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잎들, 투명하고 서글픈 에세이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 에서 따온 이름처럼 청춘의 침묵에서 피어오른 부산 출신의 밴드는 수다쟁이처럼 할 말이 많았지만, 절대 산만하지 않았다. 2016년 데뷔 미니앨범 <메신저> 이후 몇 개의 싱글만을 발표하며 가다듬은 지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멤버들이 군대를 다녀왔고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커지기를 거절하며 여전히 창작에...
View Article위저가 선사하는 인류에게 필요한 따뜻한 온기, OK Human
최근 위저의 관심사는 다름 아닌 ‘발굴 작업’ 이었다. 명곡의 재해석을 다룬 <Weezer (Teal Album)>과 과거 아티스트에게 연모를 표하던 <Weezer (Black Album)>, 심지어 발매를 앞둔 <Van Weezer>는 밴 헤일런(Van Halen)의 추모라는 취지 아래 강렬한 하드 록 트랙으로 빽빽히 채워질...
View Article[생각의 여름, 글이 되는 노래] 어둠 속의 일
겨울 4시 반쯤이면 이미 어둑해지는 곳에 산 적이 있다. 이국이었으며 나갈 데가 여의치 않았기에 방에 있고 또 있다 보면 마음도 어둑해졌다. 그 어둑함을 자책하며 더 어둑해졌다. 누군가가 이런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말해주어 온라인 몰에 접속했더니, 계절성 정서 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줄여서 SAD)를 줄여주는...
View Article음으로 그리는 시어(詩語), 몬테베르디의 «님프의 애가(1638)»
«울고 있는 님프», Jean-Jacques Henner(1884), 파리 장-자끄 에너 미술관 소장 Photo (C) RMN-Grand Palais / Franck Raux해설 (3중창) : 동이 트기 전, 집에서 나온 젊은이의 희고 창백한 얼굴에 슬픔이 그대로 묻어난다. 꽃을 지르밟으며 깊은 한숨으로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
View Article10곡으로 되짚어보는 다프트 펑크 연대기
2021년 2월 22일, 다프트 펑크(Daft Punk) 공식 계정에 '에필로그(Epilogue)'라는 이름의 영상이 게시됐다. 8분 남짓의 길이 속, 자체 제작한 영화 <다프트 펑크의 일렉트로마>(2006)에서 토마스가 자폭을 택하는 후반부 장면과 <Random Access Memories>의 수록곡 'Touch'가 차례로 등장한다....
View Article어스름한 추억의 회고, 장필순 Reminds 조동진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진 온기가 마음을 감싸다. 조곤조곤 세상에 위로를 전하던 조동진이 나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오래도록 언더그라운드 포크계의 흔적을 남긴 그가 사라진 후 대부의 발자취를 뒤쫓던 후배들에겐 잔잔한 새벽이 찾아왔고 생전에 선배가 그러했듯 떠들썩하지 않게 슬픔을 견뎌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삶을 지켜본 장필순 또한...
View Article이에스피(ESP), 여러 면에서 색다른 퓨전 국악 밴드
기이하다. 한국과 서양의 악기가 결합한 많은 음악 중에서도 이 음반은 악센트를 강하게 주지 않는다. 2017년 미국의 인기 유튜브 채널 <엔피알 뮤직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Music Tiny Dest Concert)>에 출연하며 큰 관심을 받은 씽씽을 비롯해 추다혜차지스, 잠비나이, 고래야, 악단광칠, 이희문이 만든 오방신과(OBSG),...
View Article유라의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
시작에 앞서, 유라(youra)는 '그간 음악에 있어 지켜온 고집, 누군가에겐 ‘개똥철학’ 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을 머리카락처럼 자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Gaussian>은 그 긴 머리의 나다. 쉬이 말해 본작은 잘라내기의 표적이다. 표지 속 단발로 변한 모습 아래, 이건 ‘남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는 언급을 증명하듯 한껏...
View Article보편적이지 않은 이설아의 수필집
이설아의 음악은 보편적이지 않다. 오리엔탈 무드의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와 장엄한 편곡이 돋보이던 '시간의 끈' 등 다소 난해하던 첫 번째 미니앨범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말'에 대한 단상을 한없이 느린 템포로 노래하던 <못다한 말들, Part. 1>까지. 리듬에 몸을 맡기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노랫말을 미처 흡수하지도 못한...
View Article단단한 응집력과 청각적 쾌감, 서리(30) 크루의 첫 정규 앨범
크루 서리(30)의 멤버들은 힙합 신에 잘 알려진 이름들이다. 쿤디 판다(Khundi Panda)와 디젤(dsel), 손 심바(Son Simba), 오하이오래빗(OHIORABBIT)으로 구성된 래퍼진과 프로듀서 비앙(Viann), 그리고 그래픽 아티스트 그냥 희수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최근 새 멤버 씨제이비95(cjb95)와 니완(Niwann)의 합류로...
