

조 조나스가 몸담고 있던 밴드 DNCE의 경쾌함, 유명 팝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한 라이언 테더의 프로듀싱이 만나 대중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조나스 형제들의 재결합은 반가웠고, 거부할 수 없는 팝 선율은 많은 이가 노래를 찾고 듣게 만들었다. 2019년의 '흥'을 책임진 노래.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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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 'Lose you to love me'

 

'두 달 만에 넌 다른 사람을 만났지 /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셀레나 고메즈는 지나간 사랑인 저스틴 비버를 향해 다시 한번 저격을 가한다. 마침표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 사랑을 시작한 전 애인의 행보는 셀레나 개인의 감정적 절망을 넘어 그 이상의 음악적 성숙을 가져왔다. 대중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이어나갔던 사랑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눈길 아래서 끝난 이별의 과정은 이 노래의 뿌리 깊은 영감이 됐고, 그는 이를 솔직한 발화로 완성시켰다.

 

현악기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세련된 편곡, 담담하면서도 공감을 자아내는 가사, 터뜨릴 듯 터뜨리지 않는 절제된 보컬까지. 음악 예술성의 완벽한 제압으로 통쾌한 복수에 성공했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자는 다짐 또한 놓치지 않는다. 뼈아픈 만남의 끝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잃어야 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상처의 노래는 아름다운 종착을 내린다. 시린 마음은 성장을 남겼고, 우리는 고품격 이별가를 얻었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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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스콧(Naomi Scott) 'Speechless'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한 영화 <알라딘>에는 공주 자스민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다. 왕위를 계승하고 나라를 이끌기 원하는 그의 진취적인 야망은 원작보다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디즈니의 변화를 보여준다. 'Speechless'는 이러한 시대성에 맞춰 원작의 작곡가 앨런 멘켄(Alan Menken)과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로 유명한 작곡 듀오 파섹 앤 폴(Pasek and Paul)이 새롭게 주조한 곡이다. 기존에 없던 이 자스민만의 테마곡에는 침묵을 강요받던 계층을 대표한 저항의 선언이 한껏 담겨있다.

 

새로운 자스민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를 무릎 꿇게 하려는 현실에 맞서 '나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를 강변하는 노랫말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스피치리스'로 억압받는 약자들에게 강한 연대감을 심으며 노래를 각종 음원 차트에 올렸다. 영화의 흥행만큼이나 투철했던 주제가의 시선. 그 시선이 작금의 사회를, 대중을 읽었다. 개인의 다짐이 다수 목소리의 대변으로 이어진 올해의 싱글.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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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마리(Anne Marie) '2002'

 

11살이던 2002년에 남자친구를 만난 앤 마리는 엔싱크의 'Bye bye bye', 제이 지의 '99 problems',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와 'Oops... I did it again', 넬리의 'Ride wit me'를 함께 따라 부르며 사랑을 키웠다. 16년이 지나 가수가 된 앤 마리는 에드 시런, 줄리아 마이클스, 베니 블랑코와 함께 '2002'를 작곡해 자신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고 이 아름다운 사랑을 대중에게도 공개해 함께 나누었다.

 

2018년에 데뷔앨범 <Speak Your Mind>를 발표했을 때 '2002'는 '무명'이었지만 작곡가 에드 시런과 함께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영상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면서 뒤늦게 대한민국에 스며들었다. 장난기 넘치고 따뜻한 장조 곡 '2002'를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하기는 벅차다. 포크의 바탕 위에 일렉트로닉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그 위에 힙합과 컨트리로 채색해 연령대와 상관없이 우리의 젊은 시절,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앤 마리가 2002년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2002년도 아름다웠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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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Lizzo) 'Truth hurts'

 

2019년이 리조의 해라는 것에 굳이 DNA 테스트까지 필요할까. 리조는 정형화되고 정제된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팔짱 끼고 있는 대중들 앞에 거대한 체구를 앞세우며 당당하게 자신을 뽐냈다. 젠더, 인종, 성 정체성과 관련된 고정관념들을 짓밟으며 전진하는 리조의 무지갯 빛 기세를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토록 보수적인 그래미 또한 그의 이름을 최다 부문에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을 정도.

