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BWV988)은 자장가였을까?
« 골드베르크 변주곡 »의 수고본 첫 페이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러시아 대사로 드레스덴(작센 선제후국)에 파견되었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이 심해 바흐에게 수면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바흐는 긴 변주곡을 작곡해 백작에게 주었고, 바흐의 제자였던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크가 그가 잠이 들 수 있도록 이 변주곡을...
View Article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 정일서 PD
돌이켜 보면 나의 학창 시절과 청춘은 대체로 어두웠던 것 같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었으련만, 그때는 내게 그것이 퍽이나 가혹해서 매 순간 버거웠었다. 진심으로 라디오와 음악이 있어 그 시절을 통과해올 수 있었다. 내가 라디오 PD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깊고도 진실한 마음은 '슬픔'이 아닐까 한다. 슬플 때마다, 힘들...
View Article트랩 신의 구세주, 플레이보이 카티의 Whole Lotta Red
애틀랜타 출신의 신인 래퍼에서 트랩 신의 메시아로. 그것은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2017년 셀프 타이틀 믹스테입과 더불어,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는 형태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추임새와 뇌를 마비시킬 정도의 실험적인 비트를 무자비하게 점철한 2018년도 문제작 <Die Lit>으로 그간 금기시되던 조항을 정면으로...
View Article세상과 선을 긋기로 다짐한 어른의 말로, 에픽하이의 10집
“자신의 유년을 에픽하이와 보냈다.”는 어느 팬의 말처럼 2003년 데뷔 이래 그들의 음악이 대중의 기억에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그룹이 만들어낸 고유의 감성 때문이다. 한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감정의 형태는 인간의 체온과 닮아 있었고, 우울과 명랑 등 높낮이를 오가며 위로를 전달했다.동시에 흐려졌다. 익숙해진 문법은 클리셰가 되어 오히려...
View Article간결하면서도 쓴맛이 고이는 스토리텔링, 큐엠의
잘 나가는 힙합 레이블에 인기 있는 아티스트만 있는 건 아니다. 탄탄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주목받는 뮤지션과 달리 '회사 식구 사진 속 저 맨 끝'에 서 있는 래퍼도 있다. VMC 소속 래퍼 큐엠은 2016년 <NAZCA>를 시작으로 정규작 <WAS>와 <HANNAH>를 차례로 발매하며 튼튼하고 컨셔스한 랩으로 힙합 애호가들에게...
View Article[생각의 여름, 글이 되는 노래] 삶이라는 책
붕어빵의 계절이 한창이다. 머리쪽부터 먹는가, 아니면 꼬리 부분부터 입으로 가져가는가? 웹에서 새 음반을 발견한다. 첫 곡부터 듣는가, 혹은 ‘타이틀’ 표시가 붙은 트랙을 먼저 클릭하는가? 모르는 저자의 책을 집는다. 뒤표지를 먼저 살피는가, 앞날개부터 펼치는가, 아니면 목차를 찾아 훑는가? 위의 질문들을 거창하게 부풀려 본다. 그러니까 입, 귀, 눈을...
View Article우리 모두의 파랗던 시간, 케이티의 Our Time Is Blue
2020년 우리의 시간은 온통 파랬다(Our Time Is Blue). 무너진 일상은 우리의 삶을 우울에 잠식시켰다.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뮤지션의 '코로나 위로송' 덕분에 온 세계는 음악으로 연대하고 위로받았다. 케이티의 <Our Time Is Blue>도 그 선상에 놓여있다. 2019년 미니앨범 <LOG> 이후 두 번째...
View Article뿌리 깊이 박힌 나그네 정서, 김일두의 새 계절
지금 우리는 '친절한' 음악에 익숙하다. 손가락이 지배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맞춰 3분을 넘기지 않는 러닝 타임, 사운드 극 초반에 선곡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디자인과 관련한다. 게다가 주지하듯 코로나 블루에 잠긴 사회를 고려하여 고요한 위로를 속삭이거나 쾌락을 선사하는 콘텐츠가 기하급수적 증가세를 보인다. 다수의 음악은 최대한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지...
View Article철저한 격리 속, 집에서 만들어진 라이(Rhye)의 작은 세상
마냥 익숙하지는 않은 뮤지션 라이(Rhye)지만, 그의 싱글 'The fall'과 'Open'은 국내에서 꽤 많은 마니아층을 섭렵하는 것에 성공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마이크 밀로쉬(Mike Milosh)의 프로젝트성 팀인 라이는 덴마크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로빈 한니발(Robin Hannibal)과 함께 데뷔 싱글 'The fall'로 음악...