View Article페일 웨이브스, 펑크 키드를 소환하다
영국의 뉴 웨이브/신스팝 신생 밴드 페일 웨이브스가 돌연 미국의 2000년대 팝 록 시장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더티 히트 레이블에서 1975를 이을 차기 그룹으로 부상하던 이들이 북미 대륙으로, 정확히는 캐나다 출신의 펑크 키드 에이브릴 라빈에게로 눈을 돌린 데는 리더 헤더의 영향이 크다.1995년생 헤더 바론 그레이시는 '뿌리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View Article경이로운 ‘소울’의 음악세계
<소울(Soul)>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작품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음악 영화임은 분명하다.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티나 페이 분)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 속 삶의 가치를 다시 묻고, 모든 것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계 속 개인을 곱씹게 만든다. 그...
View Article슬로타이, 거친 외면에 묻힌 내면
충격적인 데뷔였다. 2019년, 모국의 브렉시트 정책을 비판한 첫 번째 앨범 <Nothing Great About Britain>으로 오피셜 차트 9위를 차지한 슬로타이는 영국 악센트로 내뱉는 날것의 플로와 날카로운 정치적 메시지로 순식간에 대중과 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다만 머큐리 프라이즈 시상식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잘린 목 모형을 흔들며...
View Article그 어떤 앨범보다 권진아스러운 ‘우리의 방식’
최근 여성 뮤지션들의 약진은 주로 인디 신에서 돋보였다.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던 정밀아와 김사월이 양질의 앨범을 선보였고, 민수, 문선 같은 신인 인디 뮤지션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백지영, 린, 다비치 등 발라더가 주름잡던 2000년대 초, 중반과 달리 지금 음악 신의 흐름은 뒤바뀌고 있다. 이러한 동향 속에서 발라드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는 권진아의...
View Article여전히 살아 숨쉬는 양준일의 열정, Day By Day
그저 재미있는 인터넷 밈(Meme)이 아니었다. 중년 세대의 용기이자 젊은 세대의 새로운 '힙', 대중음악계에 유의미한 화두를 던진 계기였다. 레트로의 해였던 재작년, 과거 뮤지션을 재조명하는 유튜브 채널 일명 '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대중의 선택을 받은 양준일은 시대를 앞서간 패션 감각과 뉴 잭 스윙을 도입한 선구적인 음악 스타일로 세간의 뒤늦은 주목을...
View Article자신의 음악을 펼칠 만한 곳을 찾아 평생을 떠돈 음악가, 에릭 사티
에릭 사티, 1909년결국, 음악원에서 쫓겨난 에릭 사티(1866-1925)의 마지막 성적표에는 ‘음악원에서 가장 게으른 학생’이라고 적혔습니다. 재능은 있으나 훈련되지 못한, 아니, 훈련이 불가능한 영혼을 가진 사티는 음악원을 나와 자신의 음악을 펼칠 만한 다른 곳을 찾아 평생을 떠돌았습니다. 사티의 삶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열세 살에 파리 국립...
View Article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아우릴고트의 투쟁
아우릴고트가 자리한 작은 공간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2020년 8월 첫 번째 정규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 이후 6개월여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죽을힘을 다하여>는 곰팡이 속에서 피어난 처절한 생존 일지이며, 적어 내려가는 그의 펜촉은 미세한 흔적도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해 먼지 한 톨 털어낼 여유가 없다.타인이 아닌 오로지...
View Article우리가 5.18을 기억하는 방법, 정재일의 Psalms
음악인 동시에 언어이고, 노래이지만 절규이며, 비극이자 눈물이다. 수많은 민중이 겪어낸 시대의 고통과 그 잔해, 빗발치는 총성에도 소리내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의 아우성.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약 30년이 흐른 지금 정재일의 <Psalms>에서 다시 한번 재현된다. 21곡이라는 방대한 수록곡 안에서 우리는 그때의 슬픔을 귀로...
View Article풍족한 에너지를 정갈하게 다듬은 샤이니
'Don't call me'의 첫 구절 'If you don't call me'가 파편처럼 분리되고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쌓아 올리면 이윽고 생경하고 둔탁한 베이스라인이 이어진다. 꽤 급진적인 재료지만 매번 새로운 시도로 케이팝의 활로를 개척해온 샤이니이기에 설득력은 충분하다. 허나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타이틀곡은 언뜻 샤이니 본인보다 이들의 후배 그룹인...
View Article2021년 그래미 어워즈 결산!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래미 어워드가 범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행사 날짜까지 옮겼다. 붉은 융단 위에 별들이 쏟아지던 그때 한국은 3월 15일 아침 9시였다.제63회 그래미 시상식은 무관중인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여타의 국내 시상식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어워드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사회를 맡았던 앨리샤 키스를 대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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