 

데뷔 이래 두 장의 앨범과 'Good as hell', 'Boys' 등 좋은 곡들을 선보이며 내공을 쌓아가던 리조는 한 SNS 내 밈에 사용된 'Truth hurts'으로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섰다. 곡은 그가 지향하는 삶을 유쾌하게 녹여낸 가사와 자기 자신과 결혼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신을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메시지지만 리조의 캐릭터와 언행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음악이 설득력을 더했다. 멋과 흥, 메시지를 모두 챙긴 올해의 싱글!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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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카팔디(Lewis Capaldi) 'Someone you loved'

 

강렬한 첫 도입부 몇 초로 곡의 성공이 결정된다면, 'Someone you loved'는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싱글이다.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루이스 카팔디는 별다른 장치 없이 잔잔하게 차오르는 피아노와 목소리 하나로 영국 싱글 차트 7주 연속 1위를 하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제임스 블런트, 제임스 아서와 작업한 영국의 유명 작곡 팀 TMS가 참여해 영국 팝의 온기가 가득하다.

 

1996년생인 루이스 카팔디는 오랜 슬픔을 견뎌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표출한다. 그는 나를 구해줄 사람, 내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아픔을 고통스럽게 노래한다. 6개월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만든 곡이라는 점, 빠르게 성과를 맛보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2018년 11월 첫 발매 이후 1년이 지나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느림의 미학이 담긴, 올해 가장 감성적인 팝.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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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상은 완벽히 변했다. 새 시대의 팝스타들은 기성 팝 문법을 가볍게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그를 생산하던 산업의 규율까지 비웃으며 생경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2010년대까지 이것을 '혁신'이라 불렀다면, 다가올 2020년대엔 그 새롭고 낯선 경험이 일상으로 자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 핵심에 '좋은 음악'이라는 가치가 있음도 물론이다. 2019년의 팝 앨범 10장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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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 <Norman Fucking Rockwell!>

 

전반에 서려있는 서정미와 비장미. 관조하듯 천천히 끓어올라 묵직하고 은근하게 내뱉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는 조소, 환멸, 고통, 비극을 경유해 끝내 아픔을 포용한다. 하지만 관점의 시작은 여기, 나로부터 출발하여 이 음반에는 라나 델 레이 본인의 경험과 추억, 그가 들어왔던 음악들이 여기저기의 영감이 되어 자리한다. 비치 보이스, 데이비드 보위의 곡을 인용하고 카니예 웨스트를 차용해 전달하는 미국에 대한 통박은 그렇게 이 음반의 품격을 높였다.

 

여전히 세상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 노이즈로 풍성하게 소리를 키운 수록곡 'Venice bitch'는 10분의 러닝 타임을 지닌 채 싱글 커트 되었고, 오르간과 다층의 코러스를 사용해 씁쓸한 정취를 살린 'California'와 고독의 정서를 토해내는 'Fuck it I love you'는 회색빛 감정으로 작품의 얼개를 잡는다. 유명 화가 노먼 록웰이 삽화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물을 형상화한 것에 영감 받아 라나 델 레이는 그 사이 'Fucking'이란 수사를 덧댔다. 유영하듯 침잠해 날선 메시지의 적확함으로 작금의 미국을 소환하고 꼬집는 음반. 흔들리지 않고 쏘아붙인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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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년의 동의어는 '빌리 아일리시'였다. 그로테스크한 뮤직비디오는 Z세대의 열띤 환호를 받았고 'bad guy'는 '힙'의 대명사와 다름없다.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달달한 사랑을 외치는 전형적인 팝스타를 거부한 17세 소녀는 발칙하고 괴이한 상상('우리가 잠에 들면 어디로 갈까?')의 영토로 우리를 이끌며 잠재된 반항 정신을 건드렸다. 의식과 무의식, 꿈과 죽음이라는 대조적인 공간을 마구 헤집어 놓는 광기는 그 어떤 로커보다도 '록'스러웠다.

 

영리하기까지 했다. 스산한 곡에서 댄서블한 후크를 뽑아낼 수 있고 로드, 에이브릴 라빈, 마릴린 맨슨을 언뜻 내비치다가도 순식간에 자신으로 돌아간다. 자기 파괴와 고딕 이미지가 절정에 올라 죽음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테마는 지루할 틈이 없으며 'bury a friend',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으로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홈메이드 방식과 원시적 감정의 부각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 음악의 유통기한을 매기는 틴 팝 시장을 향한, 무심한 꾸짖음 그 자체이다. 대중성과 유니크, 저항 정신을 모두 잡은 올해의 앨범.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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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Rapsody) - <Eve>