View Article어른에게 바치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 Op.15»
조르지오 데 키리코, « 거리의 우울과 신비 » 1914‘어린이 정경’에서 ‘정경(情景)’이 무엇인지 사전에서 찾아보니 1. 마음에 끌리는 경치, 2. 사람이 처해있는 형편(출처: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이라 합니다. 작품의 원어 제목은 «Kinderszenen»으로 직역하면 ‘어린이의 장면’입니다. ‘장면’에서 오는 일회적이고 객관적인, 현재와 분리된...
View Article세기를 빛낸 명곡 ‘Over the rainbow’의 탄생,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가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MGM 스튜디오 임원인 루이스 메이어(Louis Mayer)는 그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엘.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소설 『오즈의 위대한...
View Article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콜드식 알앤비, 이상주의
트렌디한 힙합, 알앤비로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콜드의 세 번째 미니 앨범이다. TV 프로그램 < 브레이커스 >의 출연과 2018년 힙합 레이블 웨이비(WAVY)의 설립 등으로 대중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그는 듀오 오프온오프(Offonoff)의 활동과 양질의 솔로 음반들을 통해 알앤비에 특화된 색깔을 선보이며 많은...
View Article록큰롤 베테랑, 푸 파이터스의 순수성에 대한 고찰
지금의 록의 시대가 아니다. 그래도 현재 록 음악계에서 '꾸준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굴까. 바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다. 깡마른 체구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뒤에서 힘 넘치는 드러밍을 펼쳤던 그가 2021년 록 장르 최후의 보루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995년...
View Article보기 드문 시너지의 우세, 블라세와 스프레이의 Snatch
특정 개인이 주체가 되는 음반은 해당 작품을 이끌어갈 아티스트의 순수 역량을 중요시하기 마련이다. 다만 합작은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진다. 이 경우 단일 개성의 발현보다는 협동성이 중점이 되고, 청자 역시 이러한 합일적인 면에서 도취와 희열을 요하기 때문이다. 백앤포스(BacknForth) 소속 디제이 스프레이(Spray)와 에프에이(FA) 크루의 래퍼...
View Article2021년 음악을 이해하는 키워드
새해의 첫 번째 달도 반 이상이 지나갔다. 여전히 코로나 19의 위협이 개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2020년과 달리 백신을 개발하고 비대면 시기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등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는 2021년이다.음악 산업 역시 글로벌 팬더믹의 가운데 지속적인 적응과 혁신, 신기술 투자로 활로를 개척했다. 동시에 대중과의...
View Article심볼 너머 심볼로, 현아의 I’m Not Cool
16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한 현아는 늘 관심의 한가운데 있었다. 2007년 원더걸스로 데뷔 이후 건강상의 문제로 탈퇴했을 때 한 차례 잡음이 있었고 이후 그룹 포미닛과 솔로 현아의 활동을 오가며 모종의 ‘선정성’ 혹은 ‘주체성’ 과 관련된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짧은 상, 하의를 입고 골반을 튕기는 그의 대표곡 '버블팝'을 듣고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View Article데이먼스 이어, 두통과도 같은 기억을 원천 삼아
역대 최다 지원자가 몰렸다는 2019년 튠업 20기의 뮤지션으로 선정, 같은 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데이먼스 이어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다. 떠오르는 루키라 표현하기에는 나름 데뷔 4년 차 뮤지션이고, ‘Busan’ , ‘Josee!’ , ‘Yours’ 로 이미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바 있다. 다수의 공연, 그리고 다수의 싱글에서 서툰...
View Article악몽을 스스로 종식시키다, 드림캐쳐의 미니 6집
<Raid of Dream>(2019) 이후 새로운 방향 설정이 유효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록/메탈 장르 간의 과감한 결합. 이들은 현 시류 간 타협거부에 대한 대가를 콘텐츠의 완성도로 메워 놀라운 성과를 일구어냈다. 그럼에도 마냥 기뻐할 여유는 없었을 테다. 이런 비주류 행보에 어색해하는 이들을 새 지지층으로 포섭해야만...
View Article이야기로 장식하는 음악, 생각의 틈을 파고드는 오페라 – 생상의 «삼손과 들릴라(1877)»
«삼손과 들릴라(1615)», 헤라트 반 혼토로스트삼손과 들릴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사랑과 전쟁 양극단을 오가는 대표적인 연인입니다. 이들의 관능적인 사랑과 배신 이야기는 민족주의, 전쟁과 같은 인류 공통의 서사에 섞여서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소재가 되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신의 노여움을 산 이스라엘을 필리스틴(현...
View Article알로 파크스, 청춘의 성장 시집
아지랑이 피는 잔향 속 시는 노래가 되어 따사로운 햇살처럼 부서진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Frank>처럼 자유롭고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처럼 우아하며, 코린 베일리 래의 숙련된 자연스러움이 어우러진 이 세계는 청각으로 다가와 구어체의 가사로 읽히고, 다채로운 공감각의 심상을 펼쳐낸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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