 

"블랙 우먼의 이야기, 그런 랩은 원하지 않아

그들은 환상을 좋아해, 총이 울리는 액션을 좋아해

노예 시절에도 강간했고, 다시 우릴 강간하지

가슴이 출렁거리는 경우만 TV에 내보내"

- 'Cleo' -

 

<Eve>는 피가 끓는다. 들끓다 못해 철철 흐른다. 인종과 젠더의 차별을 받는 당사자가 직접 마이크를 잡아 더욱 리얼하다. 흑인 사회의 영웅들, 그것도 여성들의 이름이 곡의 이름으로 붙여졌다. Nina, Michelle, Aaliyah, Whoopi.. 흑인 탄압에 핏대를 세웠던 니나 시몬의 목소리로 시작해 현재 가장 존경받는 오프라 윈프리와 미셸 오바마도 그녀의 음악이 되었다.

 

귀를 기울일 곳이 참 많다. 정곡을 찌르는 가사는 물론이고 모티브를 푸는 세련된 전개, 공들여 얹은 샘플링까지. 앨범은 완벽함에 가까운 만듦새를 자랑한다. 2008년 데뷔해 남자들 투성이인 힙합씬에서 단단하게 버틴 그녀, 레전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널리 포효하기 시작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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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A 트위그스(FKA Twigs) - <Magdalene>

 

핵심은 모순의 공존이다. 제목부터가 창녀와 신실함의 이미지가 혼재한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따왔다. 사운드에서도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의 영향이 뒤엉키고, 가사에는 진지함과 조소, 연약함과 단단함의 콘트라스트가 매혹적이다. 가사를 내뱉는 FKA 트위그스의 목소리 역시 섬세함과 강렬함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FKA 트위그스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자신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편성을 잊지 않는다. 우울한 자위를 노래하는 'daybed', 고통과 분노에서 서글픔으로 이어지는 'Home with you',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두려움을 드러내는 'cellophane' 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사회에게 부여당한 정체성을 직시하는,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의 서사다. FKA 트위그스는 분노와 자애, 욕망과 신성함을 모두 끌어안아 입체적인 자아를 완성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입장에 빗대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 어떤 개인도 한가지 틀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이건 시대정신이다. (황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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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밀라 우즈(Jamila Woods) - <Legacy! Legacy!>

 

자신의 뿌리에 대한 위대한 찬사. 그는 이미 1집 <HEAVN>을 통해 시카고, 흑인, 여성에 대해 노래하며 자신을 지배하는 예술적 자아를 언급했고 더 나아가 이번 앨범으로 시대를 앞선 다인종 예술가들의 행적을 통해 본인이 움직여야 했던 이유의 당위성을 알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흑인 혹은 여성 사회의 기억을 더듬으며 발견한 차별과 항거의 흔적은 그가 부당에 투쟁해야만 하는 확실한 근거가 됐다. 그는 사서(司書)가 되길 자처하며 영감을 준 이들의 이름을 따 음악으로 기록했다.

 

단지 소개로 끝나지 않았다. 알앤비와 소울, 힙합을 기반으로 시도된 음악적 실험은 흑인 음악의 역사를 훑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고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흐르는 목소리는 앨범의 처음과 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역사를 완성했다. “My wings are greater than walls.” 그는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굴복하지 않고 항쟁한 선구자에 대한 존경과 성찰 그리고 자기애를 담아내며 체제에 저항했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에 자신의 메시지를 덧씌우며 뚜렷하게 이름을 새겼다.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최신 '유산'이다.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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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 <Assume Form>

 

범연한 소리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모습은 매혹적이지 않다. 오리지널리티가 그래서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 오리지널리티마저도 기존하는 형식과 내용을 맴도는 순간부터는 따분하다. 기껏 얻어듣는 입장에 입맛이 뭐 이리 강퍅하냐마는 아무튼 간에 나는, 여태껏 말해보지 않은 것을 포착해다가 기어이 제 언어를 동원해 말해내는 이에게 실로 크나큰 감흥을 느낀다. 오직 그러한 이만이 전에 없던 것들을 쉬지 않고 재차 포획할 수 있다. 이상은 <Assume Form>을 듣고는 다시 한번 떠올린 내 청취에 관한 화두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늘 상투성의 함정을 교묘히 피한다. 선례를 조금씩 왜곡해가며 타인과, 그리고 기존의 자신과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습관은 또다시 다른 소리를 내어놓는다. 고요하면서도 번잡한, 몽환적인 일렉트로니카라는 자신의 언어 대종에 계속 의지하면서도 전보다는 다분히 밝고도 팝적인 사운드를 이식하기도 하고, 이제는 범상해질 대로 범상해진 트랩을 포섭해서는 신선한 모델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이제 두 가지 경로에서 익숙하고 또 낯설다. 친근한 팝 사운드가 아티스트의 왜곡과 함께 멀어졌다는 게 하나고, 아티스트의 스타일 역시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서도 예상 밖으로 팝적으로 변모했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러한 제임스 블레이크 또한 분명 전에 없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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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살리아(Rosal?a) - <El Mal Querer>

 

'Despacito'로 정점에 달한 2010년대 라틴 팝은 혁신과 열정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로 2020년대의 바통을 넘겼다. 제이 발빈(J Balvin), 배드 버니(Bad Bunny), 말루마(Maluma) 등이 각축장을 벌이는 가운데, 대세는 홀연히 떠오른 뮤즈 로살리아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유럽 대륙,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그들의 전통 민족 예술 플라멩코(Flamenco)를 13세부터 수련해온 수재(秀才)다.

 

플라멩코의 혼과 새 시대 대중음악의 차분한 문법을 자유롭게 혼합하는 <El Mal Querer>는 앨범 커버처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기묘한 청각적 경험과 감각의 승천을 인도한다. 중세 기사도의 비극을 2000년대 초 아이돌 팝으로 수놓고, 원시적인 리듬으로 호흡을 가쁘게 가져가다 전자음의 치밀함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 태피스트리 위에서 눈물짓고, 몸을 불사르며, 절규하고 또 다짐하는 젊은 뮤즈의 모습이 숭고하다. 로살리아는 이 걸작의 메시지를 이후 히트 싱글 'Con altura' 속 가사로 다시 강조했다. "이 높은 곳에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 난 일찍 죽어 묘지로 갈 거야"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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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 <Father Of The Bride>

 

그간 꾸준하게 장르 다양성을 시도해온 그룹 뱀파이어 위켄드는 포크와 가스펠, 그리고 소울, 재즈, 팝 등 여러 장르를 한 데 섞은 요리를 꾀한다. 신선한 재료에 걸맞은 담백한 건강식이자, 깔끔한 플레이팅이다. 아이비리그의 키덜트(Kid Adult)들은 미니멀리즘으로 더욱더 명징해졌고 여유로운 포용력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다.

 

2013년도 작 <Modern Vampires Of The City>의 심오한 향을 가지면서도 그 형태는 2009년도 작 <Contra>와 같이 가볍고 경쾌한 것이, 올해 가장 리스너블한 록 음반의 탄생이다. 적당히 알싸하면서도 부담 없는 사운드 속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하는 밴드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벅찬 감정과 휴머니즘, 소소한 기쁨이 오가는 <Father Of The Bride>는 밴드의 따뜻한 새 국면을 선사한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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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Yuna) - <Rouge>

 

유나의 네 번째 글로벌 앨범 <Rouge>는 전작 <Chapters>(2016)로 지명도를 얻은 뮤지션의 야심작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지-이지(G-Eazy), 리틀 심즈(Little Simz), 카일(KYLE) 등 영미의 래퍼와 일본의 로커 미야비, 한국의 박재범 등 글로벌 합작 군단을 구축해 좀 더 과감하고 관능적인 음반을 꾸렸다. 잘 들리는 알앤비 앨범의 근간에는 재즈와 일렉트로닉, 힙합을 재료로 한 사운드 디자인이 위치한다.

 

앨범은 여러 스타일을 오가며 듣는 재미를 다채롭게 풀어냈다. 펑키한 디스코 풍 'Blank marquee'와 'Pink Youth', 건반과 보이스 샘플의 활용이 빛나는 힙합 알앤비 넘버 '(Not)The love of my life', 미야비의 기타 연주와 유나의 보컬이 섬세하게 어울린 'Teenage heartbreak', 박재범과의 하모니가 인상적인 하우스 트랙 'Does she' 등 매력적인 수록곡이 가득하다. 노래마다 톤과 창법을 달리하며 흔들림 없이 음반의 중심을 잡는 가창 또한 수준급이다. 아티스트의 음악적 성장이 돋보인 앨범.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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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말론(Post Malone) - <Hollywood's Bleeding>

 

어디를 가나 포스트 말론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 앨범에 수록된 17개의 노래가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Hollywood's Bleeding>은 현재 그의 커리어 하이를 증명하듯 종합 히트곡 세트로 올해 팝 신을 강타했다. 힙합과 록을 가로지르는 작법에 더욱 완숙해진 프로듀싱을 받쳐 매끄러움을 살렸고, 여유롭게 끌어안은 팝 멜로디와 고유 매력이던 슬프고 어두운 캐릭터도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 장르의 정의는 무의미하다. 어느 쪽에 치우침 없이 여러 양식을 두루 접목한 틀, 곡의 감성에 따라 제각각 탈을 바꾸며 변조를 이루는 보컬과 랩에 아티스트의 특출한 재능이 녹아든다. 스타일의 융합으로 제시한 다양한 색깔을 빼곡하게 수놓으니 음반은 더없이 풍요롭다. 촉망받는 팝스타의 전진 앞으로! 당분간 가장 '다재다능한' 뮤지션은 포스트 말론으로 통할 것이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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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Sal-Ki」 로 김예림을 살해한 림킴은 <Generasian>으로 본인의 이미지 변신이 즉흥적인 일탈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얼마나 독한 결심인지 이름과 배경 지식을 가리면 그 누구도 과거의 그가 <슈퍼스타 K3>의 투개월로 데뷔한 솔로 가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유년기 유학 경험으로부터 발견한 동양과 여성의 정체성 아래, 거칠고 파괴적인 선동과 실험을 이어가는 림킴에게선 일단 ‘단단히 준비된’ 모습이 포착된다.‘민족요’의 수미상관 구조 속 노래들은 확실히 충격과 공격, 전복을 의도하고 있다. 긴 공백기의 내면 탐구 과정을 호기롭게 신세계라 선언하는 「민족요(Entrance)」의 우리 가락부터 ‘아시아 현상’을 노래하는 「Yellow」, 인더스트리얼으로부터 잔뜩 벼린 날붙이들의 거친 충돌 「Digital khan」과 신비로운 「Mong」, 「Yo-Soul」까지.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티(No identity)와 림킴은 전에 없던 소리와 전에 없던 콘셉트를 향해 거침없이 진군한다.

 

변화의 중심축이 잘 잡혀 있어 그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호접몽의 개념을 빌린 「Mong」과 마법(Magic)의 동양 개념 「Yo-Soul」의 신비로운 멜로디에서 림킴은 자연스러운 뮤즈가 되어 최적의 가창을 들려준다. 본인이 보컬보다 더 자연스럽다고 밝힌 랩도 「Sal-Ki」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일본 교복, 조신함, 중국 경극 등으로 희화화된 동양 여성의 고정관념을 비틀어 반항하는 「Yellow」의 삐딱함, 「Digital khan」의 당당함 모두 무리 없이 소화한다.

 

유교 문화권 하의 억압적인 젠더 구조, 가부장제 사회 속 고통받는 한국 여성들에게 림킴의 행보와 음악은 상당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동시에 <Generasian>은 무국적을 지향한다. 인터넷 시대 디지털 유목민을 유목 민족의 지도자 ‘칸’으로 격상하여 「Digital Kahn」이라 선포하고, 「민족요(Entrance)」를 제외한 모든 곡을 영어 가사로 쓴 것이 그 증거다. 언뜻 장점 같지만, 언어나 문화 등 민족적 색채를 더 강화하는 것이 최근 세계 시장에서 더 호응을 끌어냄을 고려해보면 단점이다.

 

림킴은 수많은 아시아 여성 뮤지션들의 발화에 분노와 전통의 언어를 더하며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우리의 민속 음악, 실험적인 테크노, 힙합을 자유로이 풀어내는 모습은 영국의 엠아이에이(M.I.A), 아프리카 토속의 리듬을 전자음으로 풀어낸 뉴욕의 제이린(Jlin)을 연상케 한다. 아시아의 경우 대만의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등 중화권 위주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정체성을 당당히 표현하며 편견에 맞서고 있는데, 림킴이 이 흐름을 영리하게 포착했다.

 

아티스트 개인에게 <Generasian>은 훌륭한 ‘전세 뒤집기’지만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작품인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다. 대개 독특한 콘셉트로 승부하는 아티스트들은 구성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권을 꽉 쥐고 있는데, 림킴의 ‘동양 여성’은 자주적인 모습 아래 앞서 언급한 레퍼런스와 프로듀서의 색채가 꽤 짙다. 거친 신생 혁명 여전사의 성공 여부는 정체성의 활용과 정체성에 매몰되는 것 사이의 진지한 고민에 달려있다.

 

 

아이유의 성장은 가파르다


아이유 <Love Poem>


단순히 듣는 것에서 나아가 능동적인 청취행위를 유도하여 음악 역시 하나의 문학작품임을 재차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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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해 긴 호흡으로 오래도록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첫 만남은 다소 무난하다 느낄 법하지만, 재생횟수가 늘어갈수록 촉촉히 스며드는 특유의 감성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각 트랙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들으면 들을 수록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여러 갈래로 확장되며 앨범 자체에 긴 생명력을 부여한다. 단순히 듣는 것에서 나아가 함께 그것들을 해석해보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의미로 찾아 나가는 일들이 수반된다는 것. 그리고 그 찾아낸 의미들을 확인하기에 위해 다시금 앨범을 들으며 전보다 조금 더 이 노래들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 화려한 포장없이 음악적 매무새만으로 이 정도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아이유의 성장은 정말 가파르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전반적인 구성은 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페르소나>와 닮아 있다. 각기 다른 6개의 단편이 아이유라는 자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영화와 다른 것은, 배우의 역할에 한정되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감독까지 맡으며 전반적인 과정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르로 보면 로맨스도 있는가 하면, 수필도 있고, 에세이도 있고, 시도 있는 느낌이나, 주인공의 문법이 확실한 덕분에 앨범의 통일성은 무리없이 유지된다. 정성스럽게 동봉되어 있는 해설지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밝힘으로써 듣는 이들에게 단순한 감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청취행위를 유도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나는 이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 것처럼.

 

이처럼 여전히 언어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나, 그렇다고 음악적인 부분에서 소홀한 것은 또 아니다. 오히려 각 이야기에 딱 맞는 음악을 입혀 주제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노랫말에 맞는 장르 선택도 선택이지만, 전작과의 차이라면 역시 어느 때보다도 ‘함께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발매 직후에 콘서트 계획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리얼세션 기반의 합주가 생동감과 현장감을 부각시킨다. 이전의 앨범이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었다면, 이번엔 오랫동안 함께해 온 뮤지션들과의 협업이 보다 부각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새로운 시도가 가장 응집되어 있는 곡이라면 역시 「그 사람」이다. 보다 장르적으로 접근한 블루스 기타와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음울한 목소리가 이제까지의 노선을 살짝 꺾으며 재미있는 의외성을 발한다. 「너랑 나」를 잇는 8년만의 후속작으로 기대를 모은 「시간의 바깥」은 뮤지컬식 구성에 아이리시의 이국적인 감성을 얹으며 완벽한 판타지를 구현한다. 순식간에 현실로 복귀해 영화 <페르소나> 속 ‘밤을 걷다’의 등장인물로 분하는 「자장가」는 그 이별의 감성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아이유 가창의 백미.

 

예상을 웃도는 로킹함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는 「Blueming」에선 1980년대 뉴웨이브의 향수가 숨어있다. 잔향을 품은 디스토션과 퍼커션이 만개하는 사랑의 감정을 발랄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까. 여기에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자신과 타인을 향해 귓속말을 건네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다짐하게 만드는 「Unlucky」와 「Love poem」까지. 언뜻 보면 시대나 장르의 일관성이 없는 백화점식 구성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근간에 곧게 뿌리내린 유니크한 자아가 주인이 누군지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이질감없이 소리를 타고 흐르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 곱씹을 뿐.단단하게 자신을 가꾸어 온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역량과 재능이 똘똘 뭉쳐 빛을 내는 한 장이다. 점점 싱어송라이터들의 개성이 묵살되어 가는 시대에, 메인스트림에 있는 이가 이 정도로 창작의 측면이 부각된 작품을 선보였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앨범이라는 개념을 보다 크게 바라봄과 동시에 더욱 폭넓은 소재의 스토리텔러로 거듭났다는 사실은 <Chat-Shire>(2015)와 <Palette>(2017)를 비교했을 때 가장 빛나는 성과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단순히 듣는 것에서 나아가 능동적인 청취행위를 유도한다는 것과 음악 역시 하나의 문학작품임을 재차 깨닫게 했다는 점. 정말 지금의 아이유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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